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말레이시아 총선 최종결과.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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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PKR+DAP+AMANAH+MUDA]: 희망동맹[인민정의당+민주행동당+국민신뢰당+말레이연합민주동맹], WARISAN: 사바유산당, GPS: 사라왁정당동맹, GRS[BN]: 사바인민연합[국민전선], PN[BERSATU+PAS+GERAKAN]: 국민동맹[말레이 원주민연합당+말레이 이슬람당+말레이인민운동당], BN[UMNO]: 국민전선[통일말레이조직])
2022년 말레이시아 총선 최종결과(등록투표율: 73.14%[-9.18])
희망동맹(좌파포괄정당, 다민족주의, 시민민족주의): 37.94%(-2.26), 82석(-19)
국민동맹(우파포괄정당, 이슬람주의, 우익대중주의): 30.35%(+6.43), 73석(+42)
국민전선(우익포괄정당, 말레이민족, 국민보수주의): 22.36%(-5.56), 30석(-28)
사라왁정당연합(중도우파-우익, 지역주의): 3.94%(+0.11), 23석(+4)
사바인민연합(중도우파-우익, 지역주의): 1.31%(+0.29), 6석(+4)
사바유산당(중도, 진보주의, 다민족주의): 1.82%(-0.50), 3석(-5)
기타 정당/무소속: 2.28%(+1.49), 5석(+2)
희망동맹 7.61%p차로 1위이나 과반 크게 미달하며 이합집산 불가피
전체 의석: 222석
과반 의석: 112석
지난 이야기: https://blog.naver.com/gksejrdn7/222100883989
동남아시아의 중심부에 위치하며 말레이 반도와 보르네오 섬에 걸친 나라 말레이시아는 역내 유일 연방국으로 국가원수직을 5년마다 교대하는 9개의 술탄국과 4개 공화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957년 완전 독립하기 이전의 영국 식민지 시기, 백인층의 정치권력체계 속 중국계의 경제적 이권 장악에 불만을 품은 말레이계 원주민들은 통일말레이국민조직(UMNO) 과반 의석과 일부 중국계 및 인도계 정당으로 대표되는 권위민주주의 체제(일본 자유민주당 55년 체제와 멕시코 제도혁명당 초장기집권을 연상) 속에 부미푸트라 특권 체계를 형성하여 교육과 노동, 정치에 있어서 말레이계 지분 절대 우위 구도를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갈등을 빚은 중국계 다수 지역 싱가포르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말라야 연방에서 떨어져 나가고, 69년 5월 13일에는 민주행동당(DAP)으로 대표되는 중국계(+인도계) 정당들이 약진하고 통일말레이국민조직의 동맹당이 간신히 과반을 지킨 것에 고무된 중국계들이 수도 쿠알라룸푸르로 축하 행진을 하던 중 말레이계와 충돌하면서 수천명의 사망자가 발생, 툰쿠 압둘 라만 초대 총리(57-70년 재임)가 계엄령을 선포하는 결말을 맞게 됐습니다.
이로 인해 툰쿠 압둘 라만 총리가 책임을 들어 사임하고, 압둘 라작 2대 총리(70-76년 재임) 하에서 본격적으로 도입된 부미푸트라 정책과 신앙심과 헌정에 대한 충성심을 강요하는 말레이판 국민의례 등으로 형성된 애국주의적 철권통치 인권탄압 분위기에 야권이 위축된 나머지 74년 총선부턴 여당이 개헌선을 초과하는 의석 절대 다수(135석/154석)를 차지하며 그 후 수십년 간 이어질 일당 우위 체제를 형성하게 됐습니다.
권위주의 독재 정치에 대한 여러 비판에도 불구하고 비동맹 중립 외교 및 오일 쇼크 등에 힘입은 매년 10% 안팎에 달하는 경제성장(75년 제외)에 있어서 큰 공을 세운 압둘 라작 총리가 76년 재임 중 사망했습니다.
이후 들어선 후세인 온 3대 총리(76-81년 재임)는, 국민 통합 노력과 스스로를 치켜세움에 있어서 여러가지로 엇갈린 평가를 받으면서, 전임엔 못 미치지만 여전히 7% 안팎에 이르는 준수한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끝에 81년 건강 악화를 사유로 마하티르 빈 모하맛 4대 총리(81-03년 재임)에게 자리를 물려주게 됐습니다.
툰쿠 압둘 라만과 압둘 라작, 후세인 온 모두가 왕실집안 출신이거나 거물급 가문의 사촌지간이라는 굉장한 배경을 지니고 있었으나, 마하티르 4대 총리는 당내 비주류적 면모를 다방면으로 보이면서 신선한 느낌으로 국민들에게 다가왔습니다.
재임 초엔 일부 반체제 인사들을 사면하고 안와르 이브라힘 같은 외부 인사를 끌어들이면서 언뜻 온건한 정치를 행할 것처럼 보였으나, 85년 고유가 시대의 해소로 잠시 마이너스 성장률을 보이고 내부 보수파의 반발이 일자 갈등 끝에 여기에 편승하며 강경책으로 돌아선 나머지, 90년대 초 냉전 해소까지는 인권 탄압과 민족 차별 행태에 있어서 큰 변화를 보이지 못했고 냉전 이후에도 이는 일부 개선에도 불구하고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 가운데 2020년 선진국 진입을 목표로 10%에 육박하는 고도성장을 이루던 마하티르 정권 초중반기가 끝나가고 경제위기가 닥치면서 경제 정책을 놓고 영입인사들과도 다툼이 번졌습니다.
이러한 갈등의 정점은 바로 97년 IMF발 아시아 연쇄 금융위기 대응법을 둘러싼 안와르 이브라힘 부총리와의 갈등 끝에, 긴축재정을 주장하던 반대파를 묵살하고 고정환율제로 위기 대응에 나선 후 동성애 부패혐의로 이브라힘 부총리의 직위 박탈 후 고문 및 수감되는 고초를 당하게 한 것입니다.
여하튼 빠른 대응에도 불구하고 98년 마이너스 7% 성장률의 충격파가 워낙 막대했기에 기회를 노린 야권은 민주행동당이 주가 되던 이전과 달리 말레이 이슬람당의 파지르 누르를 중심으로 똘똘 뭉치며 대안전선을 형성한 후 마하티르의 국민전선과 정면 대결에 나섰습니다. 여기엔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과 면담하며 말레이시아 재야의 상징이 된 안와르 이브라힘의 아내 완 아지자가 창당한 말레이계(+인도계) 인민정의당(PKR) 역시 가세하였습니다.
그 결과 99년 총선에서 야권은 의석을 절반 이상 늘리고 40%대 득표를 얻으며 일부 성과를 보였으나, 막상 개헌 저지선 등의 목표달성에는 실패하면서 분위기 반전까지 이어지진 못하여 04년 총선부턴 민주행동당의 이탈이 초래되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마하티르 총리는 2001년의 마이너스 성장률 추락위기를 무사히 넘기고 5%대 성장률로 유종의 미를 거두며 압둘라 아맛 바다위 5대 총리(03-09년 재임)에게 자리를 물려주게 됐습니다.
아맛 총리는 부패척결, 교육 확충과 함께 마하티르 말기의 준수한 5% 경제성장률을 유지해 나가며 04년 총선에서 의석 거의 전부를 싹쓸이하는 초압승을 거두는 등 수월한 장기집권을 이어 나갈 것으로 보였으나, 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몰아 닥치면서 위기에 몰렸습니다.
한편, 그동안 야권을 주도하던 림킷 시앙 민주행동당 대표(제1야당 대표직 73-74, 75-99, 04-08년 재임)가 더 이상 야권 전체를 주도하지 않으면서 야권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됐습니다. 안와르의 아내 완 아지자가 전면에 나서며 설립한 야권연합 인민동맹이 08년 총선에서 개헌 저지선을 차지하는 사상 초유의 성과를 낸 것입니다.
결과를 보고 충격에 휩싸인 국민전선은 마하티르 등의 목소리를 등에 업고 사실상의 패배 책임을 물어 압둘라 아마드 바다위 총리를 2대 총리의 아들인 나집 라작 6대 총리(09-18년 재임)로 교체하였습니다. 아마드 총리는 끝까지 버티려고 했으나 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3월 총선 후 본격화되면서 마이너스 성장률 진입이 분명해지자 자리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나집 라작 총리는 아버지 향수는 고사하고 상상을 초월하는 부패 문제를 안고 오면서 국민전선 전체를 완전한 나락으로 빠뜨렸습니다. 말레이시아개발유한공사(1MDB) 스캔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골드만삭스, 딜로이트부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전세계를 뒤집어 놓은 이 사건은 말레이시아 석유를 담보로 경제개발에 나설 거라는 회사가 13조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부채를 뒤집어쓴 와중에 총리(7억달러 추정)와 측근들이 투자금을 빼돌리며 이를 연예인 초청과 파티에 흥청망청 소비한 역대급 사건이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나집 라작 총리는 쌀보다 23배는 비싼 퀴노아밥(마하티르 전 총리는 국산 쌀만 먹는다고 맞대응)과 부인의 사치스러운 명품 쇼핑으로 대표되는 일반 시민들과 유리된 생활상을 누리고 있음을 별 생각 없이 지속적으로 드러내고, 총선이 닥치자 대중주의적 보조금 지급을 통한 인기몰이에만 골몰하면서 아버지에 대한 향수마저 날려 먹었습니다.
이를 본 말레이 국민들은 극심한 여당 불신에 휩싸인 나머지 그동안 여권 주도 경제성장에 밀려 대안으로 보지 않던 야권을 주목하기 시작하였으며, 1MDB 스캔들에 비판 목소리를 높이며 여당을 탈당한 말레이시아 원주민연합당(BERSATU)으로 대표되는 야권 합류 세력은 이러한 움직임을 가속화시켰습니다.
마하티르가 아직 신당을 창당하지 않고 스캔들이 두드러지지 않았던 2013년 총선에서 안와르 이브라힘이 정치적 연금이 풀리고 전면에 나선 것만으로도 야권연합이 득표율 1위를 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으며, 여당은 오직 지역구 획정 수혜만으로 안정 과반을 유지하는 판이었습니다.
비록 이브라힘 가문(안와르 이브라힘의 보수성향 내포 논쟁, 딸의 반국가단체 유착 의혹)과 희망동맹 정당들(외국인 요리 금지법 논쟁) 역시 과장 논란에도 불구하고 여러 설화에 휩싸이긴 했으나, 국민전선에 비해선 신선하고 깨끗한 이미지가 상당하던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여기에다 마하티르마저 나집 라작의 부패상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16년 신당을 차리고는 안와르의 재수감으로 지도자 공백이 발생한 희망동맹에 총리직 교대를 약속하며 합류하고 이슬람민주주의 성향의 온건파 국민신뢰당(AMANAH)까지 가세하자, 이슬람근본주의 성향의 말레이 이슬람당의 연합 이탈을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2018년 5월, 야권연합 희망동맹은 나집 라작 당시 총리의 1MDB 스캔들에 반발하여 여당연합 국민전선을 탈당했던 마하티르 모하맛 전 총리(당시 만 92세, 1981-2003년 집권)가 이끄는 말레이시아 원주민연합당과 손을 잡고 61년 만의 사상 첫 정권교체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4년 임기를 반으로 쪼개서 첫 2년은 마하티르가 총리를, 나머지 2년은 당시 감옥에 갇혀 있던 야권 지도자 안와르 이브라힘이 재보궐을 통한 의원직 확보 후 맡기로 합의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과거 아시아 외환위기 대응방안을 둘러싸고 서로 갈등을 빚다가 안와르 이브라힘이 동성애 및 부패혐의로 정치보복성 기소를 당하면서 반강제적으로 야권으로 쫓겨나야 했던 악연을 마침내 청산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희망동맹이 재보궐 선거에서 분열된 국민전선을 상대로도 연패하면서 차기 총선에 대한 불안감 및 내부 갈등 양상이 드러나기 시작했으며, 막상 2년차에 들어서자 마하티르 당시 총리는 총리직 이양에 회의적인 의사를 내비쳤습니다.
이런 가운데에 2020년 2월에 들어서자 마하티르 총리는 후계 구도를 둘러싼 분열 속에서 갑작스러운 사임발표라는 정치적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이로 인해 여야를 막론하고 혼란 속에 빠져있었던 가운데 마하티르 총리의 재신임이 유력한 것처럼 보였으나, 난데없이 무히딘 야신 내무부 장관이 말레이시아 원주민연합당 소속 의원 상당수와 구 국민전선 소속 중국계 정당 말레이시아 인민운동당, 제3의 위치를 형성하던 극우 이슬람주의 말레이시아 이슬람정당, 그리고 일부 지역 정당들(사바, 사라왁)을 규합하여 새로운 우파 여당연합 국민동맹(PN)을 결성하고 국민전선과 힘을 합쳐 총리직에 오름에 따라 나머지 야권 인사들은 졸지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후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 사태가 터지면서 강력 대응을 선언한 무히딘 야신 총리 및 정부 내각에 대한 평가가 큰 폭으로 올랐으며, 중앙 정치구도 변화에 따른 집권 연정 과반 상실로 인한 조기 총선이 실시되었던 사바 주에서도 대승을 거두면서 차기 연방 총선을 기대해볼 수 있게 됐습니다.
20년 9월 26일 치러진 말레이시아 사바 주 지방선거 결과, 중앙 집권당 국민전선 소속 사바인민연합이 치열한 승부 끝에 8.22%p차로 완승하면서 사바유산당 돌풍이 분지 2년만에 정권 교체를 이뤄낸 것입니다. 해당 선거에서의 변화는 지난 말레이시아 총선 이후의 정치구도 격변에 기반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재보선을 통해 의원직이라는 최소 조건을 확보한 안와르 이브라힘 희망동맹 대표가 사바 주 총선을 앞두고 총리 취임을 위한 과반수 의원을 확보했음을 주장함에 따라, 또다른 격랑이 말레이시아 정국에 휘몰아칠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엔 국민전선 핵심인 통일말레이국민조직 의원들이 국민동맹의 우파 지지층 흡수에 위기감을 느낀 나머지 사바인민연합에 합류한 말레이시아 원주민당 분파 및 마하티르 모하메드 전 총리 충성파와 손을 잡고 안와르 이브라힘의 정부 예산안 거부 움직임에 조금씩 동조하기 시작하면서 또다시 판이 뒤집혔습니다. 여기에 더해 경제성장률이 코로나 직격탄을 맞으며 다시금 -6%에 이르면서 정부 악재가 더해지게 됐습니다.
반-안와르파 핵심인사가 당 요직에서 해임되고 통일말레이국민조직 지도부에 대한 수사가 무히딘 야신 정부 하에서도 이어지는 것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면서, 2021년 1월 희망동맹-국민전선 정부라는 희대의 대타협이 또다시 도출되었습니다.
그 결과로 무히딘 야신 내각은 붕괴되었으며, 국민전선 및 통일말레이국민조직 소속의 이스마일 사브리 야콥 의원이 희망동맹 소속 민주행동당과 인민정의당, 국민신뢰당 등의 지원을 받으며 총리직에 올랐습니다.
그렇지만 무히딘 야신 전 총리는 위기 상황에서도 벌어지는 정쟁으로 인한 정치적 희생양 이미지를 얻으면서 국민적 인기가 여전히 상당했으며, 마하티르 모하맛이 초고령에도 불구하고 재출마를 선언하여 투표 연령 하락으로 청년층의 정치 관심은 날이 갈수록 높아지는데 기존 정치 지도자들이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고 노욕을 부린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무히딘은 안와르 이브라힘과 같은 75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말레이시아 이슬람당이 빌리 아일리시의 공연을 비-이슬람적인 행태라며 반대 시위를 벌이며 자당을 지지하지 않으면 지옥에 갈 거라고 주장하는 아흐마드 파들리 샤리 국민동맹 청년 지도자, 그리고 샤리아와 무슬림 총리제를 지지하면서 탈레반이 변했는데 언론이 괜히 트집을 잡는다는 압둘 하디 빈 아왕 대표, 탈레반의 승리를 축하한 무하마드 칼릴 압둘 하디 같은 인물들의 논란에도 불구하고 말레이시아 내에서도 퍼지는 이슬람 근본주의 일부 여론에 힘을 받으면서 국민동맹은 상당한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총선 전초전으로 주목받은 21년 11월 20일 말라카 주 총선에서 국민전선이 과반을 탈환하고 12월 18일 사라왁 주 총선에선 국민전선 계열(18년 이후론 탈퇴)의 사라왁정당연합이 다시 한번 압승을 거둔 데다, 22년 3월 12일 조호르 주 총선에선 국민전선 측이 43%를 득표하여 14.5%p나 득표율이 느는 압승을 거두면서 26%로 득표율이 반토막난 희망동맹과 24%를 득표했으나 의석은 오히려 감소한 국민동맹을 누르며 썩어도 준치임을 보여주어 삼파전에서 앞서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야권의 압박으로 반년 정도 앞당겨 이루어져 그동안 대다수의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지던 전통(함께 조기 지방선거를 선언한 파항, 페락, 프를리스 제외)을 끝낸 2022년 11월 19일 말레이시아 조기 총선 결과, 썩어도 준치라고 오매불망 수상 등극만 기다리던 열렬 지지층을 등에 업고 총리 지지율 1위를 달리던 안와르 이브라힘이 있는 희망동맹이 말레이시아 원주민당의 이탈에도 불구하고 막판 돌풍을 일으키며 다시금 정당연합 1위를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젊은 골수 이슬람교도들이 말레이시아 이슬람당(18->44석)으로 대거 뭉치면서 크게 세를 불린 국민동맹에게 약간 앞서는데 그치며 과반에는 실패했습니다. 국민동맹은 여기에 더해 국민전선 텃밭인 파항을 제외한 나머지 두 지역에서도 압승을 거두며 돌풍을 증명해냈습니다.
이에 반해 수십년간 말레이시아 정치를 주도하던 국민전선과 통일말레이국민조직은 코로나와 러우전쟁으로 인한 인플레 악화 사태 와중 정치 격변의 원인 제공자로 지목되고 이미지 및 인물 소비가 극에 달하면서, 10월까지만해도 희망동맹과 1위 경쟁하던 기세를 완전히 잃고 그저 캐스팅 보트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국민전선 내 연합체이던 사라왁정당연합과 사바인민연합이 독자 블록화에 나서며 전자는 연정 참여에 그치고 후자는 선거 연대 정도에 머무르면서, 소수민족 지지층의 이탈에 이어서 지역기반들 역시 다른 길을 걷는 모습을 보이는 중입니다.
한편, 사상 초유의 97세 국회의원직에 도전하던 마하티르 모하마드를 위시한 여러 기존 정치인들도 낙선하면서 대대적인 세대교체가 이루어졌으며, 국민동맹의 출현과 함께 그동안의 국민전선 여당, 희망동맹 야당 구도를 완전히 뒤흔드는 말레이시아 정치의 새로운 지평이 열리게 됐습니다
현재 캐스팅 보트 격이 된 국민전선이 양 강 모두에 대한 지원 거부를 선언한 가운데, 상징적 국가원수인 압둘라 이브니 아흐맛샤 국왕은 과반 확보를 주장하는 안와르 이브라힘과 무히딘 야신을 모두 부르며 첫 협상 주도권을 누구에게 줄지를 고심하는 중입니다.
이번 선거에서 선거인 등록 대비 투표율이 떨어지긴 했으나, 지난 2018년 총선에서의 1500만명에서 2100만명으로 등록 인구 자체는 큰 폭으로 상승하였기에 실질적 투표율은 대폭 상승한 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여기엔 21세에서 18세로의 투표연령 하락이 결정적 원인으로 추정됩니다.
이러한 면모는 3월 조호르 주 총선에서의 등록인구 상승(180만->250만)에서 그 단초가 보이기는 했으나, 기존 터줏대감들이 활약하기 쉬운 지방선거였기에 전국적인 변화가 잘 드러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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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qq 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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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마핱 12.16 비밀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