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겪은 미국(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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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휘발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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핼러윈은 미국 어린이들에게는 큰 축제 중 하나입니다. 한 달 전부터 마트에서는 호박, 코스튬 등 핼러윈 물품을 쌓아두고 팔기 시작합니다. 이 시기가 되면 사람들은 집 앞에 커다란 호박을 사서 놓아두는데요. 그 바람에 온 거리가 가을 느낌으로 가득해집니다. 초등학교에서는 핼러윈 코스튬을 입고 행진하는 시간을 갖기도 합니다. 너무 어리거나 어떤 사정 때문에 ‘trick or treat!’을 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한 시간인 것 같았습니다.

가가호호 방문하며 사탕을 받는 ‘trick or treat!’은 해가 진 이후에 진행되는데요. 아이들이 친한 친구들끼리 무리를 지어 몰려다니기에 학부모 사이에도 얼굴을 좀 알아야 약속을 잡고 만날 수가 있습니다. 저는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아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을 했는데, 친절하게도 먼저 제안해 준 학부모들이 있었기에 다행히 2년 동안 두 번의 ‘trick or treat!’을 잘 따라다닐 수 있었습니다.



주택가 지역에는 조명이 많지 않아 랜턴을 들고 돌아다녀야 했는데요. 어두운 길을 작은 불빛에 의지해 걷다 보면 정성 들여 꾸며 놓은 핼러윈 데코레이션을 볼 수 있습니다.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은 집도 있고, ‘이렇게까지 한다고?’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거금을 들인 집도 있었습니다. 그중에도 연기를 내뿜는 용은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바글바글하게 모여 있길래 가까이 갔더니, 아저씨께서 ‘불 뿜는 용을 보여 줄까?’ 하시며 거대한 용 풍선 아래에 설치된 기계를 켜시더라구요. 드라이아이스가 뿜어져 나오는데 정말 용이 불을 뿜는 것 같았습니다. 모여 있던 아이들은 난리가 났고 아저씨는 아이들의 반응에 더 신난 듯 보였습니다.




달빛은 나무들 사이로 비추고 가을 공기는 선선합니다. 핼러윈으로 딱 좋은 날씨죠. 어둠 속에서 함께 무리 지어 다니는 아이들은 얼마나 즐겁겠습니까. 온 동네가 아이들의 목소리로 가득합니다. 이토록 비현실적인 풍경이라니...... 어른들은 아이들이 ‘trick or treat!’을 하러 집을 방문하는 것을 멀리서 지켜봅니다. 아이들은 집주인과 짧은 대화를 주고받기도 하는데요. 코스튬을 칭찬해 주기도 하고 수수께끼 같은 미션을 주기도 합니다. 바구니에 온갖 사탕을 가득 담고 이 집, 저 집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다 보면 여러 생각들이 밀려옵니다.



모든 집들이 ‘trick or treat!’에 참여하는 것은 아닙니다. 참여하지 않는 집들은 조명을 꺼 둡니다. 제가 있던 시기는 코로나가 유행하던 시기이기도 했고, 요즘은 사생활 때문에 집을 방문하는 것을 꺼리는 집들도 많습니다. 그런 집들은 뜰 앞에 바구니를 두고 사탕을 담아 두더군요. 동행한 미국인 학부모는 ‘trick or treat!’이 조금씩 바뀌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trick or treat!’의 핵심은 사탕이 아니라, 주민들과 아이들이 말을 나누고 교류하는 것인데, 요새는 사탕만 덩그러니 놓아두는 집들이 늘고 있다며 안타까워하더군요. 한 가지 더 안타까운 일은 사람들의 호의를 그대로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탕에 몹쓸 짓을 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받아온 사탕은 일일이 검사해야 합니다.

미국에서는 핼러윈뿐만 아니라 거의 매달 이러한 행사, 축제, 명절이 있습니다. 마트에서 파는 용품들이 수시로 변하는 모습들을 보면, 다들 계절과 시간의 흐름을 잘 즐기며 산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시간 속에서 아이들이 함께 나눈 경험은 그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협력과 배려의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명절에도 출근해서 일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우리 사회는 아마도 많은 것을 놓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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