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영 박사님이 재수 실패한 아들에게 해주신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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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칼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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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라고 아이 키울 때 왜 고민이 없었겠어요? 하지만 단 한가지, 이것만은 지키려고 노력했어요. 소리 지르지 않고, 화 내지 않고, 때리지 않고 키웠어요. 제가 이렇게 말하면 ‘그게 가능해요?’ 라고들 해요. 저도 정말 힘들고 때론 고통스러웠죠. 하지만, 소리 지르고 화 내고 때리는 게 아이한테 얼마나 해로운지 아니까, 또 밖에서는 늘 그러면 안 된다고 강조하면서 정작 내가 집에서 그러면 안되니까 굉장히 노력한 거죠. 아이가 마음이 편안한 사람으로 크는 게 목표였거든요.”


그러면서 그가 들려준 일화 하나가 마음에 남았다. 아들이 재수를 하겠다고 했을 때, 그리고 이듬해 재수를 하고도 만족할만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때 그가 해줬다는 말이다.


“저는 아이에게 선행학습을 시키지 않았어요. 저는 적기(適期) 교육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거든요. ‘이 나이에는 이걸 배워야 한다’는, 기라성 같은 학자, 전문가들이 협의 끝에 만들어낸 게 적기 교육이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이걸 거스르죠. 선행을 해서 이를 앞서야만 자녀를 잘 키우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제 가치관 때문에 강남에서 학교 다니는 아이한테 선행학습도 안 시켜서 점수가 잘 안 나온 건 아닌가 속으로 혼자 후회하기도 했죠. 그래도 아이한테 늘 ‘우리가 공부를 하는 이유는 실력을 늘리기 위함이다. 점수를 잘 받기 위해서가 아니다’라고 했어요. 아들이 재수하겠다고 할 때도 ‘그래, 네가 하고 싶으니 하거라. 또 1년 더 공부하면 네 실력이 1년만큼 늘 거 아니겠니. 그리고 인생에는 후회가 없어야 한다. 그러니 하거라’라고 해줬죠.”



-재수한 뒤 결과는 어땠나요?
“생각만큼 잘 나오지 않았죠. (성적을 받고 나서) 어느 날 아들이 옆에 와서 그러더라고요. ‘엄마, 제가 정말 열심히 했는데 결과가 그만큼 좋지 않아요.’ 그래서 제가 그랬죠. ‘열심히 한 것 엄마가 다 알지. 하지만, 실력과 결과가 꼭 비례하는 건 아니야.’ 그랬더니 아들이 또 그래요. ‘그래도 점수가 안 좋으니 내가 최선을 다 한 것도 소용이 없잖아요.’ 이번엔 이렇게 말해줬죠. ‘최선을 다한다는 건 결과에 따른 감정까지도 겪어 내는 것까지야. 경우에 따라선 좌절도 하고 마음도 아프겠지. 그것까지도 끝까지 겪어보렴. 얻는 게 있을 거야.’ 그 뒤로는 아이가 실망이나 실패 같은 얘기를 않더라고요.”


교육에서 더 중요한 게 있는데! 예를 들어 자녀가 문제 열 개 중에 아홉 개를 틀리고 하나만 맞혀도 ‘이거 하나는 알았네’라고 할 수 있어야 해요. 그래야 자기 신뢰와 확신이 생겨요. 그런데 우리는 ‘아홉 개나 왜 틀렸어!’, ‘이거 어제도 알려준 거잖아!’ 하면서 아이를 잡아 먹을 듯한 눈으로 바라보죠. 생각해보세요. 모든 걸 한번에 제대로 배우는 경우도 물론 있긴 하지만 대개 실수 하고 틀리면서 배워요. 그런데 부모들은 그런 시행착오에 자비가 없죠. 아이들에게는 매 순간이 새날이에요. 매 상황마다 새날이 열리는 거죠. 그걸 알아야 해요.”



-굉장히 중요한 얘기네요. 그런데 보통 자녀에게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죠.
“맞아요. 우리 부모들은 보통 그런 ‘자비’가 없어요. 그런데 부모가 자녀 마음을 제일 잘 알아주고 그 마음을 공격하지 않으면서 키우는 건 굉장히 중요한 일이거든요.”



-부모의 그런 인내심, 자비가 왜 그토록 중요한 건가요?
“우리는 성적으로 살지 않아요. 꼴등을 하더라도 최선을 다해보는 것, 또 틀려도 한번 더 풀어볼 용기로 평생 살아갈 태도를 배우는 거예요. 학교 다닐 때 공부 좀 했던 사람이라도 중학교 1학년 첫 학기 중간고사 수학 점수 기억할까요? 못해요. 그 때 밤늦게까지 열심히 공부했던 그 기억으로 살아가는 거예요. 학습에만 몰두된 자녀와 부모 관계는 사상누각이죠. 그걸로 모든 게 다 흔들려요. 부모가 ‘네가 어디서도 꿀리지 않게 하려고 허리띠 졸라 매고 야근하며 과외비 댔고, 평생 너를 위해 희생하며 사랑했다’고 말하지만, 정작 자녀는 뭘 원했을까요? 아이들은, 그리고 우리는 ‘내가 정말 힘들었던 그때 우리 엄마가 나를 꽉 안아줬어’ 하는 부모가 준 좋은 기억으로 삶을 버텨내요.”



-그것이 결국 사회 생활이나 대인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겠군요.
“공부는 결국 배신해요. (웃음) 매일 새벽까지 수학, 과학 문제만 풀어서 과학고에 가도 행복의 열쇠는 거기 있지 않거든요. 그럼 소위 명문대 나온 사람은 다 행복해야죠. 사람은 결국 가까운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보낼 때 행복해해요. 가까운 사람이 나를 위로해줬을 때, 그와 함께 재미있었을 때, 그런 기억으로 힘든 시간을 버텨가요. 자녀한테는 그 가장 가까운 사람이 부모예요. 부모와의 관계는 결국 개인의 행복, 사회의 행복과 연결돼있는 거죠. 자기 마음이 편안한 아이가 커서도 남과 좋은 관계를 맺으려 노력하고, 남이 힘들 때 등도 두드려줄 줄 알고, 남의 아픔에 공감할 줄 아는 법이거든요. 인간관계를 풀어가는 상식은 교과서가 아니라 부모와의 관계에 있어요.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볼 줄 아는 눈이 떠져야 해요.”



-행복이란 뭘까요?

“절대적으로 주관적인 감정이죠. (미소) 저에게 행복한 삶은 마음이 편안한 삶이죠. 내 주변에 의미 있는 사람들과 ‘잘’ 까지도 필요 없이, ‘그럭저럭’ 지내는 것, 그게 행복이라고 생각해요. 사는 데 너무 비장할 필요 없어요. 가깝고 의미 있는 주위의 사람과 인생을 얘기하며 살면 돼요. 아픔, 좌절, 비참함, 분노, 애처로움, 위로, 행복, 기쁨을 함께 얘기할 수 있어야 해요. 그게 행복의 열쇠지요. 그런데! 중요하지 않은 사람은 불러 세우지 마세요. 설사 걸어가다가 누가 내 어깨를 팍 치고 가더라도 탈구된 게 아니라면 그냥 보내세요. 그렇지 않고 ‘저기요!’ 하면 악연이 생겨요. 나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의도가 없어요. 그냥 ‘바쁜가 보지’ 하고 보내면 돼요. 내 인생을 흔들만한 사람이 아니에요. 그럼 강물처럼 흘려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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