고 김오랑 소령의 아내 고 백영옥 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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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이트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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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앞에서 몇 시간이나 의식 없이 앉아 있었다. 


사인펜으로 글씨를 썼다. 


크게, 크게, 좀 더 크게 써야만 내가 쓴 글씨를 가늠할 수 있었다. 


만원과 천원 지폐도 눈으로 구별할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안과에서, 맹인이 되어 맹아를 지도하고 있는 권선생님을 소개시켜 주었다. 


맹인에 대해서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그를 만났다. 


병원에서는 절망적인 얘기를 했다. 


정신적인 충격에서 시신경의 마비가 온 것이라고 했다. 


운명이 부딪혀온 것이었다. 깊은 절망감 몸을 떨었다.


- 자서전에서


1988년 8월 31일 정장군이 부인과 함께 자비원을 찾아와 

위스콘신 대학 경영학과 조교수인 

큰아들 정승환이 쓴 박사 학위 논문을 주고 갔다. 


논문의 서문에는 '고 김오랑 소령을 추모하여'라는 글이 들어 있었다.



 6월 28일 밤 전두환. 노태우. 최세창. 박종규 등에 대한 민사소송 직전,

 그녀는 사망했다. 

그날은 독일선교사들의 도움으로 눈 치료를 다시 시작하기 

1주일 전이었다. 


경찰은 백씨가 자비원 3층에서 허리높이의 폭 50cm 난간을 뛰어넘어

 ‘실족사’ 했고 사건의 목격자는 없다고 발표했다.



국민묘지에 오랑과 합장 되었어야 할 

백씨의 유골은 영락공원 무연고 납골당에 10년간 보관되었다가 

산골터에 뿌려져 이젠 흔적도 찾을 수 없고 

백씨의 가족들 중 아무도 백씨의 유골을 챙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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