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글] 바나나와 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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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도 더 된 이야기인데
제가 어릴때 죽을만큼 아픈 병에 걸려서 대수술을 해야했어요.
그 당시 가장 유명한 병원이 아마 여의도 성모 병원이라
거기에 입원을 하고 수술을 준비했어요.
하루 하루가 너무 힘들기도 했고 어려서 얼마나 있었는 지 기억이 안나는데
몇주... 몇달을 입원하지 않았나 싶네요.
가끔 외출이 가능할때면 병원 옆 근처 63빌딩에 뭐 살것도 아니지만 구경가곤 했습니다.
지금은 많이 바뀌었겠지만 그 당시에는 백화점처럼 되어있었습니다.
그때 바나나를 처음 봤는지는 기억에 안나는데
놀랐던 게 바나나를 지금 명품 시계 전시하듯이
유리곽 속에 진열해놨더군요.
물론 그 바나나가 특별한 바나나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때 멜론이나 키위가 수입되었는 지 모르겠지만
바나나가 일반적으로는 가장 비싼 과일이었을거에요.
바나나 따위를 유리곽에 진열한 사진은 찾을 수 없어서 대충 이런 정도의 비싼 과일의 느낌이었습니다.
이것보다 더 애지중지하게 진열대도 아니고 복도 한가운데 그것도 딱 한송이만 진열되어있던 게 생각나네요.
그리고 레고 매장도 있었는데
그 당시 가장 비쌌던 게 해적선
정말 가지고 싶었죠.
부모님께서 수술 잘하고 다 나으면 가지고 싶은 거 사준다고 약속하셨는데
나중에 수술 잘 끝나고 63빌딩 가서
도저히 해적선을 사달라는 말은 못하겠더군요.
우리집이 얼마나 못 사는 지 알았거든요.
10만원이 넘었던 거 같은데... 그 당시 10만원은 저에게 다른 단위의 돈같이 느껴졌거든요.
그래서 가격대 제일 좋아보이는 건 이 소방서
58,000원 했던 거 같은데
얼마나 기억에 남았는 지 35년이 다 되었지만 가격까지 대충 생각나네요.
이거 사주실때도 부모님이 한참을 고민하시긴 했지만 결국 사주셨어요.
정말 오랬동안 열심히 가지고 놀았어요.
어머니께서 "너 레고가지고 하루 10시간씩 놀고 그랬잖아"그러시더군요.
이사를 많이 다니면서 어느새 다 사라지고 없더군요.
-
요즈음은 가장 싼 과일이 바나나인거 같지만
63빌딩에서 봤던 그런 기억이 있어서 그런지 어릴때 바나나를 좋아했나봐요.
전 바나나를 좋아한 적이 없다라고 생각했는데
어머니께서 바나나만 보이면 "너 바나나 좋아하잖아 하나 사줄까?"
그럴때마다 "나 바나나 안좋아해."라곤 합니다.
매번 까먹으시고 똑같은 질문을 하시긴 하지만요.
-
아까 시간이 조금 남아 레고 매장에 들어갔다가 둘러보다가
백만원에 레고 스타워즈 AT-AT가 전시된 것을 보고
어릴때같음 이런게 가지고 싶었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원한다면 아무 생각과 고민없이 바로 살 수 있을텐데 이런 생각을 하면서요.
그러나 사고 싶은 생각이 안들더군요.
어릴때 TV에서만 보고 너무 가고 싶었던 레고랜드를 다 커서 영국 윈저에까지 가서 가봤지만 감흥이 없더군요.
-
운동화나 게임기도 그런데
새로운 운동화 보면 사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사실 지금은 사놓고 안신는 운동화 대부분인데
어릴때 어머니께 딱 한번 운동화 사달라고 한 적이 있나봐요.
사실 그것도 기억 잘 안나는데
그때 형편이 안되 못사줬던 게 어머니에겐 한이었던 지
나이키 매장만 보이면 어머니는 회사 다닌지 십수년이 된 늙은 아들에게
운동화 하나 사줄까 하십니다.
최근 몇년 사이에 저에게 억지로(!?) 사주신 운동화만 5켤레는 넘네요.
어머니는 운동화 매장만 보이면 어릴때 운동화 못 사준 기억이 한이 된다고 하시네요.
게임기도 어릴때 친구들이 가진 거 보면
친구집에서 몇번 해보지도 못했지만 너무 부러웠었죠.
거의 게임은 다 커서부터 했는데
별로 감흥이 없어요.
게임기가 새로 나오면 PS5빼곤 다 사모으긴 했지만
사도 게임은 별로 안해요.
하면서도 머리속으로는 빨리 깨야지... 시간 아깝다 이런 생각이 들지
막 게임하고 싶다 이런 생각이 안듭니다.
곰곰히 최근 하지도 않는 게임, 게임기를 왜 사나... 이런 생각을 하니
그냥 어릴때 한같은 게 아닐까 싶어서 이젠 왠만하면 사지 않을려고요.
-
결론이 없는 뻘글인데
어릴때 그때 즐기지 못하거나 기회를 놓치면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아무리 채울려고 해도 그때의 감흥이나 즐거움은 없고 공허함만 남는 거 같습니다.
아까 레고 매장 앞에 무슨 포켓몬 배틀 게임, 무슨 공주 꾸미기 게임을 하려고 부모님과 줄서서 기다리는 수많은 아이들을 보니까
참 부럽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돈도 돈이지만 어릴때 부모님이 저렇게 1시간씩 기다려줄 수 있는 여유가 있어서요.
부모님이 어릴때 엄청 잘살지 못해도 되는데 딱 저정도 금전적, 시간적 여유를 가질 정도만 되어도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집이 너무 못 살면 어린 아이가 스스로 눈치보고 자기 통제를 하게 되고
그때 즐기지 못하고 가지지 못한 게 어른이 되서도 남더군요.
어른스럽고 통제하는 아이들을 보게 되면 슬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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