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유독 신라 고분에서만 유물이 많이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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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특히 남한 고대 유물의 비중은 대부분 신라가 차지함
이는 신라가 삼국시대 통일을 먼저 이루어 오래오래 살았다는 점에서도 기인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고분의 차이점에 있음
위는 백제의 석촌동 고분,
아래는 설명 안 해줘도 알 고구려의 장군총임
이런 형태의 무덤을 적석총이라고 부름
돌을 쌓아서 만든 무덤이란 뜻이며 고구려와 백제에서 유행함
벽화를 남기기 쉽다는 장점이 있음
겉보기엔 웅장하지만 적석총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시신과 유물을 안치하는 별도 석실의 존재임
저 안전한 석실까지만 어떻게든 닿으면 모든 보물이 발견자의 것이나 다름이 없게 되어버리는 구조,
사실상 도굴에 최적화된 구조를 지닌 고분임
덕분에 지금까지 멀쩡한 적석총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반면 신라에서 유행한 고분은 적석목곽분,
다른 말로 돌무지덧널무덤이라고도 함
적석총과는 달리 석실이 없고
사진처럼 물건을 껴묻은 나무널 -> 나무덧널을 아래에 깐 후
돌더미 -> 흙더미를 차례대로 조성하여 만듦
(봉토를 치운 돌무지덧널무덤의 모습)
이걸로 한탕 하려는 도굴꾼은 어디에서 땅을 파도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음
몇 시간 동안 똥줄 타게 치운 흙 아래로 갑툭튀한 돌무더기에 절망하거나
아니면 지하에서 삽질을 하다 드디어 닿은 덧널을 잡는 순간
무자비하게 쏟아지는 스톤샤워를 쳐맞고 에엑따 울부짖다 죽을 수 밖에 없었음
돌무지덧널무덤 자체가 딱히 함정 혹은 경비가 없어도 충분히 탱킹을 잘 해내는 구조였던 셈
그럼 왜 신라만 저런 고분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아직 정확히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중국과의 부실한 접촉 때문이 아닌가 하는 가설이 있음
고구려, 백제는 중국과 가깝기에 무리 없이 중원과 교류를 할 수 있어서
내부에 방을 두는 중국의 고분 문화가 빠르게 도입되었지만
신라는 동북아 최동단 일본이랑 쎄쎄쎄나 해야 하는 지리적 특성상
자기들만의 무덤 양식을 비교적 온전하게 지킬 수 있었다는 설임
투탕카멘이 이집트 역사상 볼일 없는 쩌리 파라오라
그 무덤은 완벽하게 지켜졌다는 말이랑 비슷하다고 보면 됨
역사의 새옹지마가 따로 없다
아무튼 이후 신라 왕실이 불교로 개종하고, 자연스레 왕권이 강화되면서
쓸데없이 큰 무덤을 만들 필요가 없어지자 돌무지덧널무덤은 쇠퇴함
대신 그 빈 자리를 불교식 화장 및 봉분이 대체하게 된다
나중에 제대로 경주에 가서 돌무지덧널무덤을 보게 되면
도둑놈을 엿먹이던 신라 조상님들의 지혜에 탄복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