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퇴보시킨 3대 사건.jung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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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서갱유 (기원전 212년 ~ 기원전 213년)
중국 최초의 통일 황제였던 진시황이 일으켰던 사건
시황제의 승상 이사가 '옛 사상과 제도에 매달려 있다면 통치에 해로울 것'이라며 조언했고,
시황제가 제자백가의 책들과 시,서를 제외한 모든 국가의 책들을 불태워 버렸다.
(제자백가 공자, 순자, 묵자, 한비자, 순자, 맹자 등의 사상가들)
이걸 '분서'라고 한다
1년 뒤 사상가들이 시황제를 비판했는데 시황제가 열받아 사상가들을 매장시켰다.
이걸 '갱유'라고 한다
그래서 '분서갱유' 사건
이 사건 당시 중국 전설상의 왕조들인
삼황오제 시대, 하나라
최초의 왕조로 불리는 상나라
이후 나온 주나라는 물론
서주, 동주시대, 춘추, 전국시대에 걸쳐
기원전 약 4천여년간 쓰여진 역사서, 저술서 등이 불타 없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 강희제
문자의 옥 (1660~1700년대 초)
강희제 ~ 옹정제 ~ 건륭제 시기에 있던 사건
청나라는 본래 오랑캐로 통일되는 만주족이 세운 나라로
원래 중국인들이였던 한족들은 청나라에 집단반발하고 있었다.
때 마침 명사집략 사건이 일어났는데
(명나라는 찬양하면서 청나라를 깍아 내린 사건)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세워짐)
이걸 알게 된 강희제가 책에 연루된 사람들을 모조리 잡아들이고 집안을 멸족시켰다.
이후 남산안-대명세 사건
사사정 사건
증정-대의각미록 사건
등을 거치면서 약 60여년간 사상가, 저술가들을 전부 말살시켰다.
이 당시 청나라 사람들은 문학과 역사를 연구하지 않았고,
그렇게 중국의 문화는 또 다시 퇴보하게 된다.
문화대혁명 (1966~1976)
분서갱유, 문자의 옥을 합해놓은 사건
중국 역사상 최악의 사건으로 불리기도 한다.
1966년부터 1976년까지 마오쩌둥의 시대에 발생했던 사건으로
"옛 것은 모조리 숙청하라. 문화, 교육, 니들 부모까지도"
라는 마오쩌둥의 말에 의해 발발했다.
약 2천년 전에 있었던 진시황의 분서갱유 사건은 승전국이 패전국에 했던 문명 파괴였다면
문화대혁명은 마오쩌둥이 자신의 위치에 불안감을 느끼고 일으켰던 사건이였다.
이 사건 때 음악, 미술, 영화는 물론 체육, 소설, 만화, 수 많은 문화제가 모두 개박살났다
특히 중국의 찬란했던 수천년의 수많은 문화제가 파괴됐는데, 그 문화제를 알아보면
중국 신화 전설상의 임금들인 신농(염제)묘, 순제(순)묘
한자의 창시자로 알려진 창힐묘
중국 전설의 왕조인 하나라 건국자 우왕묘
중국의 기반으로 불리던 공자의 묘
중국 역사상 최고의 지휘관 중 하나인 곽거병묘
초한지로 유명한 항우와 우희의 묘
유비가 제갈량을 삼고초려 했었다는 제갈량의 초려
자신들이 신으로 떠받들던 관제(관우)의 묘
동진의 서예가였던 왕희지묘
판관 포청천으로 유명한 포청천의 묘
중국사 최고의 장군 중 하나인 악비묘
명나라의 명신 해서묘
명나라 홍무제 주원장의 거대한 황릉석비
前 중국 총통 장개석의 옛집, 장개석 생모의 묘
청나라의 문인 오경재 기념관
등 수천년간 쌓아 온 수 많은 것들을 박살냈다.
지금 남아있는 중국의 옛문화들은 3가지의 유형 중 하나다
문화대혁명 이후 다시 세워졌거나
문화대혁명 이후 새로 발견됐거나
장제스가 대만으로 도주하면서 가져갔던 것들
심지어 마오쩌둥 이 인간은 중국을 대표하는 것들인
자금성과 만리장성마저 박살내려고 했다
또한 이 사건 때 각 분야의 지식인들 역시 처단했으며
문화대혁명 기간에만 약 80만명이 박해받고, 이 중 4만명정도가 죽었
다고 한다
(이것도 일부)
공자의 묘 없앨려고 했으면서 공자 중국인이라고 빨고 있고
공자 후손은 대만으로 갔고 중국과 관계를 끊었음
문묘재래악 책 까지 불살라질러서
후에 한국으로 배우러 왔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