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라이베리아 대선 최종결과.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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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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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셉 보아카이 전 부통령조지 웨아 대통령)

 

2023년 라이베리아 대통령 선거 2차 투표 최종결과(투표율: 66.12%[+10.34])

 

조셉 보아카이(통일당중도-중도우파): 50.64%(+12.18)

조지 웨아(민주변화연합포괄정당): 49.36%(-12.18)

 

조셉 보아카이 전 부통령 1.28%p차로 대통령 당선 확정

 

 

2023년 라이베리아 대통령 선거 1차 투표 최종결과(투표율: 78.86%[+3.67])

 

조지 웨아(민주변화연합포괄정당): 43.83%(+5.46)

조셉 보아카이(통일당중도-중도우파): 43.44%(+14.68)

기타 군소 정당/무소속 후보들: 12.73%(-20.14)

 

조지 웨아-조셉 보아카이 결선 진출 확정

 

 

2023년 라이베리아 하원 선거 최종결과(투표율: 78.13%[+3.81])

 

민주변화연합(대중주의 포괄정당개혁주의): 22.12%(+5.55), 25(+4)

통일당(중도-중도우파경제적 자유주의): 13.09%(-1.23), 11(-9)

협력적 정치 정당(대안민족의회-자유당): 7.59%(-7.05), 6(+3)

인민통일당(중도사회자유주의-보수주의): 4.34%(-1.53), 2(-3)

민주재건운동(프린스 존슨의 당-통일당): 2.77%(-0.92), 4(+2)

모든 라이베리아인의 당(-민주변화연합): 2.53%(-2.47), 1(-2)

라이베리아민족연합(중도우파기민주의): 2.32%(+1.01), 1(=)

라이베리아 인민당(좌익민주사회주의): 1.95%(+0.37), 0(-1)

기타 군소 정당/무소속 후보들: 42.48%(+6.27), 23(+6)

 

1여당 민주변화연합 9.03%p차 1

 

 

전체 의석: 73(100% 단순다수 소선거구제)

과반 의석: 37(임기 6)

 

 

2023년 라이베리아 상원 선거 최종결과(투표율: 78.53%[+41.11])

 

민주변화연합(중도우파 포괄정당대중주의): 34.26%(+6.24), 6/9(+3)

통일당(중도-중도우파경제적 자유주의): 12.04%(40.27%), 1/3(-3)

민주재건운동(프린스 존슨의 당-통일당): 7.09%(+2.79), 1/2(+1)

인민통일당(중도사회자유주의-보수주의): 4.77%(-1.63), 0/1(-1)

협력적 정치정당(대안민족의회-자유당): 4.60%(40.27%), 0/3(-3)

라이베리아민족연합(중도우파기민주의): 2.30%(+1.53), 0/0(=)

라이베리아 인민당(좌익민주사회주의): 2.19%(+2.19), 0/0(=)

모든 라이베리아인의 당(-민주변화연합): 0.78%(+0.78), 0/1(=)

기타 군소 정당/무소속 후보들: 31.97%(+11.73), 7/11(+3)

 

1여당 민주변화연합 22.22%p차 1

 

 

전체 의석: 30(9년 임기절반씩 선출)

선출 의석: 15(14년 선출 임기 마감)

전체 과반: 16(다음 선거는 20년 선출 종료인 29)

선출 과반: 8

 

 

아프리카 서해안에 위치한 인구 520만의 나라 라이베리아는 노예에서 해방된 미국계 흑인 아프리카 송환자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끝에 1847년 독립하였으며, 1869년 창당한 트루휘그당1878년부터 무려 102년간 초장기 집권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미국계 흑인(전 인구의 5% 남짓중심의 배타적 반공 보수주의로는 아프리카 대륙의 탈식민지 상황 속에 새롭게 맞이하게 된 주변국들과의 관계가 파탄에 이를 것이 뻔했기에 윌리엄 터브먼 대통령(1944-1971년 집권)윌리엄 톨버트 대통령(1971-1980년 집권시기에 임기 제한, 1944년 재산에 따른 투표권 제한 철폐야당 창당 자유화-미국계 흑인 내각 기용공산 동구권 및 제3세계와의 연 이은 수교 등을 통해 미국 일변도 외교로 인한 고립 상황을 중도노선으로 `탈피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은 보수적인 직업군인들의 불만을 샀으며족벌정치와 부정축재로 개혁조치도 빛을 잃어가던 와중에 쌀 등의 생필품 가격 급등으로 인한 대규모 시위와 유혈 무력 진압유력 야당 탄압은 톨버트 정권에 결정타를 날려버렸습니다

 

그렇게 톨버트를 위시한 내각인사들 대부분(40대의 앨런 설리프 존슨 재무장관 등 제외)을 공개 처형하는 유혈 쿠데타로 정권을 뒤집은 부사관들의 지도자 새뮤얼 케니언 도 육군 상사(1980-90년 집권)였으나정작 본인도 친미 반공 외교노선으로 과거회귀한 대가로 원조를 받아온 것 정도를 빼고는 정국 안정에 뾰족한 수가 없었습니다.

 

집권하자마자 연이은 쿠데타로 인해 통치가 더욱 거칠어지고 5년 후 대선에서의 민정이양 약속도 의 출마 강행(아이러니컬하게도 그의 경쟁자 이름은 잭슨 도)과 부정선거(쿠데타 이전 상원의원 출신의 잭슨 도가 투표에서 이기고 개표에서 졌다는 게 중론)로 얼룩지면서 제대로 지키지 않았으며결정적으로 냉전이 종식되어가자 반공 정권 투자 동기가 사라진 미국이 지원을 줄이기 시작하면서 의 기반은 더욱 위축되었습니다.  

 

게다가 본인이 소속된 토착 원주민 부족(크펠레족 20.3%, 바사족 13.4%, 그레보족 10%, 기오족 8%, 마노족 7.9%, 크루족 6%, 로마족 5.1%, 키시족 4.8%, 골라족 4.4%, 크란족 4%, 기타 16.1%) 중 크란족만을 싸고 도는 모습에 불만을 품은 기오족과 마노족에 대해 크란족으로만 구성된 군대를 보내 수천명을 학살하면서기존 기득권을 상실한 것에 부글부글 끓던 미국계 흑인들까지 반-도 투쟁에 나서면서 1989년 제1차 라이베리아 내전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의 뒤통수를 치고 자기만의 세력을 규합한 골라족 배경의 찰스 테일러(-톨버트 민주화운동으로 명망 얻어서 도 내각 요직에 앉았으나 부패 혐의 논란으로 사이가 벌어진 끝에 미국에서 체포)가 미국의 물밑 지원을 받으며 라이베리아 국민애국전선(NPFL)이라는 반군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도 친-리비아 노선에 대한 반감을 가진 프린스 존슨(1985년 반-도 쿠데타 참여자이자 친미파)이 기오족과 함께 라이베리아 독립국민애국전선(INPEL)으로 떨어져 나가는 등주변국들과 함께 혼란상이 계속되던 가운데모든 세력을 잃어버린 새뮤얼 도가 그나마 같은 공개적 친미파인 존슨을 믿고 서아프리카 경제공동체 감시단 건물에 협상을 위해 들어서다 연행되어 잔혹한 고문 끝에 제거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후 아모스 소여 임시정부가 들어섰지만 테일러존슨 모두 이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소년병 강제 징집 및 가혹행위상호 학살민간인 경제적 착취 및 다이아몬드 채굴 등 광산 노동력 활용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렇게 수십만이 죽고 수백만이 난민이 된 끝에 1997년 자유선거로 찰스 테일러앨런 설리프 존슨 전 재무장관75.3%:9.6%으로 꺾고 대통령 직에 올랐으나이는 더 이상의 내전만은 피하고 싶은 일반인들의 심리를 꿰뚫은 테일러가 무자비하고 공공연한 재봉기 협박을 살포하며 공포심을 심어 놓은 결과였습니다

 

그러나 테일러는 선거 승리에도 불구하고 돈과 권력에 대한 탐욕을 멈추지 않고 다이아몬드 핵심생산지인 시에라리온에서 마침 벌어지던 내전(91-02)에 계속해서 개입하여 반군을 지원한 끝에수십만이 학살되고 수십만이 성폭행 당하는 지옥도를 만들어 낸 끝에 밀수되어 판매되는 피의 다이아몬드의 끔찍한 원흉이라는 악명을 떨치게 됐습니다

 

그렇게 얻어낸 수억 달러를 독점하며 폭압통치를 지속하는 테일러에게 불만을 품은 끝에 반-테일러를 기치로 여러 반군들이 일어서면서 또다시 학살과 착취성범죄로 물든 제2차 라이베리아 내전이 시작되었습니다이에 원래도 기독교-이슬람 문제로 서로 갈등을 빚던 리비아의 카다피가 테일러에 대한 지원을 끊고미국과 주변국들 역시 그동안의 잔혹행위와 전염되는 학살에 대안을 모색하게 되면서 테일러의 몰락으로 이어졌습니다.

 

99-02년 평화협정을 어긴 시에라리온 반군 혁명연합전선(RUF) 지도자 포데이 상코가 2000년 체포되고, 2002년엔 내전 종식 및 자유선거가 치러지면서 우군을 잃은 테일러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으며국내외의 압박이 더욱 거세지고 라이베리아 반군들이 테일러의 사임을 조건으로 요충지 철수 및 무장해제를 약속하자 국내 지지층을 빼면 모두에게 버림받은 찰스 테일러2003년 결국 사임을 선언하며 물러났으며시에라리온 내전 전범으로 체포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렇게 2005년 대선이 치러지게 된 상황에서 아프리카 대륙아니 비유럽-비남미 유일의 발롱도르(1995수장자인 전설적인 축구영웅 조지 웨아39세의 젊은 나이로 대선에 출마할 것을 선언하면서 한때 찰스 테일러의 정치적 동맹이던 찰스 브럼스킨 자유당 대표 Vs. 새뮤얼 도(형제가 후에 교통부장관으로 재임)잭슨 도(90년 전후 혼란기에 NPFL에 의해 살해되며 설리프의 테일러 진영 이탈 영향), 트루휘그당(장관으로 재임모두의 유산을 물려받은 엘런 존슨 설리프의 대선 구도가 그야말로 요동치게 됐습니다.

 

당시도 웨아의 인지도와 명성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았기에 막 창당한 민주변화의회의 의석 1위 등극과 함께 대선도 여유롭게 1(1차 투표웨아: 28.27%, 설리프: 19.75%, 브럼스킨: 13.87%)로 무난히 결선에 올라갈 수 있었지만엘런 설리프 존슨 역시 하버드 석사 출신 재무장관유엔 개발 프로그램 아프리카 담당 국장(92-97) 등의 화려한 경력이라는 엄청난 엘리트 코스와 수십년의 정치 경력을 발판삼아 정치 신인인 웨아를 선거전에서 그야말로 압살하였습니다

 

게다가 브럼스킨의 중립선언과 함께 2번의 내전으로 입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선 아무래도 전문가를 믿고 맡기는 게 좋을 거라고 판단한 타 후보 지지층들이 대부분 엘런 존슨 설리프를 선택(2차 투표: 59.40%:40.60%)하며 웨아의 첫 도전은 선거 직후 부정선거 항의에도 불구하고 실패로 마감되었습니다

 

그렇게 임기를 시작한 엘런 설리프 존슨이었지만, 2008년 전세계적 금융위기 사태 속에 선박 등록업과 광산업도 타격을 입으며 재선이 수월하지는 않을 듯했습니다

 

이에 그녀의 경쟁자들도 일찌감치 움직여서 053위를 차지한 브럼스킨은 진작에 출마를 선언했으며웨아브럼스킨과 정부통령 후보 협상을 하다 갈라선 끝에 윌리엄 터브먼 전 대통령의 조카이자 05년 대선에 9.20%4위를 한 윈스턴 터브먼과 손을 잡으며 부통령 후보로 나서기로 결정하였습니다여기에 더해 프린스 존슨도 반군 시절 기반을 발판 삼아 출마를 선언하였습니다

 

그러나 2011년 치러진 대선에선 잠시 저조해진 경제에도 불구하고 설리프의 내전(03년 경제성장률 -31.3%복구(경제성장률 06년부터 8.5%-13.1%-6.1%-5.2%-6.3%-7.7%및 화해 노력에 만족한 국민들이 선거 직전 있었던 노벨평화상 시상식에 엘런 존슨 설리프가 공동선정되는 것을 본 후 폭우에도 불구하고 설리프에게 대거 힘을 실어주면서 1차 투표부터 압도적 1(설리프: 43.93%, 터브먼: 32.68%, 존슨: 11.58%, 브럼스킨: 5.45%)에 오르게 됐습니다

 

그 와중에 존슨브럼스킨마저 내전시절 범죄에 대한 기소여부를 두고 벌어진 갈등을 뒤로한 끝에 설리프를 지지선언하면서 터브먼의 승리 가능성이 제로가 되자터브먼-웨아 측은 공정 선거를 보장하기 어려워졌다며 결선을 보이콧하여 설리프의 싱거운 초압승(90.7%:9.3%속에 웨아의 두번째 도전이 또다시 좌절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두 번의 패배에도 굴하지 않은 조지 웨아는 승리를 위해선 그 누구와도 손잡아야 한다는 판단 하에 찰스 테일러의 아내 주얼 하워드 테일러를 부통령 후보로 지명하며 여전히 상당한 지지층을 보유하던 테일러 측을 끌어들여 민주변화연합을 결성했습니다

 

이는 국내외로 한때 내전 평화운동가이던 축구영웅이 독재자와 타협했다는 식으로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켰으며, 16년 필리핀 대선에서 독재자의 아들 봉봉 마르코스 부통령 후보와의 연대를 선언한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 후보가 같이 거론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 후보들 또한 전쟁범죄를 저지른 군벌들과 어느정도 직간접적으로 엮여있던 데다, 12년 설리프-보아카이 통일당 장기집권에 대한 피로감과 14년 에볼라 사태로 인한 불만, 2기 막판에 벌어진 경기 악화(138.8%->140.7%->150%->16-1.5%, 10%대 초반 월별 물가상승률속에 연대 효과는 필리핀처럼 확실했는지, 1차에서 거의 두 자릿수 차로 1(웨아: 38.37%, 보아카이: 28.76%, 브럼스킨: 9.62%, 존슨: 8.22%, 코카콜라 부사장 출신의 알렉산더 커밍스 주니어: 7.21%)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해냈습니다.

 

그리고 존슨의 지지를 받은 2차 투표(61.54:38.46%)에서 12년 부통령 경력의 보아카이에게 05설리프 이상으로 압도적 승리하며 1944년 본격적 민주화 이래 73년 만의 첫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룩했습니다

 

당장 첫 경쟁자이던 앨런 설리프 존슨부터 대선 당시 웨아를 사실상 지지하며 보아카이 편을 들지 않았단 이유로 18년 당에서 축출당할 정도였으니그 당시 축구영웅 웨아의 범국민적 인기가 그 테일러의 아내와 손잡았음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엄청났었는지는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정작 집권하고 나자 웨아는 국민들을 실망시키기 시작했습니다. 172.4%로 회복되기 시작하는 듯했던 성장률은 웨아 집권 첫해181.2%로 오히려 거꾸러지더니 19-20년엔 코로나 본격 진입 이전부터 -2.5%, -3.0%으로 더욱 처참한 성적을 보였습니다

 

2019화폐가치가 떨어지며 물가가 30% 이상 상승하고 1억달러에 달하는 신권 화폐가 어이없이 분실되는 일이 벌어지면서 계속되는 인플레와 부패에 수만명이 항의시위에 나서자반국가적인 분열 행태를 규탄한다며 역으로 시위대를 비난하면서 그야말로 권력에 취해 독재자의 길로 빠져드는 듯하다는 비판까지 나왔습니다

 

설상가상으로 20년부터는 코로나 사태까지 터지고 강간 발생률이 급증하자, 209월엔 아예 성폭행 비상사태까지 선포하는 등더욱 심해진 경제난에 이어서 치안까지 흉흉해지게 됐습니다

 

또한 19년 말 30%대 초반으로 정점을 찍고 21년 말 들어 5% 아래로 떨어지며 좀 나아지는 듯했던 인플레 문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되면서 재차 상승세로 돌아서며 월별 10%는 기본으로 찍는 수준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재출마 선언으로 대통령의 최대 적수 자리에 올라선 보아카이를 제외해도 경쟁자가 넘쳐나게 됐습니다그중에서 알렉산더 커밍스 주니어 대안민족의회 대표20년 상원선거에서 통일당과의 3당 연대를 뒤로 하고는 찰스 브럼스킨의 딸인 찰린 브럼스킨 자유당 대표와 손잡고 협력하는 정치정당들이란 연합을 만들며 스스로를 가장 확실한 결선 카드로 부각했으며반부패 이슈로 인기를 끌던 티아완 사예 공로에 라이베리아 인민당 후보와 당까지 끌어들이려 했으나 이는 실패했습니다

 

한편조지 웨아 대통령은 인기 하락을 인정하고 승리 방정식을 다시 완성하기 위해 찰스 테일러의 측근이던 사업가 베노니 윌프레드 유리 모든 라이베리아인의 당 대표17년과 달리 연대로 끌어들였으며, 78세의 고령인 보아카이 측의 건강문제를 계속해서 부각하였습니다

 

그러나 10101차 투표가 치러진 결과상하원 선거에선 이득을 보며 제1여당 민주변화연합통일당을 제치고 확고한 제1당 자리를 굳혔지만정작 가장 중요한 대선에선 0.39%p차 접전 끝에 간신히 1위로 결선으로 가는 데 그쳤습니다한편커밍스 주니어는 결선 가능성은 고사하고 자당 상하원 득표(7.59%, 4.60%)보다도 못한 1.61%5위를 하는 굴욕적인 결과를 받고 말았습니다

 

한달 간의 열성적인 캠페인과 이합집산, 1110일 벌어진 총기 테러 사태 이후 1114일 치러진 2차 투표 결과프린스 존슨이 창당한 민주재건운동제레미아 쿵을 부통령 카드로 뽑은 조셉 보아카이 전 부통령이 북부 해안에 위치한 수도 몬로비아를 중심으로 제기된 웨아 책임론 속에 피어난 전 정부 향수를 등에 업고동부를 중심으로 여전히 탄탄한 인지도와 지지기반을 자랑하던 조지 웨아 대통령1.28%p라는 초접전 끝에 꺾으면서 1944년 민주화 이래 사상 첫 현직 대통령 패배를 이끌어 냈습니다

 

일주일간 계속된 개표 와중에 조지 웨아 대통령은 전세계적 부정선거 주창자들과 달리 패배를 순순히 인정하였으며보아카이 당선자의 임기는 24 124일 시작될 예정입니다

 

 

출처 목록 링크

https://gksejrdn7.tistory.com/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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