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의 기일에 마왕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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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제주감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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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의 공연을 따라다니고 대학가요제 시절부터 팬이었는데 공연장이 아닌곳에서 그를 만난후 시간이 지나서 남긴 글을 썼던게 기억나네요. 그때의 마왕을 기억하는 분들과 공감하려고 옮겨와봅니다.


사진은 월드컵경기장부근 넥스트 야외공연 때 찍은 사진으로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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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오면서 딱 한 번 공연장이 아닌 곳에서 그를 만났다.

 

2006년 7월 6일 오후 6시경부터 밤 9시가 넘는 시간까지 있었던 사내 강좌였다.

당시 회사에서는 도전적이고 톡톡 튀는 그를 초대하여 특강을 진행하였고, 선착순으로 진행된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미친 듯이 강당으로 달려갔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214/0000063310?sid=001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징이 박힌 가죽 장갑과 한 손에는 손가락마다 끼워진 반지와 연결된 팔찌. 그리고 시선을 가리는 선글라스.

이제 그가 했던 강연의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나의 10대 시절부터 삶의 커다란 조각이 되어있던 그를 만난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를 그냥 날릴 수 없어서 마지막으로 준비되어있던 질의응답시간에 반사적으로 손을 들었다.

 

마왕이 나를 가리켰고, 일어난 후 장황한 질문을 시작했다.

"마왕은 대학가요제를 통해 그룹으로 데뷔하고, 솔로로 나오면서 발라드를, 그 이후에는 2집에서 원맨밴드 앨범을 그리고 나서는 다시 넥스트를 결성하여 그룹으로 돌아왔고, 블라블라~ 오케스트라까지 동원한 라젠카로 정상의 위치에서 밴드 생활을 마무리하며 영국으로 떠났고, 블라 블라~그 기간에는 테크노를, 윤상 씨와 함께 노 댄스 앨범을 통해 댄스 없는 댄스 앨범을 내고, 이후에 비트겐슈타인으로 홈 리코딩 앨범도 내고 블라블라~ 결국 이런 모든 행적을 돌아보면 마왕은 항상 새로운 도전을 하며 살아왔다고 봅니다. 남들은 하나의 길로만 달려도 성공하기 힘든 이곳에서 이렇게 계속 새로운 모험을 하는 이유는 무엇이고, 그때마다 실패보다는 성공 쪽에 가까운 결과를 내게 된 이유는 스스로 생각했을 때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돌이켜보면 참으로 웃기는 질문이다. 나는 질문을 가장하여 내가 마왕에 대해 얼마나 잘 아는지 얼마나 열성팬인지를 어필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왕은 이렇게 대답했다.

"제 인생을 정리해주셨네요. 감사합니다. 앞의 부분들 다 들어내고 마지막만 질문이네요. 그 부분에 대해서 말씀드릴게요.... 블라 블라..."

 

창피한 기억에 대답도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다만, 그 질문을 통해서 나는 그와의 '대화'를 했다는 추억을 얻었고, 나름의 전리품도 얻었다.


좌측에 보이는 그가 직접 그날 사인해준 넥스트 2집 파트 2 the world 앨범이 그것이다. (우측은 오래전에 구매했던 초판...)

 

마왕을 만났고, 대화를 나눴고, 그의 선물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저 행복했다.

강연의 막바지에 그는 오늘 100분 토론에 나가기로 되어있어서 더 이상은 머무를 수 없다고 미안하다고 했고,

 

"오늘 제가 이 복장 그대로 100분 토론에 나가서 체벌에 대한 이야기를 할 거예요. 아마 내일이면 언론에서 몹시 욕하겠지만, 개의치 않고 선글라스 끼고 100분 토론하는 제 모습을 보시기 바랍니다. "

 

라고 하며 그 자리를 떠났다.

 

강연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TV를 틀어보니 100분 토론에 그가 등장했다. 바로 몇 시간 전에 내 앞에 있던 그 모습 그 복장 그대로 반지와 가죽 장갑, 선글라스까지 그대로 끼고 예의 그 건방진 모습으로 토론에서 자기의 생각을 명확한 어법으로 상대방에게 쏟아내며 약속을 지키고 있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100분 토론을 보지 않으며, MBC로 채널을 돌리는 것조차 꺼려할 정도로 싫어하게 되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가 TV에 서던 공연에서나, 강의실에서나 끊임없이 전달하던 그의 '메시지'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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