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태국 총선 최종결과.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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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FP: 행동전진당, PT: 태국인당[푸어타이당], BJT: 태국자랑당[뿜짜이타이당], UTN: 연합태국국가당, PPRP: 인민국가권력당[공민역량당/빨랑쁘라차랏], DP: 민주당, CP: 타이국가개발당, PP: 국가당, TST: 타이건설당[타이상타이당], CPK: 찻팟타나클라당, TLP: 태국자유당)
2023년 타이 총선 99.20% 개표 결과(투표율: 75.01%[+0.32])
행동전진당(중도좌파, 사회민주주의, 반-군부): 36.17%(+18.83), 152석(+71)
태국인당(중도-중도우파, 탁신주의, 반-군부): 27.56%(+5.64), 141석(+5)
태국자랑당(우익, 대중주의, 탈중앙화, 친-정부): 2.86%(-7.47), 70석(+19)
인민국가권력당(우익, 국민보수주의, 친-군부): 1.35%%(-21.99), 40석(-76)
연합태국국가당(우익, 국민보수주의, 친-군부): 11.91%(+11.91), 36석(+36)
민주당(중도-중도우파, 보수자유주의, 친-군부): 2.29%(-8.63), 25석(-28)
타이국가개발당(대중주의, 지역주의, 친-정부): 0.47%(-1.69), 10석(=)
국가당(경찰/남부 출신, 다문화 지향, 반-군부): 1.45%(+0.11), 9석(+2)
태국건설당(태국인당 출신 탈당세력, 반-군부): 0.86%(+0.86), 6석(+6)
찻팟타나클라당(대중주의, 지역주의, 친-정부): 0.53%(-0.17), 2석(-1)
태국자유당(중도-중도좌파, 진보주의, 반-군부): 0.88%(-1.41), 1석(-9)
기타 정당/무소속들: 13.67%(+4.01), 8석(-25)
군부 지명 상원 의석: 250석(=)
반-군부 양당 행동전진당-태국인당 명목 과반 확보 압승
그러나 범민주 야권 5당 전부 합쳐도 375석 돌파 실패
탁신-군부 사이 줄타기하던 태국자랑당의 킹메이커화
전체 의석: 하원 500석(지역구 400석+비례 100석)+상원 250석(군부 지명)
하원 명목 과반: 251석
반-군부 실질 과반: 375석
친-군부 실질 과반: 125석
지난 이야기: https://blog.naver.com/gksejrdn7/222745205483
1992년, 잠롱 스리무앙 방콕 시장이 이끌던 반-91년 쿠데타 민주화 시위대가 전국을 휩쓰는 가운데, 라마 9세의 압박으로 군부 출신의 수친다 총리가 물러나게 된 이후 연례 행사처럼 벌어지던 군부 쿠데타가 잠시 잦아들며 마침내 태국 민주주의의 봄날이 찾아온 듯했습니다.
군부에 맞서는 대표 주자 정당이던 민주당은 당시만 해도 확고한 반-군부 보수정당의 위치로 자리잡으며 정권 획득은 못해도 제2당의 위치를 굳히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경찰관 출신의 사업가 탁신 친나왓이 잠롱 스리무앙과 손잡고 정계에 뛰어들면서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습니다. 탁신은 민주화 운동가들과 테크노크라트 등 각계 각층의 다양한 인사들을 영입하여 타이애국당(타이락타이당)을 창당하고 돌풍을 일으킨 후 2001년에 집권하자, 막상 정계입문 전의 친기업 인상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우익 국민당에 이은 중도 대중주의 신열망당과 같은 집권 여당과 민주파 보수 야당 역할을 하던 민주당과의 차별화를 꾀하기 위해 30바트 의료보험 정책으로 대표되는 여러 복지정책을 추진하였으며, 방콕 등 도시권에 비해 소외되던 이산 지역과 북부 등을 차후 표밭으로 주목하여 농어촌 지역 개발 지원, 시골지역에 만연한 마약 퇴치를 위한 각종 지원책을 내세워 나갔습니다.
여기에 더해 IMF 외환위기 후유증도 생각보다 수월하게 이겨내면서 탁신의 대중주의적 정책들에 열광하던 시골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레드셔츠라 불리는 열렬 탁신주의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반면에 탁신의 여러 보수적 면모에도 불구하고 그 대중주의적 인기와 팬층으로 인해 왕실의 굳건한 지위를 흔들지도 모른다는 열렬 근왕주의자들의 불안감과 시골 지원 정책 확충에 불만을 품은 방콕 등 도시권 중산/부유층 민심이 결합하면서 옐로셔츠라 불리는 반탁신세력 또한 점점 보수화되는 민주당을 주축으로 그 수를 불려 나갔습니다.
양 세력 간의 갈등으로 인해 태국 민심이 첨예하게 갈리던 가운데, 2005년 총선이 치러졌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탁신 측이 개헌선을 뛰어넘는 초압승을 거두면서 옐로셔츠 측의 불안감이 폭발하였으며 레드셔츠와의 극한대립 및 유혈사태까지 벌어지고 탁신 본인의 비리 논란 돌파를 위해 1년 후 치러진 재총선에서의 민주당 대규모 보이콧 및 타이애국당 의석 싹쓸이로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그럴듯한 기회만 노리던 군부 및 왕실에게 좋은 명분이 되었으며, 마침내 2006년에 탁신이 해외 순방 중이던 차에 15년 만의 쿠데타가 재개되며 탁신 정부가 붕괴되고 쿠데타 반대를 표방하면서도 군부와 사실상 손잡은 아피싯 웨차치와 민주당 대표가 총리직에 거론되었습니다.
하지만 군사정권의 비민주적 성립은 신정부가 발표한 탁신의 여러 비리 혐의에도 불구하고 태국 국내외의 상당한 비판에 직면하게 됐으며, 결국 1년 만인 2007년 총선에서 탁신의 측근인 사막 순타라웻 인민역량당(피플파워당) 대표에게 민주당이 과반을 사실상 내주며 총리직의 꿈이 물 건너 가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군부와 왕실의 입김을 받은 사법부와 헌법재판소에서 비리 혐의 등 여러가지 명분을 들어 사막 순타라웻, 솜차이 웡사왓 등 탁신 측 인사들의 총리직 축출을 계속하였고, 타이애국당의 사실상 후계정당이던 인민역량당 역시 해산되면서 태국인당(푸어타이당)으로 재집결한 상당수 의원을 제외한 일부 의원들을 민주당이 흡수하여 아피싯 웨차치와 민주당 내각이 마침내 출범하게 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리먼 브라더스 파산 이후 대침체가 계속되던 상황인 와중에 경제 문제 해결에 있어서 아피싯 정부는 뾰족한 수를 내지 못했으며, 안 그래도 비민주화로 인해 민주당에 실망한 중도층에게 있어서 이는 그래도 경제적으로 믿음을 주던 탁신으로 다시금 넘어가게끔 하는데 결정타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2011년 총선, 탁신의 여동생 잉락 친나왓이 이끌던 태국인당에게 다시금 과반 의석을 내주고 개헌 저지선도 상실하면서 아피싯과 민주당은 그 정치적 운명을 다한 듯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그나마 안정적 국정 운영을 이어가던 잉락 친나왓 총리가 2013년 탁신 사면 추진이라는 정치적 우를 범하면서 옐로셔츠의 격렬한 반발에 부딪히고 이를 돌파하기 위해 총선을 1년 당겨 2014년 조기 총선을 선언하자, 민주당은 이번에도 보이콧을 선언하며 2006년 총선이 재현되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잉락 정부는 붕괴되었으며, 쁘라윳 짠오차 육군참모총장이 이끄는 군사정권이 잉락 총리를 주요 기관장 경질이라는 권력 남용과 부정부패, 쌀 수매 정책 수립 과정의 국가 재정 손실 혐의를 붙이며 5년 간 정치 활동 금지 및 수조원의 벌금형, 자산압류 명령을 부과하면서 다시금 민주당에게 부끄러운 기회가 갈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군부에서 친-군부 정치인에게 맡기고 다시 정권을 내주는 것보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든 후 스스로 선수로 뛰어드는 것이 나을 거라고 판단했는지, 수년간 총선을 미루고 쁘라윳 스스로 총리직에 오른 끝에 신 헌법 국민투표를 밀어붙이며 군부가 임명한 상원이 1/3을, 비례대표제를 추가하며 단독 과반이 거의 불가능해지게 만든 하원이 2/3을 차지하는 선거인단에서 총리가 선출되게 만들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민주당 출신 방콕 시장/주지사까지 가로등 공사 비리 의혹이 제기되자 이를 빌미로 바로 자르고 극렬 친-군부 인사인 아스윈 부시장으로 교체하였습니다.
이렇게 군부 측에 매우 유리해진 상황에서 2016년 태국 전국민의 존경을 받던 라마 9세 국왕이 사망하고 격식 없는 옷차림과 무분별한 사생활, 외교적 추태로 인해 문제아 왕세자로 지탄받던 마하 와찌랄롱꼰이 라마 10세로 즉위하면서 태국 왕실을 둘러싼 상황도 뒤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옐로셔츠의 정신적 구심점이던 국왕의 권위가 흔들리기 시작한 상황에서 태국인당 자매정당이던 태국 국가구조당이 2019년 총선에서 본랏 라차깐야 공주를 총리 후보로 내세우며 비례대표 독소조항 극복 및 근왕파 나눠먹기를 시도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라마 10세의 매서운 대응 속에서 시도조차 해보지 못하고 헌법재판소에 의해 해산되는 것으로 끝났으며, 여기에다 부정선거 정황까지 더해지며 기존 예상을 뒤엎고 쁘라윳을 지지하는 가장 큰 정당인 공민역량당(팔랑쁘라차랏당)이 득표율에서 앞서면서 반-군부파는 하원 과반 마저도 실패하게 됐습니다.
그나마 어려운 와중에도 태국 최대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인 타이 서밋 그룹 출신의 부유한 기업가 타나톤 쯩룽르앙낏이 이끌고 IMF로 인한 경제파탄에 실망한 끝에 사회민주주의를 내세우던 미래전진당(퓨처포워드당)이 350석 중 무려 81석을 얻으며 세 손가락(영화 헝거게임 영향) 쿠데타 항의시위를 이끄는 반군부-비탁신 청년층의 대안정당으로 눈도장을 받아 차기 총선에서의 희망으로 자리잡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싹 마저도 남겨둘 태국 군부가 아니었습니다. 태국 헌법재판소가 미디어 기업 지분을 가진 자는 하원의원직 도전을 금한다는 선거법 위반 행위라고 주장하며 타나톤의 의원직을 박탈하고 10년 간의 정치활동을 금지시켜버린 것입니다.
여기에 더해 미래전진당이 타나톤 대표로부터 어떤 형태로든 자금을 빌린 것은 심각한 위법이라며 곧장 해산시키고는 수십명의 의원직까지 상실시켜 버렸습니다.
남은 의원들 대다수는 태국인당이 그랬듯이 행동전진당에 재입당하며 둥지를 틀었으나, 일부 의원들은 헌법재판소의 권력 휘두르기에 위축된 나머지 합류를 주저하였습니다.
그 와중에 쁘라윳 총리는 거대 친-군부 정당인 공민역량당, 민주당, 품짜이타이당에 더해서 비례대표제로 입성한 군소 정당들을 장관직 약속으로 끌어들이며 하원 과반을 돌파하였으나, 정치적 정당성을 획득한 직후 이를 곧장 파기하며 군소정당들의 반발을 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불만의 목소리는 실질적 권력을 진 군부의 귓등에도 들어오지 않았으며, 등신대 인터뷰 요구/기자 손소독제 살포로 대표되는 총리의 안하무인 행보와 코로나 대응 실패로 인한 경제난, 논란 많은 친중국노선, SNS 차단은 안 그래도 높던 권위주의 군사정부에 대한 불만을 끌어올렸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레드불 창업자 손자의 뺑소니 사고 솜방망이 처벌 시도는 하이소로 대표되는 실질적 사회경제 카스트제에 국왕의 여러 논란들로 의문을 가지기 시작하던 태국 국민들의 공분을 터뜨리며 미래전진당의 강제해산과 코로나발 경제난, 홍콩 민주화 시위 및 플로이드 사망 사건으로 인한 전세계적 시위물결과 맞물려 대규모 민주화 요구 및 군주제 개혁 시위로 번졌습니다.
위와 같은 시위는 수 개월 간 이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아있던 국왕에 대한 기성세대의 존경심으로 인해 벽에 부딪친 끝에 확고한 변화를 일으키는 데는 실패하였지만 군부 정권에게 도시권 옐로셔츠의 붕괴라는 상당한 정치적 후유증과 정당 해산카드 남용의 위험성을 남기며 차기 총선에 대한 불안감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분위기는 태국인당, 행동전진당 전국 지지율 압도적 1, 2위와 함께 2022년 5월 22일 치러진 방콕 지방선거 결과에서 명명백백히 드러나게 됐습니다. 군부 측 위원회에 아주 잠깐 참여한적도 있지만 잉락 친나왓 총리 내각에서 장관직을 맡는 등 확고한 반-군부 인사로 분류되던 찻찻 싯티판 전 교통장관이 안 그래도 높던 여론조사 결과(37-45%)를 훨씬 뛰어넘는 초압승을 거두게 된 것입니다.
헐크 이미지를 일부러 연동시킬 정도로 탄탄한 몸매로 깊은 인상을 남기고 MIT 졸업에 건설회사 CEO 출신에다 19년 태국인당 총리 후보였을 정도로 확고한 사회정치적 기반까지 있던 상황에서, 탈당 후 무소속으로 중도적 중산층 친화 이미지를 굳히면서 친-군부 지지층 일부와 함께 반-군부 지지층의 전략투표까지 겹치며 압승으로 이어졌습니다.
여기에 더해 방콕 중산층의 탄탄한 지지기반을 자랑하던 민주당의 지역 기반이 완전히 박살나고 그 상당수를 행동전진당과 태국인당이 흡수하는 등, 기울어진 운동장의 기본 기대치까지 붕괴시키고 있었습니다.
추가로 19년 태국인당 총리후보 출신이던 수다랏 께유라판 전 공중보건부 장관이 창당한 타이건설당까지 합친다면 반-군부파가 더블스코어가 될 정도로 압도적인 상황이기에, 그저 한 지역의 선거라며 중요성을 애써 부정하는 군사정권의 의도를 무색케 하는 결과를 보였습니다.
다만 공민역량당 역시 민주당이 소홀히 했던 시골 지역을 중심으로 공을 들이며 2019년 총선부터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만큼, 양 측 모두 차기 총선 승리를 위해 사력을 다할 것으로 보이며 여전히 남아있는 헌법재판소 정당해산 카드 역시 눈 여겨 볼 필요가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간 23년 5월 14일 태국 총선일, 정치사회경제적으로 조금도 바뀌지 않은 상황이 마침내 국민들의 분노를 폭발케 만들었습니다.
여전히 왕실을 조금만 비판해도 최대 징역 15년이라는 가혹한 처벌을 받는 것은 마찬가지에 탁신이든 타나톤이든 군부의 심기를 건드리면 죄의 유무를 막론하고 정계에서 철저히 축출당하는데다, 대마초 사용 합법화와 입국세 도입 같은 대중주의적 공약에만 치중하며 그 파장에 대한 별 고민 없이 무조건 지르고 보는 것이 도시 중심의 사회문화적 자유주의자들 사이에서의 인기몰이는 고사하고 오히려 역풍으로 번졌습니다.
그나마 경제는 관광업 등에 치명상을 입힌 코로나 사태를 지나 회복세에 접어들었지만 국제기구 성장률 예상(21-22년 4분기 3.6%)에 턱없이 못 미치는 경제성장률(1.4%)을 보이고 바트화 절상으로 수출에 타격이 우려되는 데다, 육류만 해도 20%에 육박하며 에너지는 15%에 이르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촉발 인플레 사태에 대해 재무부고 중앙은행이고 일시적인 현상으로만 치부하며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는 것이 여론을 부글부글 끓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친-정부 진영에게 너무나도 참혹했습니다. 중산층-부유층에 기반한 보수파 옐로셔츠 민주당의 텃밭이던 수도 방콕은 시장 선거를 지나도 계속되는 경제난과 정치적 탄압에 진저리를 내며 행동전진당이 거의 싹쓸이하는 텃밭으로 바뀌었으며, 친-민주 양당만 감안해도 비례 득표의 2/3에 육박하는 초유의 압승을 이룩하며 비례제도 확대를 통한 태국인당 지역구 경쟁력 약화를 노리던 군부의 꼼수를 완전히 박살내 버린 것입니다.
한편, 가장 개혁적인 행동전진당에 열광하는 청년층을 필두로 한 변화의 흐름에 총선을 앞두고 민주연정 및 왕실모독죄 개정 등에 대해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던 탁신계 역시 유탄을 피하진 못했습니다. 태국인당의 요새와도 같던 치앙마이에서 행동전진당에게 자리를 내준 것에 이어, 행동전진당에게 정부내각정당 출신 중도층도 대거 내주며 19년에 이어 다시금 비례 2위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다만 범민주 야권 5당 의석 합계가 309석에 그치면서, 일부 법안 개정 정도는 몰라도 군부와 왕실의 꼭두각시이자 헌법 독소조항에 의해 총리 선출에 합세하는 상원의 견제를 뿌리치고 안정적 국정 운영을 위한 정부 수립은 어려운 상황입니다.
정부 내각 소속이나 예전부터 탁신계 내각에 참여하는 등 부분적 협력 의사를 보여왔고, 군부의 독재적 담론과의 거리두기 속에 아누틴 찬비라쿨 대표(보건부장관 겸 부총리)의 대중주의적 노선(코로나 사태 당시 반-외국인 정서 강조, 대마초 합법화 적극 찬성)을 통해 지역구 위주로 70석을 확보한 타이자랑당(품차이타이당)의 합류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군부 및 왕실이 원래부터 싫어했던 탁신 친나왓의 딸인 패통탄 친나왓 태국인당 총리후보(36세)나, 태국인당도 주저하는 왕실모독죄 완화 개정을 공개 거론하고 민주당의 텃밭이던 방콕을 모조리 싹쓸이하며 옐로셔츠들에게 미운털이 제대로 박힌 타나톤 쭝룽르앙낏의 후계자 피타 림짜른랏 행동전진당 대표(42세)가 총리직에 오르려 할 경우 타이 국민 절대다수의 반-군부/정부/국왕 정서가 분명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쿠데타 압박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그렇기에 민주계가 견제가 덜한 군소 정당이나 태국자랑당 출신에게 총리직을 양보하는 타협책을 내놓거나, 아예 태국자랑당이 인기 없는 군부 출신 인사들(친-군부 원내 입지 확대를 위해 연합태국국가당으로 옮긴 쁘라윳 짠오차 총리, 인민국가권력당 소속 쁘라윗 윙수완 부총리) 대신 자신들이 군부내각 총리직을 맡는 타협책을 꺼낸다거나, 아예 철저한 반-군부/왕실 민주정당인 행동전진당을 제외하고 탁신에 대한 사면을 대가로 태국인당과 군부가 최소한의 선거 명분을 가진 거국내각을 결성할 거라는 등 온갖 시나리오가 잔뜩 펼쳐지는 상황입니다.
한편, 같은 날 치러졌음에도 공식 개표 결과가 나오기 이전의 비공식 개표 중간 오차와 지지부진한 개표, 대다수 여론조사와는 다른 에르도안의 선전 논란으로 인해 진통이 극심했던 터키(튀르키예) 대선 및 총선과 함께 양국이 오랜 권위주의 독재 정권을 뒤로 하고 민주주의의 발전을 이어 나갈 수 있을지 국제사회의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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