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에 충성한 것은 훈장이 아니다.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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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취직해서 현재 나름 나쁘지 않은 수준의 회사를 다니고 있음에도 경악을 금치 못하던 때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50대 팀장한테 '나 때는...'이라는 말을 직접 들었던 때였다.
마지막으로 들었던 '나 때는...', '우리때는...'은 2010년대 초 군생활할 때였기 때문에 이후 내성이 없던 상태에서 저 말을
실제로 들으니 SNS나 커뮤니티에 심심치 않게 올라오는 '나 때는...' 드립이 결코 과장이 아니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 말을 하면서 팀장이 한 말의 내용을 요약하면 자신이 나만한 쥬니어 직급일 때는 회사가 시키지 않아도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며 휴일근무를 자처했는데 요즘 사람들은 자기 삶을 얄미울 정도로 챙긴다는 말이었다. 물론 자기도 이런 말을 하면
꼰대 취급을 받을 것이 내심 두려웠는지 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있고 그게 반드시 잘못된 사고방식은 아니라고 주석을 달기는 했으나
표정이나 말투에는 '자신이 조식에 이 한 몸 바쳤노라'는 자부심과 긍지가 어느정도 묻어나왔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정말 대단하시군!' 내지는 '존경스럽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나는 그 말이 가족에게 소홀했다는 말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자기 딴에는 회사를 위해 충성을 다 해가며
열심히 일했을 지도 모르겠지만 가족들은 남편과 아버지와 함께 보내며 쌓을 수 있었을 추억과 가르침을
잃어버린 것이나 다름 없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회사에 빼앗겼다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족들은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남편과 아버지를 회사에게 빼앗긴 것이다. 물론 그 덕에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했을 지는 모르겠으나 아버지(남편)와의 기억의 부재를 회사의 연봉과 복지가 상쇄해줄 수준이 되는지는
여전히 의문이 든다.
더구나 자식들의 인격과 가치관이 유아기~청소년기에 거의 완성된다는 것을 감안할 때,
자라나는 시점에 아버지의 부재가 인생에 결코 긍정적인 영향만을 미쳤으리라 장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나는 팀장에게 직접 들은 바는 없으나 자기가 퇴근후 집으로 돌아오면 자식들이 인사만 하고
방 안으로 들어가버린다고 팀원들에게 푸념을 여러차례 했다고 하니 가족관계가 그리 원만해보이지는 않는다.
물론 이런 글을 보면 '다 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해 그랬다'고 변명하고 싶은 50~60대 아버지 세대들의 항변이 있을 수 있다.
당시의 시대상과 풍조를 감안하면 그때 당시 그럴 수 밖에 없었으리라는 환경은 이해한다. 그 때에는 자신이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조직에 충성하여 조직으로부터 돈과 승진, 인맥 등을 대가로 보상받는 거래 관계가 성립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노동소득은 자본소득, 불로소득을 아득한 수준으로 따라잡지 못하고, 일부 IT/게임 업계를 제외하면
이미 대한민국의 산업구조와 법 체계가 고도로 발달되어 있어 기업이 잘 만든 제품 하나로 수천명, 수만명의 직원들을 먹여 살릴
일확천금을 만들어내기 쉽지 않은 세상이다. 즉, 시대가 변했다. 조직에 충성해도 얻을 수 있는 대가는 예전만큼 크지 못하다.
쥬니어 직급들이 조직에 충성하고 싶지 않아하는 것은 단지 가치관만 변해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자신의 인생과 시간을 포기하고
조직에 충성하여 얻을 수 있는 보상이 너무 적으니 차라리 내 개인 시간이라도 누리겠다는 것이다.
까놓고 말해서 연봉 5억 씩 주면 주말근무와 야근으로 점철된 지옥과 같은 일상이어도 회삿일을 마다할 사원, 대리 직급들이 얼마나 될까.
단순히 밀레니얼 세대들의 가치관이 나약해져서 조직에 충성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조직이 밀레니얼 세대가 원하는 수준의 보상을 더 이상
제공해주지 못하니 직원들이 회사에 기대도 하지 않고, 자신을 희생하고 싶지도 않은 것이다.
586 세대들도 나름대로의 고충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회사에 충성하는 게 그때 당시의 최선의 선택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더 이상 그렇지 못하다. 그때에는 합리적인 계산과 결정으로 도출된 결과일지 몰라도 지금 시대의 사람들에게
물려줄 전통이 될 수는 없다. 그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살아온 것을 질책할 수 없으나, 그런 사고방식을 강요하는 것은 질책받아 마땅하다.
이해와 배려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정 어려우면 '얘네는 계도가 안돼.'라고 체념하는 것이 밀레니얼 세대 이하에겐 더 편하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는 법이니, 실망하지 않도록 기대도 하지 않는 것이 어쩌면 더 나은 선택이 될 수도 있다.
3줄 요약
1. 조직에 한 몸 다 바치는 것은
2. 그때 당시에는 합리적인 선택이었을 지 모르겠으나
3. 요즘 세대들에게 물려줄 전통은 되지 못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