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를 망친 무당 진령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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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마지막 황후 민비(명성황후)는 너무나 점술을 좋아하여서 모든것을 무당에게 의지하였습니다.
민비는 무당(진령군)을 언니라고 부르며 맹신하였으며
무당은 궁궐을 제집처럼 드나들었습니다.
여기에 덩달아서 고종 또한 무당에게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어느날 무당은 고종에게 이런말을 합니다.
"금강산 일만이천봉에 쌀 백섬과 돈 만냥을 바치면 나라가 편안해집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때 5년간이나 관료들은 월급이 밀렸는데도 눈 하나 꿈쩍 않던 고종은 그 많은 돈을 즉시 마련했습니다.
이를 보다못한 지석영(최초로 종두법 도입)은
"재물을 축내고 국정을 문란시키는 요사스러운 계집무당은
세상 사람들이 살집을 씹어 먹어려고 합니다.
왕께서는 한시바삐 요망한 계집의 목을 베어야 합니다“
라고 상소를 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고종은 오히려 지석영을 잡아다가 섬으로 유배를 보내버립니다.
그리고 고종은 나라의 모든 국정업무까지 무당에게 맏기며
관료들까지 무당에게 의지하게 만들어 결국 무당정치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대원군때 충실했던 국고가 텅텅비어 버리고
나라는 파탄나버렸다
-사형을 당했다고 적었는데 이부분 수정하겠습니다.
사형설이 있지만 예매한 부분이 있어서
생몰년도 미상으로 변경하겠습니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지석영의 탄핵에 의해 사형당했다는 야사를 채택했으나
이는 근거 부족으로 진작에 탈락된 카더라이고
대개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지방의 벽촌으로 숨어들어가 쓸쓸하게 생을 마감하지 않았겠느냐고 추측하고 있다.-
사망연도가 1896년이라고 알려진 것도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에서 채택한 사형설의 영향이 큰데
사실 해당 연도는 행방불명된 날짜를 가지고 추정한 날짜일 뿐이며, 사형설과 직접 연관된 것도 아니다.
공식적으로는 '생몰년도 미상'으로 본다.
결론 : 무당이 정치에 끼어들면 나라가 X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