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길복순 논란의 장면 대화 전문과 분석 (+사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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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나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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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globale.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438


해당 캡쳐는 위 기사에 올라온 장면으로 갈음합니다.

이 대화 맥락을 보기 위해 그리고 일베 논란이 있을 만 한가에 대해서 알아보기 위해 길복순 전체를 봤습니다.

참고로 변성현 감독의 이전 작품인 킹메이커도 봤었고, 영화 자체의 만듦새는 꽤 괜찮았다고 평하겠습니다.


이 쯤 되면 의문이 더 커집니다. 굳이 왜 긁어부스럼의 장면이 들어갔을까 하는 점입니다.


먼저 논란이 된 위 캡쳐 장면의 대화 전체입니다. 이른 시간대에 나오는 장면으로 길복순으로 분한 전도연과 길복순 딸 길재영(김시아 분)이 대화하는 장면입니다.


(휴대폰을 조작하는 딸)
복순: 우리 딸 남친 생겼나
딸: 그럴 일 없어
복순: 우리 딸 조금만 상냥하면 남자가 줄을 설텐데. 오늘 역사 토론 수업 있지. 그거 성적에 반영된다며?
딸: 유치해 점수 걸어놓고 애들 말싸움 시키는 거
복순: 응 맞아 그것도 싸움이야. 너 토론하다가 상대방이 움찔하지. 그러면 거기가 약점이다. 살려달라는 소리 나올 때까지 물어뜯어야 돼
딸: 방금은 나보고 상냥하라며
복순: (한숨) 그래서 토론 주제는 뭐야?
딸: 10만 원권 지폐가 생기면 어떤 인물이 들어가야 하나
복순: 응, 재미있네 너 누구할 거야?
딸: 후보가 많았어. 광개토대왕, 을지문덕, 김구, 안중근. 그런데 고르다 보니까 다 공통점이 있더라
복순: 다 남자네
딸: 그거 말고 다들 사람을 죽였어. 나는 논개로 골랐어. 여자가 하기 힘든 일이잖아. 그게 맘에 들어
복순: 음, 그러게. 되게 재밌는 관점이네


이 대화 맥락을 분석해보면 스포가 나올 수 밖에 없음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일상적인 얘기로 시작하는 이 대화는 영화의 내용을 매우 함축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남친에 대한 얘기는 딸 길재영의 성적 지향(동성애자)과 연결되고 이어지는 토론에 대한 이야기는 복순의 직업(킬러)과 직업 윤리(임무 달성)에 대한 복순의 태도를 보여줍니다. 문제는 감독이 고른 영화 상 나오지도 않는 토론의 주제입니다. 10만원권에 들어가야 하는 역사적 인물에 대한 것인데, 가볍게 지나갈 만한 지점입니다만 그렇게 지나가긴 힘듭니다. 왜냐하면 복순의 직업은 킬러이고, 사람을 죽인다는 내용이 대화 중에 나오기 때문입니다.


제가 해석하기로는 이미 딸은 복순의 직업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고, 거론된 4명의 역사적 인물 간의 공통점으로 "사람을 죽였다"는 것을 꼽았습니다. 복순의 해석(다 남자네) 부분과 딸의 논개를 고른 이유(여자가 하기 힘든 일)는 페미니즘적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딸이 꼽은 4명의 공통점, 사람을 죽인 역사적 인물들이라고 언급한 것은 꺼림직할 수 밖에 없습니다. 논개도 사람을 죽였지만 지금은 넘어갑시다.


간단하게 4명의 인물을 살펴보면, 광개토대왕이 왕위에 있던 시기는 중국 세력과 경쟁하던 시기였고 전쟁이 잦던 시절이었습니다. 광개토대왕의 선왕들은 중국 국가들과의 전쟁에서 전사하였고 상대적으로 고구려가 밀리던 시기였습니다. 광개토대왕은 선왕들의 복수와 영토 확장이라는 업적을 이뤄냈던 역사적 인물입니다. 을지문덕은 수의 침략에 맞서서 싸운 장군이었고, 방어자로써 전쟁에 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백번 양보해서 광개토대왕은 중국 세력에 '침략'을 했던 것으로 비판할 수 있겠지만 (물론 이렇게 말하면 상대방을 죽이지 않으면 자기가 죽는 맥락이 무시됩니다), 을지문덕은 침략에 맞서서 싸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침략자들과 그의 군사들을 죽였으나, 불가항력이었죠.

김구와 안중근은 어떻습니까. 김구가 직접 죽였던 일본인은 일본 첩자 혹은 군인으로 의심받던 인물이었고, 사건 당시 시점은 민비가 일본 자객들에 의해 시해된 직후였고, 김구에게 죽은 쓰치다라는 인물은 상인으로 위장한 군인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아래 황현필 유튜브 참고) 그리고 이후 독립운동을 위해서 행했던 의거들(예-윤봉길 의사의 홍커우 도시락 폭탄 사건)은 조선/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서 행했던 군사적 행동들이었습니다. 일베치들은 테러라고 하지만, 이런 임시정부와 독립투사들의 의거 덕분에 장제스의 마음을 움직였고, 장제스가 이후 조선의 독립을 주장하는데 큰 기여를 합니다. 일본은 45년 항복을 하더라도 대만과 조선 땅은 자신들의 통치 아래 남기기를 원했었고, 장제스가 적극 주장하지 않았으면, 지금 한반도가 일본의 땅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김구 선생님이 활동하던 당시 임정은 일본과 '독립전쟁'을 벌이던 상황이라고 정의하면, 그 행동은 사람을 죽인 행위가 아니라 전쟁 작전 수행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어떻습니까. 안중근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뒤 뒤 당당히 체포되었고, 대한의군참모중장임을 강조하였습니다. 계몽운동이 아니라 무장투쟁이 독립에 필요하다는 것을 인지한 후 무장투쟁의 일환으로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던 것입니다. 김구 선생님과 마찬가지로 독립을 위한 투쟁과 작전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위에 거론된 역사적 인물 4명은 단순히 "사람을 죽였던" 사람들로 평가받을 위인들이 아닙니다. 변성현 감독쯤 되면 이런 인물들의 역사적 맥락을 모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 4명만 언급하고, 논란의 여지를 남긴 건 왜 일까요. 이유가 너무 궁금해집니다. 과거 10만원 후보로 거론되던 역사 위인들은 해당 위인들을 제외하고도 많이 있습니다. 이런 논란의 여지를 피하기 위해 고대사 위인과 근현대사 위인들을 적절히 골랐다면 이런 논쟁 자체가 없었을 겁니다. 예를 들어 장영실, 주시경, 한용운과 같은 인물들만 거론을 했다면 어떨까요. 문제가 하나도 생기지 않습니다. 다만, 영화의 주요 소재와 맞질 않으니 선택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길복순의 직업은 킬러이고, 불가피하게 "사람을 죽였던" 역사적 인물을 끌어와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영화 내 대화상황으로 돌아가봅시다. 4명 모두 남자인 건 딸이 그랬던 것처럼 넘어가고 '사람을 죽였던' 위인인 것에 집중해봅시다. 딸이 길복순의 직업이 킬러임을 이미 알고 있다면, '사람을 죽였다'는 공통점을 언급하는 것이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역사적 위인들도 사람을 죽이는 일을 했고, 길복순도 사람 죽이는 일을 합니다. 게다가 이 일은 여자의 몸으로 하기 힘든 일입니다. 여자 킬러라니, 힘든 일일 수 밖에요. 그리고 딸이 고른 논개라는 위인도 왜의 장수를 껴안고 함께 죽었던 위인입니다. '여자의 몸으로 사람을 죽인' 역사적 위인, 길복순의 역할과 맞닿는 부분이 있습니다. 길복순도 사람 죽이는 일을 하는 사람이고, 5명의 역사적 위인들도 사람 죽이는 일을 했습니다. 이렇게 적고 보니 '동종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됩니다. 역사적 위인과 길복순이 함께 말이죠.


문제는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풀고 역사적 해석을 해버리면 위인들이 했던 업적의 역사적 의미가 퇴색되고 그 목적과 여정이 전도된다는 것에 있습니다. 앞서 역사적 맥락을 굳이 길게 풀었던 이유는 위인들이 행했던 업적과 목적은 역사적 의미가 있었고,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했던 일입니다. 그런 일을 했기에 역사적 위인이 된 것이고 지금까지 추앙을 받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사람을 죽인" 것은 피할 수 없었던 일이었고, 이걸 꼬투리 잡고 "어쨌든 사람을 죽인 거 잖아"라고 말하면 역사에 대해 이해가 전혀 없고, 어떻게 역사적 해석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교육이 전혀 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위의 대화 장면은 역사적 위인들의 행위를 그저 "사람을 죽인 나쁜 행위"를 한 것으로 끌어내렸고, 이것은 비판을 받을 여지가 충분합니다.


예를 들어 을지문덕 장군이 아주 고귀한 '현대적' 인권 감수성을 가지고 있어서 쳐들어온 수의 장군과 병사들도 똑같은 인간이니 그들이 희생되지 않게 전쟁을 하지 않고 성문을 열고 수의 군세가 고구려를 점령하는 걸 놔뒀다면 어땠을까요. 수나라가 보기에 적의 수괴인 을지문덕은 당장 목이 날아갔을 겁니다. 이렇게 되면 수나라 장수들이 살인자가 되도록 만든 셈이니 을지문덕 장군이 나쁜 사람이 되네요? 그렇다면 살수대첩을 일으켜 수의 군세를 막아야 합니다. 아, 이렇게 하니 '고구려를 침략한' 수의 장병들을 죽인 살인자가 됐습니다. 이래도 나쁜 사람, 저래도 나쁜 사람이 됩니다. 그냥 을지문덕은 어떤 선택을 하든 나쁜 사람이 될 수 밖에 없네요. 


위 단락의 논의가 어떻습니까.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현대적 인권 감수성에 바탕을 두고 역사 해석을 하려고 들면 우스운 꼴만 됩니다. 그건 근현대사에 적용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김재규 장군이 박정희 대통령을 총으로 쏴서 살해했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일은 매우 나쁜 것이니 김재규 장군이 참았다고 가정해봅시다. 당시 정권의 2인자 자리를 다투던 차지철은 부마항쟁을 하던 사람들을 몇백만명이 되도 좋으니 죽이자고 했고, 박정희가 이를 그대로 받아들였다면 부산과 마산에 살던 무고한 민간인들 수백만명이 희생됐을 겁니다. 그 과정에서 반대하던 김재규 정보부장은, 닭 사료가 됐을지도 모르는 일이구요. 자, 김재규는 박정희를 죽인 살인자니까 나쁜 사람인가요? 아니면 자기 목숨을 걸고 독재자를 처단해서 수백만 시민들의 목숨을 살린 의인일까요? 저는 변성현 감독의 답변이 궁금합니다.


영화에서 대사는 매우 중요합니다. 이를 통해서 감독/작가의 주제의식이 드러나고 그 주제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며, 메시지로 영화 전체의 평가를 좌우합니다. 변성현 감독은 감각적으로는 영화를 꽤 괜찮게 만드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작품 내적으로 논란이 될 만한 장면과 대화를 넣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제가 너무 과민반응하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과거 자신이 일으켰던 작품 외적 논란을 고려한다면 이런 장면과 대화는 빼야하지 않을까요? 사실 위 대화는 영화 전체적으로 봤을 때 아주 중요한 부분은 아닙니다. 함축적으로 작품을 요약하는 장면이긴 합니다만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에서 위 대화가 발생하는 몇 분을 뺀다고 해도 전체 흐름을 방해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포함된 대화와 논란의 전라-순천 장면은, 그저 의문이 들 뿐입니다. 영화라는 매체 특성상 한 장면도 허투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한 프레임 한 프레임이 모두 감독의 의도가 반영됩니다. 저는 그냥 궁금합니다. 왜 감독은 저 씬들을 넣었던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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