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귀여운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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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커피열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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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는 귀여운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


사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이제 많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애시당초 아주 어릴적 기억과 아주 늦은후 기억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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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안당에 넣어놓는 미니어쳐가 있습니다.

저는 귀여워서 넣어놓고 싶었는데 어머니는 별로겠지 싶었어요.

오오 그런데 어머니도 마음에 들어하셔서(앗! 엄마도 귀여움파였나!!)

바깥양반이랑 이것저것 조합해서 구입했습니다.

많이들 넣어놓는

일반 제사상은 재미가(?) 없고

아버지 생전에 좋아할법한 구성으로 주문해 만들었습니다.

사실 아버지의 마지막즈음 저녁식사는 

늘 아무것도 곁들이지 않은 흰두부였어요.

(흰두부 모형만은 팔지 않았습니다!)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매일 두부를 사와서 저녁으로 드시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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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적은 것처럼 나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그것마저 대부분 유쾌하지 않은 기억들인데,

제가 점점 아버지의 나이에 다가갈수록 

유쾌하지 않은 기억이 자동으로 날아가고

기분좋은 기억들만 남고 있습니다.

예전에 어머니가 아버지가 군대에서 만든 수양록

(지금도 그런거 하나 모르겠네요.아무튼 군대에서 일기도 적고 꿈도 적고 욕도..아니아니)을 보여주신적이 있었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수양록안에는 그림이랑 시가 온통 가득했거든요.

그런데 와 그림을 잘그려!

글도 잘 쓰셔!!!

저는 무슨 책을 보는 줄 알았습니다.

(뭐 군대가면 다들 문학소년, 꿈동산 청년들이 되곤 하지만)

‘뭐야 아빠 그림도 잘 그리시네’

이제보니 제가 21년간 그림그리며 먹고 살수 있었던 

시작은 아버지였다는 거대한 비밀이 밝혀지..(아앗 그건 아니지!!)

제가 모르는 아버지의 20대 젊은날은 매우 귀여운 면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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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저녁, 

운동을 마치고 돌아온 아버지의 손에는 

언제나처럼 두부가 들려있었습니다.

당시 아버지와 관계가 매우 불편해지고 있던 상황에서 

핀잔을 주려고 

“그거 뭐 맛있다고 맨날 사와요”

아버지의 식사가 그리 된 것은 

당뇨와 다른 합병증으로 그런것임을 알면서 

나는 고약한 질문을 한 것이죠.

아버지는 답을 하지 않고 

식사를 다 하신후 나가서 담배를 한대 태우셨습니다.

매일 태우시는 것도 아니고 일주일에 하나, 둘….

건강을 위해서 저런 식사를 하고

건강을 해치는 담배를 태우는 이 모순된 행동이 

아버지의 대답같았습니다.

“야! 니가 이 맛을 아냐? ㅋㅋ”

이렇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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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쓰러지시고 난 후

몸의 절반이 마비되어 말도 잘 못하시고

잡아주지 않으면 걸음도 힘든 상태가 되었습니다.

병원에서는 남은 여생을 누워만 있을거라고 했었는데

집에 돌아오시고 난 후 돌아가시기 전까지 

매일 올림픽공원에 나가 운동을 하셨고

그 강도와 시간이 점점 늘더니

마지막에는 조금 과장해서 아무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걷고 말할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운전도 다시 하실수 있게 되었죠.

#귀여운거그려서20년살아남았습니다




엄니집에 가서 아버지 봉안당에 놓을 사진 고르다 빵터진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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