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혁. 검일제의 통치방식과 한국인의 저항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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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합방 이후 일제가 제일 먼저 서두른 것이 토지 조사 사업인데, 총독부령으로 조선 내 모든 사람이 소유 토지를 신고하도록 한 것이다. 문제는 이게 일본어로만 해야 했고 서류 등이 복잡했다. 그러니 대부분의 (일본어를 모르는) 조선인들은 신고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어어 하는 사이에 일제가 그 토지를 죄다 몰수하게 된 것이다. 일본이 수탈하는 방식은 대체로 이러했다.
"너희들 법을 안 지켰네? 어 그럼 너 땅, 집 다 몰수되는 거야. 어쩔 수 없어." 이런 식이었다. 물론 여기에 반항하는 조선인들이 있었지만 가차없이 즉결 처분했다. 일본은 조선을 근대화를 시킨다고 입으로만 떠들었지, 실제론 전근대적인 태형도 행하고 헌병을 동원해 민간인을 사정없이 짓밟았다.
이런 일제시대 초반의 일본의 강압적 통치 방식이 지금의 검찰 공화국 통치 방식과 일맥상통하는 것같다. 검찰공화국은 업무개시명령이며 압수수색이며 꼭 법을 핑계삼아 자기들에게만 유리한 짓, 정적을 숙청하는 액션을 해 왔는데 딱 일제시대 무단통치와 비슷하다.
이런 무단 통치에 조선인들이 폭발한 것이 1919년 3.1 만세운동이다. 잊지 않아야 하는 것이, 동경 유학생들의 2.8 독립선언이 3.1 파고다보다 더 먼져였다는 점이다. 지금도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수많은 한국인들이 한국의 민주주의와 인권이 후퇴하는 것에 분노하고 고국이 제자리를 찾길 희망하는 많은 행동들을 한다. 베를린 소녀상도 재외 한국인들이 목숨처럼 사수하며 지키는 것이다. CNN, 가디언 등 유수의 해외지에서 일하고 있는 재외 2세들도 오히려 한국내 언론기자들보다도 더 고국의 민주주의를 사수하고 싶어한다.
3.1운동은 일제의 폭압적인 무력진압으로 결국 실패로 끝났지만, 우리 내에서의 문제점도 선명히 노출됐다. 민족대표와 대중들이 따로 놀았기 때문이다. 서울과 지역별로 분열되어 거사가 이뤄져 힘이 집중되지 못한 탓도 있었다. 지금도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있는 검찰공화국을 밀어내고 정치를 정상화시키려는 시민의 염원은 강하지만, 그 의도들이 하나의 정치력으로 수렴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그때와 비슷하다. 검찰공화국이 공안정국을 조성하며 민주당 지도부를 모두 구속/불구속 수사 기소하는 것도 자기들의 통치에 불안이 되는 요소를 제거하기 위한 일제 시대 폭압 정치의 deja vu 일 수밖에 없다.
독립을 염원하는 조선인들은 단일한 컨트롤 타워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껴 상해에 임시정부를 수립한다. 하지만 문제는 지속된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벼란간, 국제연맹에 가서 자기 멋대로, '조선을 UN이 대리 통치해 달라'고 요청을 했기 때문이다. 임시정부는 발칵 뒤집혀, 완전히 분열되고 파탄을 맞는다. 분열의 원흉인 이승만은 미국으로 넘어가고 안창호, 신채호도 임시정부에서 빠져나가 버린다. 쪼그라들어 버린 임정은 그닥 높지 않은 지위에 있던 김구가 맡아 꾸려가게 된다.
항상 민중의 저항은 이런 이승만같은 분열과 갈등의 원흉에 의해 치명적 타격을 받곤 한다. 외부의 공격보다, 이런 내부의 좀벌레같은 존재들이 훨씬 더 위협적인 것이다. 지금 한국민들을 세대간, 계급간, 지역간 젠더간 갈라치기를 하는 원흉들은 과연 누구인가? 그리고 한국의 민주주의 세력을 분열시키는 원흉은 누구인가?
1920년대. 3.1운동에 충격을 받은 일본은 문화통치로 기조를 전환했지만 총독들 중 문민 총독은 여전히 한 명도 없었다. 모두 무관들이었다. 1920년대가 독립운동의 전성기였던 건 사회주의/공산주의 사조가 국내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당시 조선민중은 '부르조아' 계급에 해당하는 일제와 친일파를 너무 미워했기 때문에, 계급투쟁을 부르짖는 사회주의에 굉장히 빠르게 친화하였다. 바로 이때문에 일제는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적대시하고 1925년 치안유지법을 선포하여, 사회주의자들을 탄압하기 시작한다. 근데 그건 핑계였을 뿐이고, 사실은 좌익 척결을 명분으로 독립운동가들을 때려잡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로 노덕술 등 독립운동가들을 무조건 빨갱이라며 때려잡는 친일파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검찰공화국이 조중동 등 친일 언론들과 결탁하여 검찰독재에 저항하려는 언론들을 무도하게 탄압하고 노동자 파업에 대해 북한과 똑같은 놈들이라며 욕을 하는 것을 보면 일제시대 악랄한 총독부의 deja vu가 아닐지, 의심하게 된다.
1930년대 일본은 경제 대공황을 겪으면서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 속에 초강경 극우파들이 집권하게 된다. 이들은 심각한 경제 위기에 대해, 전쟁을 그 탈출구로 생각하여 대륙과 태평양으로의 침공을 계획하게 된다. 이 미친 군국주의 일본 극우파들은 조선을 병참기지화하여, 무기 생산과 수송을 위해 중화학공업단지를 여기저기 세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민족 말살 통치를 시작하여 국가총동원령을 내리고 쌀과 물자를 공출, 징용과 위안부에 젊은이들을 몰고 갔다.
일제시대가 길어지면서, 이제 일제시대때 태어난 세대들이 20~30대를 전부 채우게 된다. 이들 젊은 세대들은 이런 일제의 통치가 어릴 때부터 교육받은 바에 따른 것이고 민족적 소양과 뿌리를 교육받을 방도가 없었다. 그러니 징용, 공출, 창씨개명, 조선어 금지, 황국신민 서사, 신사 참배 등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조금씩 생기고 있었다.
지금 그 당시를 조망하면서 어떤 멍청한 인간들은, "당시 조선인들은 자발적으로 징용을 갔고 황국 신민이 되고 싶어했고 전쟁에 참가하고 싶어했다"라고 떠드는데 당시 일부 어린 세대는 자기도 모르게 일제의 의도에 따라가게 될 수밖에 없던 것일 뿐이다. 그런 폭압 속에서도 윤봉길, 이봉창 의사의 의거가 일어났고 1943~44년정도가 되면서 일본의 패망을 예측하여 건국 동맹, 건준을 결사한 여운형, 안재홍같은 이들이 있었으니 조선인들의 독립에 대한 열망과 저항 정신은 그 어떤 나라에서도 보기 힘들 정도로 강렬했다고 보아야 맞다.
잠시 잠깐동안 일제시대를 훑어 보았다. 이렇게 짧게만 보아도 한국인들의 피 속에는 강압과 폭압에 저항하는 DNA가 이어져 면면히 내려옴을 알 수 있다. 제아무리 폭압적인 검찰 공화국이라도, 이런 한국인들의 강인한 저항 정신마저 꺾지는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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굥가의 아부지가 일본을 그렇게 따르고 일제의 방식대로
때려 교육했다죠. 그가 보인 껌찰장악과 노동자를 힘으로
누르는 과정을 보면, 조선총독부가 행했던 행동과 비슷한 게 아부지 영향을 잘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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