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간이식 이야길 듣고 비슷한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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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누네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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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모와 아내의 간이식 강요 글을보고 심히 공감되네요.

전 당시 어려서 냉정하게 판단하지 못했습니다.

군대 막 전역 후 사회생활 시작할때 고모의 다급한 연락을 받습니다.

어린학생이던 둘째 딸이 갑자기 원인모를 이유로인하여 

상황이 안좋아지고 오늘내일 한다며 간 이식을 부탁하더군요.

20대 초중반인 전 고민할 시간도 없이 사람부터 살리자는 생각으로 병원으로 갔고, 검사 후 적합하다는 결과와 함께 

수많은 동의서와 서류를 확인하고 이식수술을 진행하였습니다.

 

이식진행할만한 가족이 없는것도 아니었지만 그땐 그런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아버지쪽으로는 여동생만 4명에 다 가정이 있고 자녀들도 

둘 셋 많습니다.)

 

온 가족 고모 고모부들 전부 앞으로 뭘 하던지 물심양면 도우고

우리 부모님에게도 잘 하겠다. 미안하고 고맙다 라는 소리 들었네요.

 

이식은 성공적으로 되었고, 시체처럼 누워 말한마디 못하며 오늘내일 하던 동생도 기력을 찾았습니다. 

이야기도 대화도 하며 제 병실까지 찾아줄 정도로..

그런데 한달이 채 안되었을때 이식한 장기에 적응을 못해 다시 악화되었고 다른 간을 이식받아야 하는 상황에 누구도 나서질 못해 뇌사판정으로 있다가 사망하였습니다.

 

금전적인 보상? 도움? 말도 안꺼냈습니다.

당시 받은적도 없구요. 자식잃은 슬픔이 얼마나 클까 생각하며 오히려 걱정했습니다. 고정지출이 있지만 회사에서 수술일로부터 어느정도 생활이 가능할때까지 전부 유급휴가 처리 해주어서

그것에 감사했습니다.

 

가까운 가족이라던 고모들은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수술하였던 해 명절때 저희 어머니가 고모들 연락을 받았답니다.

고맙고 미안하고 잘 하겠다고. 그게 다였습니다.

처음이자 마지막 안부연락이었습니다.

할머니 생신때 고모들 가족끼리 만나서 서로 챙기고 놀러다니고

저희 어머니께 연락한번 없었다는군요.

바라지도 않았지만 기분은 나빴어요.


명절 제사 어머니가 다 챙깁니다.

첫 해 빼곤 단 한번 연락도 없습니다.

전 수술 후 매년 아산병원에서 정밀검사를 진행했고

2년마다 한번 정도로 검사 횟수는 줄었네요.


기존 간의 75%를 이식해 주니 수술 후 1년은 힘들었습니다.

간은 재생된다지만 기존의 80~85% 정도 재생되면 더이상 

재생은 힘들다고 하더라구요.

속이 뒤틀리는 고통도 있었고,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찼으며

쉽게 피곤해지고 두통도 잦았습니다.

수술흉터 때문에 좋아하던 사우나도 한번도 가본적 없습니다.

시선이 부담스러워서..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제 인생 최악의 실수이자 죽을때까지 후회로 남는 순간입니다.

 

 

당시 사진과 퇴원 직전 사진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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