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압) 과연 한국은 유달리 범죄자에게 관대한 나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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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법은 유달리 약하고 솜방망이 처벌이고, 범죄자에게 관대하며 판검사들은 다 썩었다는 식의 사법불신은 한국 곳곳에 퍼져있다. 그리고 외국은 사법정의가 매우 잘 지켜지고 있으며 대체로 미국의 예를들어서 얘네들은 몇백년씩 형을 때린다는 식의 케이스가 소환된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내가 최근에 듣는 팟캐스트에서 현직 변호사가 나와서 이러한 인식에 대해서 법조인으로서 설명하는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듣고나서는 생각이 많아졌다. 꼭 그렇지는 않구나 세상이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네 같은.... .. 이 밑에 쓰인 글은 그 팟캐스트의 이야기를 축약한 것인데 질문은 호스트가 하고 대답은 변호사가 하는 식으로 썼음. 여기서 '나는' '내가'같은 문장은 그 변호사의 입장임.
물론 다 읽고 나서도 이런 이야기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이 많은것도 알고 욕박을 사람이 많은 것도 안다. 자연스런 반응임. 그러나 몇 사람이라도 평소생각이랑 다른 각도로 볼 수 있다면 좋겠음. 글이 길다. 안읽는 사람이 대다수일거 같지만 시작함.
1. 한국의 법이 약하다는 인식은 거의 국민 대다수가 하고있다. 예를들면 조두순은 왜 12년밖에 안받았나? 그 새끼 한 짓으로 보면 그냥 죽여버리거나 무기징역이 맞지 않나? 이거 완전 솜방망이 처벌아냐?
현행법 체계 안에서 12년은 짧게 준 것이 아니다. (올바른 판결이라는게 아니라, 판사가 줄 수 있는 한 강하게 내린 처벌이란 것이다.) 일반의 인식과는 달리 법정에서는 3년부터는 중형으로 본다. 내가 겪은 바, 굉장히 기세등등하던 사람들도 구치소에서 한달도 안되서도 굉장히 겸손해진다.('씨바거 갔다오면 그만이지 → 변호사님 제발 꺼내 주십시오;;') 그만큼 교도소 생활은 일반의 생각보다 훨씬 고통스럽다. 3년이 짧다고 한다면 3년전에 어떤 핸드폰을 썼는지 생각해보시라.
그리고 차등의 문제가 있다. 사실 조두순 같은 놈은 광화문 광장에서 능지처참을 해야 마땅하지만, 만약 '미성년자 강간범을 사형한다'는 법이 제정되는 순간 나머지 모든 범죄의 기준선이 되어버린다. 예를들어 미성년자 강간이 사형인데 미성년자 성추행은 징역1년 이러면 이상하자너? 못해도 한 20-30년은 되어야겠지. 그런데 이런식이면 모든 범죄의 형량이 인플레이션 된다. 아니 왜 강간만 범죄야? 우리집은 살인범죄로 망했는데? ㅇㅇ ㅇㅈ 살인도 최고형량. 아니 왜 살인만? 사기당해서 집안이 풍비박산나고 어머니 아버지 충격으로 돌아가셨는데 , 오케이 사기도 무기징역. 아니 왜 사기만? 우리도... 이런식이다. 형평성의 문제 때문이다.
예를들어 어떤 사람이 한 300억 정도 사기를 쳤다고 하자. 300억이면 아무리 못해도 10억의 자산을 가진 중산층 가정 30개의 이상을 파탄낸 것이다. 그러면 강간에 비해서 죄질이 결코 가볍다고 볼 수 없다. yes 사형. 이런식으로 가다보면 결국 탈레반처럼 '모든 사람은 그냥 참수시킨다' 라는 결론으로 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형량에는 '차등'을 둘 수 밖에 없고 여기가 바로 일반 대중과 법조인과의 괴리가 있다. 보통 사람은 그 범죄 하나만을 보고 얘기하지만 법을 다루는 사람은 모든 범죄를 균형있게 다뤄야 하기 때문.
예를들어 강간을 사형을 때리고 상해도 중범죄니 한 30년 때린다고 치자. 이러면 친구끼리 술먹다가 싸워서 다치게 했다면 아무리 감경을 해줘도 징역 10년형을 받게 된다. 이게 과연 사회정의에 부합하는지는 의문이다.
2. 그럼 인플레 하지 말고, 그럼 핀 포인트로 그 흉악 범죄의 형량만 올리면 안됨? 다른거 놔두고 아주 흉악범들만 중형 선고하면 될거 같은데?
그렇게 할 수도 있다. 그건 결정하기 나름이다. 그러나...
예를들어 어떤 사람이 강간을 했다 치자. 만약 강간과 살인의 형량이 무기징역으로 동일하다면, 가해자는 강간후 검거되지 않으려면 강간한 사람을 죽이는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어차피 범죄자 입장에선 강간피해자를 죽여도 손해볼 것이 없기 떄문이다.
실제로 비슷한 사례가 현실에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강간은 9년에서 14년의 형을 받는다. 그런데 강간치사, 즉 죽일의도는 없었으나(의도가 있었다면 강간살인) 강간을 하다 피해자가 의도치 않게 죽었다면 11년에서 14년형을 받는다. 사실 거의 차이가 없다. 이렇게 되면 범죄자는 강간을 하다가 죽으면 뭐 별 수 없지' 라고 판단하고 더 가혹하게 강간할 수도 있다. 실제로는 당연히 다르겠지만 범죄자들에게 그러한 '시그널'을 줄 수 있다. 강간을 하더라도 중간에 죽으면 안된다가 아니라, 어차피 몇 년 차이도 안나는거 뒤지던 말던 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게 만든다는 것이다.
국가가 모든 범죄에 차등을 두는 이유가 이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사기범죄의 형량이 낮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사기범죄를 살인과 동일하게 올려버린다면 사기범은 들키느니 피해자를 죽여버리는게 낫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3. 좋다. 자꾸 인플레 차등 얘기하는데. 그게 뭐? 그냥 다 올리자. 다 올리면 뭐가 문젠데? 다 그냥 뭐 사형하고 무기징역 뭐 100년 50년 때리고 모든 범죄의 형량을 다 올립시다. 안될게 뭔가요? 애초에 죄를 저지르지 않으면 될거 아님?
재미없는 얘기를 먼저 해야한다. 일단 형벌의 목적이 뭔가? 학교에서 분명 교화와 응보의 목적이라고 배웠을 것이다. 그리고 전 세계적인 추세는 응보보다는 교화로 이동해왔고 지금도 그러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하는 모든 이야기는 다 '응보'에만 맞춰져있다. 물론 응보나 교화중 무엇이 먼저인가의 질문은 동서고금의 온갖 철학자들이 총출동하는 아주 첨예한 문제니 이건 그냥 패스하겠다.
자, 다시 응보의 목적을 보자. '징역'은 응보의 목적으로는 썩 괜찮은 방법이 아니다. 응보만이 목적이라면 흔히 얘기하는 거세를 한다든지 어디 한군데 잘라서 장애인을 만든다는 식의 전근대적인 잔혹한 형벌이 오히려 응보의 목적에 더 부합할 것이다. 정말 형벌의 의의는 응보밖에 없고 그것만이 정의라면 우리가 생각하는 선진국들 중 최소한 몇몇 나라들은 이러한 형벌을 해야 마땅할 텐데 왜 하지 않을까. 정의롭지 않아서일까. 오히려 우리가 '살고싶어 하지 않는 후진국'에서 이런 잔혹한 형벌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종종 접한다. 그럼 이 나라들은 과연 사법에 있어서만큼은 선진국보다 정의롭기 때문일까.
여기서 징역형의 의의를 알 수 있다. 징역형은 교화와 응보의 목적을 비교적 균형있게 달성하려는 의지의 산물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을 30년, 50년씩 가둬두는 것은 교화의 목적을 아예 포기하려는 것과 같다. 물론 세상엔 그런 인면수심의 괴물도 있긴 있다. 영원히 사회와 격리해야 할 정도의 위험인물이라면 그래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전체 범죄자중 그런 끔찍한 괴물이 그렇게나 많을까? 많은 사람들이 범죄자는 대부분 인간 말종이고 수십번씩 교도소를 들락거려도 눈하나 깜짝하지 않는 사이코패스라고 생각한다. 교화따위는 필요 없고 인간은 절대 변하지 않으니 범죄자는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해야한다는 주장도 꽤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아 초범이라고 집유 나오겠네' 라며 비웃지만 생각보다 초범에 집행유예를 많이 선고하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초범에게 집유를 주면 그 이후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거의 90%가 넘는다. 그만큼 초범에게 교도소란 공포의 대상이기 때문. 집행을 유예할 정도의 범죄에다 초범이라면 그 사람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는 것이 그렇게 불의한 일은 아닐 것이고 사회 전체적으로 봐도 그렇다. 그리고 '봐준다고 생각하는 일반 대중의 생각과는 달리' 집행유예는 강한 처벌이다. 징역1년에 집행유예2년이라면, 2년내에 징역6개월짜리 범죄를 저질러도 1년6개월을 살게 된다. 말 그대로 '유예했던 형을 집행' 한다.
그리고, 당신도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재판에 휘말려 깜빵에 갈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 범죄의 형량이 올라갔다고 가정하자. 당신에게 곰탕집 성추행같은 사건의 가해자로 누명을 쓰는 일이 생기지 말란 보장이 없다. 심지어 재수없게도 무죄를 증명할 물증도 없고 피해자는 일관된 진술을 한다. 최근 성범죄의 트렌드에 따라 유죄가 될 것이고, 초범이라고 봐주는 것도 사라졌다. 검사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는 이 파렴치한 성추행범을 사회와 격리시켜야 한다며 20년형을 구형하고 운 좋게도 당신을 불쌍히 여긴 판사가 최대한 감경 해줘서 징역10년형에 처해진다. 어떤가? 정의로운 사회인가?
또한 피해구제라는 측면이 있다. 이 세상에는 저새끼를 확 죽여버려야지만 직성이 풀릴정도의 끔찍한 범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온갖 자잘한 범죄가 있고 셀 수 없이 다양한 사유의 범죄가 있다. 어떤 종류의 범죄는 가해자가 진심어린 사과를 하고, 물질적, 정신적인 보상을 한다면 가해자가 징역을 오래 사는 것 보다 피해자에게 더 괜찮은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예를들면 가벼운 교통사고가 나서 골절상 정도를 입었다 치자. 피해자 입장에서 운전자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치료비와 합의금을 받는게 나을까 이 사람을 징역 10년에 처하는게 나을까?
만약 모든 형량이 인플레가 되어 사소한 범죄조차 중형을 받게 된다면,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최소한의 구제도 하지 않게 된다. 어차피 중형을 받는데 뭐하러 피해자에게 사과를 하며 물질적, 정신적 보상을 하겠는가. 내가 당장 징역살게 됐는데 피해자가 치료비가 있든 없든 뒤지건 말건 알게 뭐냐는 말이다.
진짜 뉘우친다면 중형을 살고 나와서도 피해자에게 사과하지 않겠는가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 정도의 형을 살고 나오게 되면 이미 금수저 집안이 아닌이상, 금전적으로는 빈털터리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징역을 사는동안 경제활동을 전혀 할 수 없으니까. 출소이후에도 경제적으로 무능력자가 될 확률이 높다.(또한 이러한 경제적 어려움은 또다시 범죄의 길로 들어서게 하는 중요한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가장 현실적인 문제. 이렇게 되면 교도소를 아 - 주 많이 지어야 한다. 이에 따른 세금은 무시할 수 없을 수준일 것이다.
4. 그럼 넌 법조인으로써 조두순같은 새끼가 저 정도 형량을 받는것이 옳다고 생각하심?
물론 그렇지 않다. 나도 딸을 가진 사람으로써 그런놈은 정말 찢어죽여도 시원치 않다.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현대법은 피해 당사자나 피해자의 가족의 사적구제를 막는 것이다. 사실 피해자의 원한은 그 무엇으로도 풀릴 수 없다. 징역을 10년을 산들 20년을 산들 무기징역이 된들 그것이 풀릴리가 없지 않은가. 유족의 원한이 형량의 기준이 된다면 거의 모든 범죄자들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죽은 범죄자의 가족들 또한 원한이 생기지 않을리 없다. '아니 강간이 나쁜거긴 하지만 그렇다고 사람을 죽여?' 라면서 또 복수를 할 수도 있고, 이 보복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참사가 계속된다. 이는 근대이전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겪었던 야만이다. 이 야만에서 탈피한 것이 현대법이다.
bonus.1
술먹었다고 심신미약 감형해주는거 이거 진짜 잘못된거 아니냐?
실제로 한국은 심신미약이나 술먹었다고 감형 시켜주는 경우가 진짜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그런데 왜 이런인식이 벌어지느냐면 판사의 판결문에는 양형에 별로 참작되지 않는 사유도 일단은 다 쓰고 보기 때문이다.
bonus.2
무고죄는 왜 이렇게 안 때리냐? 무고죄도 진짜 심각한 범죄 아니냐고
무고는 '입증이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무고죄는 한 마디로 '마음을 들여다봐야'하는데 신이 아닌이상 불가능하지 않나. 이 사람이 정말로 모르고 그랬는지, 아니면 어디 한번 엿먹어봐라는 마음으로 했는지 아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유일한 물증은 본인의 그러한 마음을 제3자와의 카톡으로 남겼다든지 하는 경우가 있겠다. 참고로 한국은 무고죄의 형량이 다른나라에 비해 낮지 않고 유죄판결의 비율도 상대적으로 높은편이다. 그리고 무고 하면 다들 성범죄를 생각하지만 의외로 성범죄 관련 무고는 굉장히 소수고 대부분은 경제범죄다.
bonus.3
한국인은 사기의 민족이라던데? 일본과 비교하면 사기범 숫자가 존나 많더만?
이는 일본과 한국의 시스템의 차이에 기인한다. 일본은 경찰에서 고소를 반려할 수 있다. 경찰이 봤을때 아 이건 사기는 아닌데 싶으면 법정까지 가지도 않는거다. 그러나 한국은 일단 고소하면 다 받아는 준다. 이런 차이다. 그럼 한국은 왜 이리 고소를 많이 하느냐? 보통 돈빌려줬는데 안갚으면 일단 사기죄로 고소하고 보기 때문이다. 재미있는건 진짜 사기꾼은 고소당해도 눈하나 깜짝 안한다. 어디 한번 해볼테면 해봐라는 식이다. 그러나 정말 사기의 의도가 없었지만 돈을 못갚았다가 사기죄로 고소당한 사람들은 교도소 가는게 두려워서 사채를 쓰든 어떻게든 돈을 만들어서 갚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는 한국의 무고죄 사건이 많은 이유와도 이어진다. '저 사람이 내가 사기꾼이 아닌걸 알면서도 돈을 받아내려고 날 사기꾼으로 고소했다'며 무고죄로 다시 고소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