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의 소떼방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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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경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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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글 많이 쓰네요..;;;

모공을 난잡하게 만들고 있는 게 아닌가 걱정됩니다.


얼마 전에 꼬꼬무에서 '정주영'을 다루더라고요.

상세히 말씀드릴 수 없지만, 직업적으로 재벌오너 및 일가들과 접촉할 일이 간혹 있는데요..

사실을 모르고 봐도, 적당히 알고 봐도 

돈 많은 것 외엔 배울 점이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정주영 만큼은 결이 좀 다른 사람이란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정주영은 아시다시피 실향민이죠. 강원도 출신이고, 태생한 지역은 현재 휴전선 너머입니다.

어렸을 때 아버지 소 판 돈을 훔쳐 상경, 쌀집 점원생활을 시작해 종잣돈 만들어 사업을 일구고 그걸 오늘날의 현대까지 성장시킵니다.

(오늘날의 '현대'는 그 전의 현대보다도 약한 표현이네요.  IMF 직후까지는 훨씬 더 대단한 기업집단이었죠)

1998년의 소떼방북은 그 때 갖고 달아난 소값을 갚는 의미였다고 합니다.

두 차례에 걸쳐 북한에 1001마리의 소를 끌고 갔습니다. 

1000마리에 한 마리를 더 얹은 이유는  1000마리로 끝이 아니라는 의미를 담았다는 얘기도 있고, 1000마리를 북한에 1마리는 고향집에 돌려준 의미라는 얘기도 있고 그렇습니다. 어쨌든 아버지에게 갚은 소라는 거죠.


그러나  이 얘기는 일정의 포장이 포함된 얘기라 보고요..

전 이렇게 생각합니다. 구소련 무너지고, 중국 개방되고...그런 시기였고..

이 뛰어난 장사꾼이 돈냄새를 맡은 거죠. 북한에서.

소 1000마리 주고 금강산관광 사업권을 얻어옵니다. 개성공단도 그렇게 시작된 거고요.

중동에서 건설 따 먹고,  선박에, 자동차에 세계적 기업을 일궜으니..

이젠 북한에서 시장 만들고 돈 벌자.

돈 벌고 한반도 평화, 통일의 초석 쌓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도랑치고 가재잡고

얼마나 좋아, 라고 생각했던 게 대북사업 구상의 첫발 아니었을까 생각한다는 거죠.

정주영 구상의 끝에는 북한에도 조선소 몇 개쯤 만들고, 자동차공장도 만들고 뭐 그런 게 들어있었을 겁니다.


소떼 몰고 넘어갈 때 정주영의 나이가 여든셋이었습니다. 일을 벌릴 만한 나이가 이미 아니었는데 

일을 쳐도 아주 큰일을 쳐버린 겁니다. 아주 오래된 일이지만, 소떼를 실은 트럭 수십 대가 줄줄이 휴전선을 넘어가는 장관이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우리 역사를 넘어 세계사에 길이길이 남을 명장면이라 생각해요.




그런데 오래 못가 정주영이 죽죠.

가장 아꼈던 아들, 그러니까 정주영이 선택한 현대가의 적자, 로 여겨졌던 정몽헌에게 그룹을 통째로 주지만,
결국 정주영 사후의 현대는 뿔뿔이 흩어집니다. 

그룹이 사분오열되고 모기업 역할을 했던 현대건설이 채권단의 손에 넘어갑니다..;;;

자동차, 조선, 유통 등 이름만 같이 쓰는 다른 기업집단으로 구분되는 가운데

대북사업은 현대아산이 맡습니다. 오늘날의 현대그룹은 보통 현정은의 현대라고 하는, 현대엘리베이터를 중심으로 하는 그 그룹을 의미하고, 거기에 현대아산이 있습니다. 현대그룹은 현대자동차그룹, 현대중공업그룹, 현대백화점그룹 등등 현대 이름을 쓰는 기업집단 중에 가장 작고, 오너의 성이 다릅니다.


아시다시피 정몽헌도 오래 살지 못하죠. 

대북송금특검에 휘말려 고초를 겪다 계동사옥에서 투신해버립니다.

그래도 한동안 금강산관광사업은 계속됐고.개성공단도 문을 엽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게 잘 믿기지도 않습니다...;;;)


솔직히 이 때의 대북관계, 남북경협은 정주영의 원맨 플레이로 쌓아올렸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그런데 그렇게 어렵사리 쌓아놓은 화해와 협력, 평화의 실마리를 털어먹는데 10년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금강산관광도, 개성공단도 뭐 하나 남은 게 없죠 지금....

제가 정주영이면 죽어서도 눈을 못 감을 거 같아요..;;;

제 소도, 제 돈도 아닌데 아까워 죽겠어요.....ㅠㅠ


정주영이 살아 있었다면 달라졌을까

정몽헌이 살아 있었다면 달라졌을까

2000년대 중반 이후 우리나라 대통령이 이명박근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달라졌을까.

2019년 하노이에서 트럼프와 김정은이 손을 맞잡았다면 달라졌을까...

지금 우리나라 대통령이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뭔가 달라질 가능성이 있을까..


가만 생각해보면 아까운 장면이 너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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