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의 신분을 내려놓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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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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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이야기   http://todayhumor.com/?animal_199507

 

 

미코입니다.

이제 해가 바뀌었으니 16살이 되었습니다.

 

병원에 입원 후 간이 안좋다는 소견을 받고, 입원치료를 받았습니다.

퇴원도 하고, 다시 입원도 하고.

약을 잘 못먹이는 집사덕에 고생도 하고.

좋아하던 간식에 트라우마까지 생긴듯한 모습을 보이던 미코입니다.

 

처음 퇴원하고 간식도 한그릇 뚝닥 하길래 마음을 놨습니다.

다음날 되니 다시 안먹습니다.

다른 간식을 주니 좀 먹더니, 여지없이 약을 먹이니 아무것도 안 먹습니다.

 

고뇌했습니다. 어찌해야할지...

아침 출근길에 그렇게 물그릇 옆에 앉아있는 녀석을 보면서 출근을 하고, 하루를 뭐 좀 먹었길 기도하며 일을 했습니다.

퇴근길 그렇게 되뇌었지만, 역시 아무것도 먹지 않았습니다.

결국 밤에 다시 입원을 하고..

 

다음날 퇴근즘에 병원에서 연락이 옵니다.

뭐뭐뭐뭐...

얼른 오라는 소리.

 

평소 한시간반이 걸리는 길이 어떻게 가면 한시간만에 갈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도착후, 이름도 생소한 검사들을 더 큰 병원에가서 받아야다고. 갈거냐고. 가면 여기 검사자료를 넘겨주겠다고.

무슨 검사를 받느냐. 그런 검사는 비용이 얼마나 되느냐. 그런 질문들에 대답은 없고, 그저 빨리 나가주기만을 바라던 병원.

 

택시를 타고 큰 병원으로 이동하는데... 녀석의 울음소리.

만져도 반응이 없고, 그렇게.

병원에 도착해 애가 숨을 안쉬는것 같다고 하자, 심폐소생술을 실시하고 지켜봤습니다.

 

한참을 소생술을 하고, 혹여나 깨어나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그렇게. 미코는 제 곁을 떠났습니다.

 

 

미코에게.

 

미코야.

우스게소리로, 출근하며 혼자가면 안된다. 나 올때까진 있어야된다라고 했는데, 고맙게도 너는 떠나는 순간 내가 옆에 있게 해줬구나.

 

미코야.

처음 집을 샀을때, 집은 내가 샀는데, 나는 아직 집사냐며 너에게 되도않는 말을 했는데, 이제 나는 집사의 신분을 내려놓고 집주인이 되었다.

병원에서 너를 집으로 대려오며.

오늘 하루는 나랑 더 있자며, 집에 너를 뉘여놨는데, 눈물이 울령겨러 자꾸만 니가 숨을 쉬는것같아 너를 계속 하염없이 만지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자다 깨서 찡얼댈것만 같았다.

 

 

 

미코야.

나는 이제 좀 개을러져도 될 것 같다.

너의 화장실을 치울 시간이 없어지고, 너의 밥을 안챙겨도 되며, 너의 물을 새로 갈아주지 않다도 된단다.

바쁜 출근길 너의 물그릇을 씻고, 새 물을 넣어주지 않아도 된단다.

이제 나는 외출하며 돌돌이를 쓰지 않아도 되고.

나가는 내 앞에 널브러져 땡깡부리는 널 달래려, 회사에 지각하지 않아도 된단다.

 

나는 이제 외출복을 입고 침대에 앉을 수 있단다.

나는 이제 외출 전 남는시간에 소파에 앉아있어도 된단다.

 

나는 이제 자려 누우면 여태 가만히 있다가 자려는 나를 괴롭히는 니가 없어 그냥 자도 된단다.

자려다 급작스런 제체기에 놀란 널 달래며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집이 참 넓어졌다.

고작 치운거라곤, 너의 밥그릇, 급수기, 화장실이 다인데...

집이 왜 이렇게 넓어졌는지 모르겠다.

 

어설프게나마 사진을 취미랍시고,

동물 눈동자를 실시간으로 추적하는 기능이 생겼다는 말에 덜컥 카메라를 바꾸고.

그렇게 신세계야! 라며 찍어댄 수천장의 사진과 동영상은, 너의 유골함 사진이 마지막이 되었구나.

아마도. 나는 이제 집에서 카메라를 켤 일은 없을 것 같구나.

 

홀로 있을 너를 위에 틀어놓은 보일러. 전기장판을 꺼도되니.

나는 생활비가 줄어들겠구나.

어떤 사료가 좋을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며, 어느 간식을 더 잘먹을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단다.

 

너의 감자를 치우며 오~! 대박 미코 대박 큰데? 라며 치우고,

쓰레기 봉투의 반이 너의 뒷처리였던걸 생각하면, 이제 쓰레기 버릴일도 줄어들겠다.

청소기를 돌리면 털이 한가득이었는데. 이제 청소 횟수도 줄여도 되겠다.

 

미코야.

나는 아무렇지 않은듯 생활하지만, 가슴 한켠에 돌이 들어같것 같다.

너를 가슴에 올려놓고 너의 골골송을 들으며, 울컥울컥 올라오던 우울증을 달랬던 치료제가 없어졌단다.

출근길을. 퇴근길을 맞이해주던 니가 없단다.

 

미코야.

줏어들은 말이 있단다.

네 삶의 이유가 나였길 바란다. 그렇게 내 삶의 큰 조각인 너를 보낸다.

함께해서 고맙고, 행복했으며, 더 오래지 못해 섭섭하단다.

 

미코야.

제제가 마중나왔는지 모르겠다.

맨날 투닥거렸지만, 그래도 거기선 뭐.. 투닥겨려도 되고, 놀기도 하고.

제제가 떠난 후 이유없이 옷장문을 긁으며 울던 모습이 생각난다.

 

미코야.

내동생. 13년을.. 14년을 함께해줘 고맙다. 부족한 형 밑에서 그래도 잘 살아줘서 고맙다.

연이 있거든. 어떻게든 다시 만나겠지.

그렇게 다른 모습으로 내게 다시 와도 너를 한번에 알아봤으면 좋겠다.

 

미코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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