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쓰러지셨던 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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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경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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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 일요일 아침에 9시쯤 단잠 자고 있다가, 갑자기 어머니한테 전화가 왔어. 이 시간에 전화하신 적이 없는데 무슨일인가 싶어서 받았더니 엄청떨리는 목소리로 아버지가 쓰러지셨다는거야. 갑자기 손발에 느낌이 없다고 하시더니 말이 점점 어눌해지시다가 눈이 풀리고 그대로 쓰러지셨다고..

 

아버지가 체격이 크신편인데, 쓰러질때 머리가 어디 부딪칠까봐 어머니가 반사적으로 상체를 감싸 안으셨고 무게 때문에 그대로 같이 쓰러져서 어찌하지도 못하고 도와달라며 소리소리를 질렀다네.

 

부모님 본가가 신축빌라인데 요즘 세상에 희한하게 빌라 사람들끼리 서로 되게 친하게 지내. 신혼부부가 두어집 있고 아버지 나이대 어르신 부부가 두어집 있고 그러거든. 마침 일요일이라 사람들 다 집에있을 시간이라 천만다행이었지. 어머니가 도와달라고 하시는 소리를 듣고 옆집 아랫집 윗집 사람들 다 뛰어와서 들어서 소파에 눕히고 바로 119신고 했다고..(어르신들 이거 진짜 중요한거같다. 위급할때 도와줄 이웃.)

 

전화받고 나도 바로 뛰쳐나갔는데 본가까지 한시간 반은 걸리거든. 그래서 가는 도중 온갖 생각이 다 드는거야. 이거 증세가 딱 봐도 뇌졸중인데... 남의 일인줄만 알았는데 드디어 올게 왔구나... 하긴 아버지 나이도 있으시니..어떻게 해야되나... 별일 없으실까... 후유증 심하지 않아야 할텐데.. 병간호 하려면 회사는 또 어떻게 하고 또 병원비에... ..보험은 들어놨나.. ..심각하신거면 간호하는 사람 따로 고용해야되던데 한 달에 얼마나 들까...진짜 오만생각 다들면서 또 인터넷에 뇌졸중 이런거 검색하니까 너무 끔찍한 얘기만 많아가지고 핸드폰도 안봤다.

 

가는 도중 어머니랑 통화를 하니 병원은 들어가셨고 검사중이라고. 병원 실려가는 도중에 의식은 되찾긴 하셨대. 어찌된거냐고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아버지가 발목이 좀 안좋으셔서 정형외과에 매주 다니시거든... 그냥 뭐 대단한 건 아니고 물리치료랑 주사나 좀 맞고 그 정도.

 

그 날도 평소처럼 병원 갔다오는 길이었는데 운전중 손발에 감각이 점점 없어져서 무슨일인가 싶으셨대. 집으로 도착해서 문열자마자 현관에서 쓰러지신거더라고. 병원 도착하니 가까운데 사는 작은아버지랑 사촌형, 동생이 먼저 와있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환자 한 명당 문병도 한 명밖에 못들어 간다고 해서 그냥 밖에 계시더라고.

 

일단 내가 들어가서 병실에 가니까 아버지가 침대에 앉아계시다가 어 왔냐 이러시는거임;;; 도대체 뭐냐고 물으니 아 그냥 괜찮다 별거아니다 호들갑 떨지 말라 그러시면서 밖에 나가자고 하시더라. 병원에 물어보니 휴일이라 정밀한 검진은 못했지만 당장 할 수 있는 뇌졸중 검사는 했는데 결과가 멀쩡하시다고 그러는 거야;;

 

그래도 아직 모르니 며칠 입원하시고 차도를 보며서 월요일에 정밀검사 받아보자고 하니까, 아이고 갠찮다 병원답답해서 못있는다 난 멀쩡하다 집에 갈란다 그러심. 근데 사촌동생이 대학병원 간호사 10년차거든. 걔가 오만 잔소리를 퍼부으니 그때야 좀 얌전해지심ㅋㅋㅋ

 

그 날은 아버지 병원에 입원시켜드리고 나는 집에 옴. 얼마나 가슴을 쓸어내렸는지... 그리고 오늘 검사결과 나왔는지 연락이 왔는데 이상증세는 없고, 뇌졸중 관련 수치는 오히려 같은 나이대 어르신보다 좋은 편 이라고 함. 그럼 도대체 이유가 뭐였냐고 물으니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그 날 정형외과에서 맞은 주사가 쇼크를 일으켰을 거라고 추측한대. 주사가 평소에 맞는거랑 좀 다른거였다네. 세상에 참 별일도 다 있네 싶었음.

 

아무튼 요 이틀간 진짜 지옥갔다온 기분이었다... 뇌졸중이 아니라 다행이긴 하지만, 지금도 계속 생각나는게, 쓰러지셨을때 도와줄 사람 없어서 바로 병원 못가셨다면... 혹은 혼자계셔서 그 상태 그대로 몇시간 방치되셨다면.... 어으 생각도 하기 싫다. 진짜 이번엔 운이 좋았다고밖에 생각이 안 든다.

 

그래서 이번주 일요일엔 선물 좀 사들고 가서 도와주신 이웃분들 드릴 예정임. 진짜 생명의 은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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