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자 “'인간 상품'의 유효 기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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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커피열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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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마르크스가 이야기한 

"노동의 물화", "일개 나사가 돼야 하는 노동자의 인간성 말살" 

등을, 연예계 노동자들이 - 제조업 노동자와 약간 다른 모습이지만 - 그대로 대표합니다. 


제조업 노동자가 예컨대 자동차라는 상품을 만들기 위해 평생 한 가지 노동 동작에만 자신의 인생이 국한되는 비극적 상황을 맞이하지만, 연예계 노동자는 스스로 상품이 돼야 합니다. 


웃음도 상품, 노출도가 정확하게 계산된 옷차림도 상품, 심지어 팬들과 주고 받는 말 몇 마디도 다 판촉, 즉 상품이 된 자기 자신을 더 잘 팔리게 하는 AS 같은 것입니다. 


이 '인간 상품'의 유효 기간 역시 자동차보다 좀 길 수 있지만 그렇게까지 길지 못합니다. 6-7년 지나면 캐리어 끝이고, 계획사는 또 다른 인간상품을 중심으로 해서 마케팅할 겁니다. 


상품이 돼야 할 인간의 하루하루의 그 무게란 어떤 걸까요? 

전 상상 자체가 안갑니다. 엄청난 부담감을 안고 산다는 것, 

늘 정신건강 차원에서 "산재"의 위험이 있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그러니까 어느 직업군보다도 정신 차원의 "직업병 리스크"가 높다는 것이죠.


https://n.news.naver.com/entertain/article/382/0001087404




가수 겸 연기자 故 설리(최진리)가 생전에 남긴 인터뷰가 공개됐다. 그는 자신을 향한 날 선 비난과 통제된 환경, 비정상적인 연예계에 대해 솔직한 생각을 밝히며 눈물을 흘렸다.

13일 넷플릭스를 통해 설리 주연의 단편 극영화 ‘4: 클린 아일랜드(각본 김지혜, 감독 황수아 김지혜)’와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 ‘진리에게(각본/감독 정윤석)’ 총 2편으로 구성된 ‘페르소나: 설리’가 공개됐다.

당초 해당 시리즈는 여러 단편 영화를 엮은 구성으로 계획됐다. 하지만 촬영 시기였던 2019년 10월 14일 설리가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오랜 시간 미완의 상태로 남아 있다 4년 만에 세상에 공개됐다.


이 가운데 ‘진리에게’는 배우이자 아티스트로서의 설리와 스물다섯의 최진리가 그 시절 느꼈던 다양한 일상의 고민과 생각을 인터뷰 형식으로 전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설리의 유작 ‘고블린’ 수록곡 중 하나인 ‘도로시’를 모티브로 삼았으며 ‘논픽션 다이어리’,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 ‘눈썹’ 등의 정윤석 감독이 연출했다.

설리는 ‘진리에게’에서 솔직한 생각과 감정을 드러내며 그간의 고민을 털어놨다. 그는 “어릴 때부터 ‘예쁘다’라는 단어에 갇혀 있었던 것 같다. 사람들이 ‘예쁘다’고 이야기하면 왜 나한테 그런 말을 하는지, 무슨 생각으로 날 예쁘다고 하는 건지 제일 궁금했다. 나는 마치 예쁜 행동만 해야 할 것 같았고, 실제로도 조신하지 않거나 예쁜 아이처럼 보이지 않으면 혼났다. 그때부터 계속 반항심이 생겼던 것 같다”고 고백했다.

설리는 “예쁜 내 자신이 싫었을 때가 되게 많았다. 내가 살아왔던 환경에서는 ‘너는 예쁜 여자로 태어났으니까 아무것도 몰라도 돼’ ‘그냥 사람들 사이에 앉아서 사람들 기분을 맞춰줘. 그럼 사람들이 좋아할 거야. 너는 예쁜 자체로 재밌으니까’ 이런 말들을 들어왔다. 외모에 대한 생각은 너무 많았다”면서 “너무 재수 없지 않냐. 예뻐서 살기 힘들었다고 얘기하면 너무 재수 없지 않냐”며 웃었다.


설리는 스물이 됐을 때 하고 싶었던 것이 딱 두 가지였다고 밝혔다. 첫 번째는 정신과 상담을 받은 것, 두 번째는 연애였다고. 설리는 “내가 처음 내린 결정이었고 결정에 대해 후회가 없고 행복했다”면서 “행복한 나를 엄마는 행복하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아서 되게 끊어내기 힘들었다. 엄마가 옆에서 하는 얘기는 거의 듣지 않고 내가 원하는 것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돌도 노동자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한참을 고민하다 “네”라고 대답했다. 

그는 아이돌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피력하며 “(다들) 연예인들도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연예인 일을 시작하면서 제일 많이 들었던 얘기가 있다. 그때 당시에는 그게 이상한 줄 몰랐다. ‘너는 상품이고 사람들에게 가장 최상의, 최고의 상품으로서 존재해야 한다’였다. 
사람들이 상품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나를 모든 사람들이 상품 취급했다. 그 사람들 입맛에 맞게 움직여야 했고 상품 가치가 떨어질까봐 두려워야 했다”면서 
“일단 나 같은 경우에는 내 주장을 할 수 있는 방법도 몰랐고 나의 생각을 얘기해도 되는 지도 몰랐고 내가 힘들다고 얘기한다 해서 바뀌는 상황도 아니었다”고 호소했다.


이어 “내 주변에는 아무도 ‘너가 스스로 선택해봐’ ‘넌 어떻게 생각하니’ ‘너가 골라봐’ ‘넌 요즘 어때’라고 묻는 그런 사람이 없었다. SM 욕 같은데 영화 ‘니키타’처럼 아무 생각이 없었다. 힘들어 죽을 것 같은데 그냥 하는 것이었다”고 회상했다.


“통제된 환경을 어떻게 견디면서 살았나?”는 질문에 설리는 “그냥 내 탓을 했던 것 같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거라고는 내 스스로 나에게 아픔을 줄 때밖에 없었다. 


스스로를 자책하고 깎아내리는 것이었다보니 계속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그게 내 탓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안 해봤냐. 못 해봤냐”고 묻자 설리는 눈물을 흘리며 “그런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어느 순간 생각하기 시작한 순간이 있었는데 그때 모든 게 무너져 내리더라. 내가 힘들다고 얘기했을 때 엄청난 어깨 위의 짐들이 다 (무너졌다). 그런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그러다 내 생각을 이야기하면서 어느 순간부터 나 자신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왜 내가 지금 기분이 나쁜지”라고 고백했다.


생략






故 설리(최진리)씨의 명복을 빕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거라고는 내 스스로 나에게 아픔을 줄 때밖에 없었다. 



# 노동자의 부품화

# '인간 상품'의 유효 기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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