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 펌) '이대남인데 솔직히 언어를 찾은거 같다' 장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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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흔히들 언론에서 이1대남으로 불러내는 그 20대 남자다. 서울에 태어나 서울에 살고, 대학생이다. 남고도 졸업하고 축구도 좋아한다. 내 가족이 소중하다고 생각하고, 나를 위해 새벽 같이 일터로 나가시는 아버지의 헌신과 나를 위해 직장을 포기하고 가정에 전념하신 어머니의 희생을 존경한다. 성별, 종교, 사회적 신분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지 말자는 헌법 제11조의 가치를 믿고,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진다는 헌법 제10조의 힘을 믿는 20대 남자다.
군대는 짜증났지만 병역의 의무는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페1미니즘을 모르고 페1미니스트도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주변의 여사친들이 어렵게 한둘씩 털어놓는 경험을 보면 내가 사는 세계와 이들이 사는 세계가 어쩐지 다른 곳이라는 생각은 한다. 인터넷에는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 과격한 워마드 같은 극단적인 사람도 있지만, 어쨌든 내게는 현실에서 만난 여자인 사람들의 경험은 그랬다.
지금까지 얼마 간은 내가 이상한가?라는 질문을 하게 만드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언론에서는 끊임없이 내가 속한 이1대남을 호명하고, 에타, 펨1코, 블라인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나와 비슷하게 태어난 남자들이 끊임없이 ‘내 주변 젊은 남자들은 그래’라면서 얘기를 하곤 하더라. 그 이1대남이란 누구였나?
여자들은 이기적인 피1싸개이고 50대는 대가리가 깨졌으며, 결혼한 신혼부부는 설1거지 그릇과 퐁퐁남이고 결혼하지 않은 여자는 모두 다 꼴페1미라고 본다. 임산부는 지나친 특혜를 받는 맘충이고 어르신들은 돈이나 타먹는 틀1딱이며, 뒤통수를 치는 사람들은 죄다 홍1어다.
언론과 커뮤니티에 따르면 이1대남은 그렇다고 한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이1대남이 아닌가?
내가 만난 현실의 사람들은 이상한 사람만큼이나 좋은 사람이 많았다. 대학에서 만난 가장 친한 선배는 전라도 출신이고, 결혼한 형은 오늘도 가정을 위해 일하고 형수는 애를 보면서도 가게를 차려 매일 같이 분투하는 자영업 사장님이다. 언제나 아침마다 나를 위해 기도하는 분은 할머니이고 아들이 잘되기만을 바라는 부모님은 586이다(심지어 민주당 지지자도 아니다). 대학 조별과제에서 모두 눈치 보며 튀는 와중에도 남아서 자료조사를 같이 했던 건 같은 과의 여자 후배였고, 군대에 가서도 누구보다 편지를 많이 써주고 휴가 때마다 놀면서 군인이 무슨 돈이 있냐고 사준 건 여자 동기들이었다.
언론과 커뮤니티에 따르면 나는 이1대남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난 엄연히 20대 남자인데…
그 어느 곳에서도 이견을 내비칠 수는 없었다. 이견을 내비치면 페1미대깨문이고, 반박을 하면 조선족홍1어니까. 누구보다 표현의 자유가 중요하다는 이1대남들이지만 아무튼 자신과 의견이 다르면 그렇다고들 한다.
그래서 서서히 침묵하게 됐다. 나는 언론에서 불러내는 이1대남도 아니고 커뮤니티에서 으쌰으쌰하는 O붕이도 아니니까. 나는 왠지 정상이 아닌 것 같고 소리를 내면 조롱 당하니까. 위축되고 수그러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나는 이미 그런 이1대남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딘가 찝찝한 마음 속 기분을 뭐라고 할 수 없이, 그냥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끄고 현실의 동료와 친구와 가족을 만날 뿐이었다.
그런데 1번남과 2번남의 논란을 보면서 이 찝찝한 마음 속 기분이 뭐였는지를 깨달았다. 그런 이1대남은 절대로 전부가 아니었다. 아닌 사람들이 분명히 있고, 소수가 아니구나. 사실은 가스라이팅이었구나. 단지 이걸 표현할 언어가 없었구나… 소수의 언론과 소수의 목소리 큰 몇몇이 자기들 편한 대로 20대 남자를 프레임에 가두고 마음껏 써먹기 위해 만들어낸 개념이구나. 그 말에 갇혀있게 만들고, 갇혀있었구나. 조롱하고, 욕하고, 깔아뭉개고, 비하하고, 혐오하고, 차별하는 게 진짜 이1대남이 아니라, 만들어진 이1대남이구나.
한편으로는 허탈하기도 했다. 그렇게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달며 몰려다니고, 위세를 뽐내면서 남들을 비꼬고 괴롭히던 ‘이1대남’이 사실은 ‘2번남’ 말 한 마디에 버튼이 눌려 아무 말도 못하는 애들이었다니. 자기 자아, 자기 생각, 현실의 경험, 현실의 인간관계 없이 그냥 커뮤니티 여론에 따라 부화뇌동하는 존재였을 뿐인데, 그 가오와 허세에 속고 있었을 뿐이구나. 이러누별 것도 아닌 이들의 말에 나와 다른 사람들 모두 속고 있었다니 웃음이 났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속지 않기로 했다.
언어에는 힘이 있다고들 한다. 그 옛날 처용은 노래로 귀신을 물리쳤다는데, 오늘의 젤렌스키는 연설로 우크라이나인들의 용기를 북돋고 있다. 말에 힘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나는 그 힘을 더 선한 방향에 쓰는 사람들에게 투표하려고 한다. 더 이상 조롱과 혐오의 언어가 계속될 수 없다고 말하는 쪽에 투표하려고 한다. 그런 이1대남이 전부가 아니라고 믿는 쪽에 투표하려고 한다. 우리 곁의 일상과 사람들이 소중한 곳이라고 믿는 이들에게 투표할 것이다.
그리고 다른 이1대남들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언론과 커뮤니티의 이1대남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이1대남들이 있고 그런 이1대남들이 소수가 아니라는 사실. 인터넷의 여포가 사실은 현실의 겁쟁이일 뿐이며, 가오와 허세를 들춘 곳에는… 오직 그들의 나약함뿐이었다는 사실. 그런 사실들을 말해주고 싶다.
당신이 여전히 그런 말의 힘을 믿는 사람이라면, 투표로 보여줬으면 한다.
그런 이1대남이 전부가 아니고, 이런 이1대남도 있다는 것을, 말에는 힘이 있고 세상은 그 힘으로 여전히 싸워 지킬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라는 점을 투표로 보여줘야 한다. 지치지 말고, 위축되지 말고, 내가 소수도 아니고 비정상도 아니라는 점을 투표로 보여주길 바란다. 그것이 바로 언론과 커뮤니티가 만들어낸 혐오와 배제의 2번남 메타버스를 넘어, 다른 이들과 함께 진짜 세상을 바꿔나가는 이1대남의 현실이라는 점을 보여줘야 한다.
머뭇거리지 말고 투표해라.
고민하지도 말고 투표해라.
위축되지도 말고 투표해라.
말의 힘을 믿는 이들과 세상을 위해 꼭 투표하자. 긴 글 읽어줘서 고맙다.
너무 공감되는, 진심이 담긴 글 공유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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