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굿하트 LSE 명예교수 “인구구조 보라… 인플레와 고금리는 필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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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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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 인구배당 끝나…코로나19로 노동력 부족 가속화”
“고령화의 진짜 문제는 장기 간병 수요 폭발”
“국가 간 불평등 커질 것…‘제2의 중국’ 찾기 어렵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세계 경제는 ‘대안정(Great Moderation)’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견조한 성장률과 낮은 물가 상승률이 특징이었다. 그러다가 2008년 이후 좀처럼 수요가 회복되지 않고 디플레이션 압력이 강해지자 ‘구조적 장기 침체(Secular Stagnation)’ 가설 등이 제기됐다.

상황은 또 바뀌었다. 코로나19 충격에서 벗어난 세계 경제는 이전과 달리 물가 상승률이 급등하고, 그에 맞춰 중앙은행도 기준금리를 끌어올리면서 불안정한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다. 지금의 글로벌 거시 경제와 금융 시장의 불안정이 일시적인 게 아니라는 진단을 굿하트 교수는 내린 셈이다.

굿하트 교수는 영국을 대표하는 거시경제학자다. 영국은행 수석고문으로, 1997년 출범한 영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MPC)를 만들고 초대 위원으로 활동했다. 2020년 8월 마노즈 프라단 전 모건스탠리 글로벌경제분석팀 담당 전무와 함께 ‘인구대역전(The Great Demographic Reversal)’이라는 책을 내고 앞으로 연 5~10%까지 물가 상승률이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두 사람이 고물가와 고금리 시대가 올 수밖에 없다고 본 이유는 선진국뿐만 아니라 중국도 급격한 고령화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풍부한 노동력을 갖고 값싸게 제품을 생산해 세계 시장에 판매하던 중국 덕분에 인플레이션이 낮게 유지되었는데, 이 인구배당이 끝났다는 것이다.

굿하트 교수는 “중국과 같은 수준의 대규모 노동력을 찾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또 그는 “중국은 전혀 고령화 사회의 대비가 돼 있지 않은 상황이라 고령화의 충격을 극단적으로 받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다음은 굿하트 명예교수와의 일문일답.



코로나19가 종식 국면을 맞이한 2021년 말 이후 물가가 급등한 구조적인 원인을 설명해달라.

“생산가능인구(working age population)의 노동시장 참여율이 급격히 떨어졌기 때문이다. 많은 나라가 사상 최저 수준의 실업률과, 최고 수준의 결원 수준을 경험하고 있다. 그 결과 임금이 대폭 오르고, 인플레이션 압력이 강해졌다.

크게 세 가지 경로가 있다. 먼저 코로나19로 많은 사람이 집에서 일했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예전의 통근자 생활로 돌아오지 않고 은퇴하거나 파트타임 일자리를 잡았다. 특히 60~65세 고령 인구의 경우 빠른 은퇴를 결정한 경우가 많다.

두 번째는 코로나19가 건강에 장기간 악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이른바 ‘롱 코비드’다. 건강 악화로 상당수 근로자가 예전의 전일제(full time) 일자리로 돌아오지 않았다.

세 번째는 이민자의 감소다. 이민자 유입이 뚝 끊기면서 이전과 같은 수준의 경제활동인구를 확보하지 못하게 됐다. 영국의 경우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이후 유럽으로부터 인구 유입이 큰 폭으로 감소했다.”



이전부터 공급 측면의 장기적 구조 변화가 인플레이션을 촉발했다는 주장을 해왔다.

“1990년대부터 코로나19 이전까지 세계 경제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인구배당’이다.

중국, 동유럽 등 신흥국 경제가 세계화의 물결 속에 산업화의 길에 들어서면서 그 나라의 풍부한 노동력이 장기적인 저물가 국면을 조성했다. 또 높은 저축률도 금리 수준을 끌어내렸다.

하지만 중국의 역사적인 동원이 끝났다. 이제 전 세계적인 고령화 추세 속에서 인플레이션이 구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게 됐다.”





찰스 굿하트 런던정치경제대학(LSE) 명예교수는 중국의 생산가능인구가 줄면서 전세계적인 수준의 인구배당이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생각의힘 제공




이전의 저금리와 낮은 인플레이션의 조합은 기대할 수 없게 됐다는 말인가.

“일반적인 기준 금리는 3~4% 정도, 인플레이션율은 연 2~3% 정도가 될 것으로 본다.

노동력 부족 현상이 노동자의 협상력을 높여 임금발(發)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중앙은행은 이에 대응해 인플레이션율을 (전통적인 목표치인) 연 2% 전후로 유지하기 위해서 긴축적인 통화정책을 펼 것이다.

결국 고물가-고실업이 향후 몇십 년 동안(a few decades) 계속될 것이라 본다. 이 전망은 인구구조 변화, 그리고 고령화가 경제 구조에 미치는 영향에서 기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꽤 예측력이 높다고 생각한다.”




각국 중앙은행들의 금리 인상은 어느 정도까지 계속될 것으로 예상하는가.

“명확히 답을 드릴 사안은 아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기준금리가 노동 시장 상황을 바꿀 수 있을 때까지 오를 것이라는 것이다.

노동시장 여건이 바뀌기 위해서는 먼저 소득, 산출, 자산 가격, 주택 시장 등에 영향을 주어야 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나 미국 정치 상황 등 여러 가지 변수가 있지만, 미국의 경우 연 5% 초반대까지는 올라갈 가능성이 크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영국도 비슷한 수준까지 올릴 것이다.”



임금이 전반적으로 상승한다면 소득 분배 상황은 개선될 것으로 보나.

“국가 내 불평등은 완화될 것이다. 미숙련 노동자의 임금이 큰 폭으로 오를 것이고, 이자율 상승으로 주식이나 채권 등 자산 가격은 하락할 것이기 때문이다. 임금이 강한 상방 압력을 받는 것도 자산 가격을 억제하는 요인이다.

자산 가격이 오랫동안 현재 수준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놀랍지는 않다. 1990년대 일본이 경험한 자산 가격 변동과 아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본다.

국가 간 불평등, 즉 선진국과 신흥국의 격차는 확대될 것이다. 아프리카 등 신흥국이 중국의 뒤를 쫓아 산업화 경로를 밟기 어렵고, 저발전이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반면 선진국은 이전보다 낮긴 하지만 성장이 유지된다.”



중앙은행이 노동 시장의 구조 변화에 대해서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게 대응 능력을 떨어뜨린다는 건가.

“코로나19 종식 국면에서 노동공급이 예전 수준으로 급격히 회복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제롬 파웰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지난 2021년 8월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열린 콘퍼런스에서 같은 해 코로나19가 종식 국면을 맞으면서 노동시장 참여가 급격히 늘어날 것으로 봤다. 영국은행도 같은 해 여름 비슷한 예상을 내놨다.

하지만 노동 공급이 예상보다 훨씬 빡빡하다는 게 드러났다. 중앙은행이 이를 깨달은 건 2021년 말~2022년 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전에 인플레이션이 예상보다 훨씬 강력하고 지속적이라는 게 드러났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대응이 상당히 늦어지게 된 셈이다.”




단순히 고령 인구가 늘어나는 게 문제가 아니라, 고령 인구가 사회에 미치는 부담이 늘어나기 때문이라는 게 핵심 논리다.

“고령화의 진짜 문제는 치매, 파킨슨병, 관절염, 복합만성질환을 앓는 사람들이 증가하면서 그들에 대한 간병 수요가 폭발한다는 것이다. 간병은 기계로 대체할 수 없고, 사람이 직접 해야 한다.

일본의 경우 전체 노동력의 20%가 간병 관련 일을 한다. 다른 나라들도 가뜩이나 부족한 노동력을 간병에 투입해야 할 것이다.

이로 인한 재정 부담 폭증은 필연적이다. 민간 소비도 간병 관련 지출 비중이 커진다. 그리고 그로 인해 공공재정이 져야 하는 부담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미국, 영국의 의회예산처(CBO)는 고령화로 인한 의료비 부담 폭증을 예상하고 있다. 민간 소비도 점차 간병 관련 지출이 증가할 것이다.”  



찰스 굿하트 런던정치경제대학(LSE) 명예교수는 고령화로 인해 치매 등 간병 노동이 오랫동안 요구되는 신경질환이 늘어났다고 지적했다. /생각의힘 제공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이끄는 핵심 요인으로 중국의 고령화 문제를 꼽았다.

“고령화 문제가 극단적으로 벌어질 가능성이 있는 곳은 중국이다. 향후 중국 경제가 직면할 가장 큰 문제가 될 것이다. 아직도 중국의 은퇴 연령이 여성은 50세, 남성은 60세다. 또 한 자녀 정책을 언제까지 유지해야 하는 지도 문제가 될 것이다.

중국 안팎의 여러 전문가는 고령화 문제에 시급히 나서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런데 지난 10월 제20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이 중국 경제에 대한 전망과 계획을 발표할 때 인구와 고령화 문제에 대해서 거의 언급하지 않더라. 매우 놀랐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인구구조가 국가별로 다르다. 또 아직 산업화가 이뤄지지 않은 지역도 많다.

“나라마다 고령화 정도가 다르다. 하지만 미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단일 경제의 영향은 동일하게 받는다.

일본은 초저금리를 고수하면서 엔화 가치가 급격히 하락했는데, 결국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였다. 4월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 임기가 끝나고 후임자가 부임할 때 통화정책 방향이 바뀌어야 하는 수준까지 인플레이션이 높아져도 놀랍지 않을 것이다. (일본 중앙은행은 지난해 연말 금융완화 정책을 수정하며 사실상 10여년간 지속해온 초저금리 정책에 마침표를 찍었다.)

풍부한 생산가능인구가 있으면서, 빠르게 산업화가 가능한 지역은 없다. 가령 아프리카의 경우 50개 나라가 있고, 언어가 다른 많은 민족이 있어 중국 수준의 대규모 산업화가 어렵다. 정치적 안정성도 낮고 교육 수준도 중국보다 떨어진다.”



중앙정부는 고령화로 인한 재정지출 급증에 대응할 수 있는가.

“재정수지 압박을 받는 각국 정부의 선택지는 두 개다. 먼저 고령자에 대한 지출을 줄이는 것이다. (이 부분은 현실적으로 고려 대상이 아니다.)

두 번째는 젊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그런데 젊은 사람들은 당연하게도 세금을 더 내길 원치 않을 것이고, 세금이 올라간 만큼 생활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임금도 올려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 이것이 인플레이션을 촉발하는 또 다른 요인이 될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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