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주 수도권 날씨 예고 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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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망원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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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는 지속되고 수박은 맛없어졌다. 여름이니까 그럴 수 있다. 전에도 이런 날이 있었다. 태양 아래, 잘 익은 단감처럼 단단했던 지구가 당도를 잃고 물러지던 날들이. 아주 먼 데서 형성된 기류가 이곳까지 흘러와 내게 영향을 주던 시간이, 비가 내리고, 자꾸 내리던 시절이. 말하자면 세계가 점점 싱거워지던 날들이 말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장마가 졌다. 마을엔 길이 끊기고 휴교령이 내려졌다. 한동안 방 안에 틀어박혀 나무만 봤다. 태풍에 몸을 맡긴 채 쉴 새 없이 흔들리는 고목이었다. 나무는 대낮에도 검은 실루엣을 드리우며 서 있었다. 이국의 신처럼 여러 개의 팔을 뻗은 채, 두 눈을 감고ㅡ그것은 동쪽으로 누었다 서쪽으로 휘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바람이 불 때마다 포식자를 피하는 물고기 떼처럼 쏴아아 움직였다. 천 개의 방향은 한 개의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살아남는 것. 나무답게 번식하고 나무답게 죽는 것. 어떻게 죽는 것이 나무다운 삶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런 게 종(種) 내부에 오랫동안 새겨져왔다는 것 만은 분명했다.


고목은 장마 내 몸을 틀었다. 끌려가는 건지 버티려는 건지 모를 몸짓이었다. 뿌리가 있는 것은 의당 그래야 한다는 듯, 순응과 저항 사이에서 미묘한 춤을 췄다. 그것은 백 년 전에도 똑같은 모습으로 서 있었을 터였다.


나는 그 사실이 마음에 들었다. 먼지 낀 유리 너머로 소리가 삭제된 채 보이는 풍경은 이상하리만치 고요했다. 그리고 아무리 봐도 지겹지 않았다.



- 김애란 <물속 골리앗>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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