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아버지의 성폭력 및 가정폭력 (동영상 풀버전 재업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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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청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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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올해 30세, 만으로 29세의 여성입니다.

친아버지의 행태를 고발하기 위해 글을 씁니다.

저와 저의 언니는 어떤 커뮤니티도 하지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게끔 대형 커뮤니티 어디든 닿는 대로 글을 써 세상 널리 이 얘기를 알리려고 합니다.


제가 6살이 되고 부모님은 이혼하셨고, 그 때부터 10살까지 조부모님과 함께 5명의 가족이 같이 살았습니다. 그러나 새로 만나는 여성분과의 관계를 반대하는 할아버지와 아빠의 다툼으로 저와 4살 차이 저의 언니 그리고 저희 아빠는 인천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내용이 자극적이니 읽다가 불편하신 분들은 안 보셔도 좋습니다.


2002년 그해 월드컵이 끝나고 날이 선선해지던 가을 무렵부터 아빠의 성폭력이 시작되었습니다. 여느 부녀처럼 저는 아빠의 팔을 베고 누워 TV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 때 저의 음부를 만지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가슴을 만지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언니가 주말에 약속이 있어서 나가 있거나 아빠랑 단둘이 있는 상황에서 발생되었습니다. 제가 옆에 있지 않아도 '이리 와 아빠 옆에 누워' 하며 부르곤 했습니다. 

나중에는 손가락을 집어 넣기도 하는 등 정도가 심해졌습니다.

처음에는 어린나이이기도 하고 잘몰라서 이상해도 말을 못했지만 결국 몇 차례의 상황이 지나가고 '아빠 이거 왜 하는거야?' 라고 물었고 아빠는 그저 이뻐서 그런거라며 어린 저를 종용했습니다.


그렇게 3년간 성폭력이 진행되던 중 언니가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중학교 은사님을 뵈러 갔던 때였습니다. 아빠와의 약속한 통금시간을 넘겨도 되겠느냐 언니가 물었고 아빠는 그 말을 듣고 너 집에 들어오면 죽이겠다 말했습니다. 두려움에 언니는 집에 들어오지 못했고 그 길로 고모나 조부모님 등가족들에게 성폭력과 가정폭력이 알려지게 됐습니다. 그때 통화하던 아빠의 발언을 잊지 못합니다.


'그래서 뭐 임신이라도 했대?'


그 후로 언니는 청소년 쉼터로 가서 살게 되었고 저와 아빠 둘이 살게 되었습니다. 약 3,4개월 정도는 저를 건드리지 않던 아빠는 제가 잘 때 안방 문을 열고 나와 몰래 제 옆에 누웠습니다. 그리고 또 같은 행위를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사춘기에 접어 들었고 나름의 거부 의사표시를 했습니다. 잠꼬대인 척 몸을 뒤척이고 짜증을 내는 것이요. 그 행위가 제가 20살 봄까지 지속되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제가 폭발해 조부모님께 알린 것을 끝으로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10살 때부터 20살까지 10년간 수백 차례의 성폭력이 있었습니다. 언니는 중간에 쉼터에 가게되서 기간은 좀더 짧았으나 저보다 더 정도를 지나친 성폭력을 경험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항상 저희 자매에게 훈육이라는 명목하에 폭력을 저질러 왔습니다. 세탁기 위의 선반에 쇠막대를 뽑아 아무 곳이나 휘갈겼습니다. 깍지 껴 모은 두 손으로 엎드려뻗쳐를 하고 엉덩이가 피멍이 들어 부르틀 때까지 맞았습니다. 그나마 어리고 엎드린 자세를 잘 버텨낸 저는 덜 맞아도 엎드려 쓰러져있던 언니는 정말 쉴새없이 맞은 것 같습니다. 항상 아빠는 '잘못 맞으면 다리 부러진다 똑바로 대'라며 저희를 때렸죠. 언니가 맞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그 와중에도 살겠다며 이를 꽉 깨물고 손이 아려와도 자세를 버티려고 이를 꽉 깨물었습니다. 언니는 나이가 먹으면 먹을수록 저를 대신해 맞겠다고 자처까지 했었고요.


12살 때 한번은 4시까지 들어오려던 제가 10분정도 늦었을 때 였습니다. 저는 버스비가 아까워 20분거리를 10분만에 뛰어왔습니다. 얼굴이 빨갛고 숨을 몰아쉬는 저를 보고 술을 마시던 아빠는 제가 술을 마셨다고 의심했고 눈빛이 변했습니다. 그러한 상황을 모르던 언니는 설거지를 하다 말고 '에이 아빠 쟤가 몇살인데 술을 마신다고 그러세요' 라고 웃으며 말했고 그 말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간 아빠는 언니의 뺨을 쳤고 안경 벗으라는 말과 동시에 언니가 무차별적으로 맞기 시작했습니다. 명치를 맞아 쓰러진 언니의 등짝 위로 프라이팬을 내려쳤고 구부러진 프라이팬을 뒤로하고 내리친 두 개의 우산이 부러졌습니다. 저는 맞는 언니를 보며 미안해서 제가 잘못한거라고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악을 쓰며 울었고 저에게 다가온 아빠는 제 어깨를 세 차례 밟고 언니에게 돌아갔습니다. 그 잠깐 저는 기절했었구요.


또,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저와 아빠 둘이 살 때의 일입니다. 친구와 여름방학 내내 도서관에서 공부를 할 때라 새벽 6시부터 김밥을 한 줄씩 직접 싸갖고 다녔습니다. 그날도 김밥을 싸고 있는데 참기름을 김밥 겉에 바르는 방법을 아빠가 아껴 쓸 줄 모른다고 꼬투리 잡았고 제가 알아서 하겠다고 아빠한테 짜증을 냈습니다. 아빠는 그거에 화가나 근처에 있던 칼을 저에게 들이대며 '아유 이걸 진짜 죽여버릴까 보다' 했고 그 행동에 충격을 받은 저는 '아빠 나 죽이고 싶어? 그럼 죽여'라고 했고 그와 동시에 또 무차별적인 폭행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날도 우산이 부러졌고 머리를 잡혀 들어간 화장실에서 쉴 새 없이 밟혔습니다. 살려달라고 소리를 지르자 '여기에 너 도와줄 사람 없어 입 안 다물면 진짜 죽여버릴 줄 알아' 라고 말하는 아빠의 말에 공포감을 느끼고 찍소리도 못하고 맞았습니다. 


이건 정말 빙산의 일각입니다.

제일 기억에 남아서 쓴 글들이고 길거리에서도 무자비하게 머리채를 잡히고 뺨을 맞고, 집에는 여자애들 둘이 사는데 머리카락이 많다고 머리카락 갯수당 한 개씩 맞고, 집 청소를 깨끗이 안 했다고 가구에 쌓인 먼지를 쓸어 먹으라고 강요하였습니다. 

신체적으로 다 성장한 고등학생 때 벌거벗겨 내쫓긴 경험이 저와 언니 둘 다 있으며, 맨발로 친구네 집에 도망을 가기도하고 한동안 집에서 쫓겨나 다른 친구네 집에서 살기도 했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 10년 만에 연락이 닿아 왕래하고 지냈던 엄마 집으로 도망을 가 거기서도 잠깐 학교를 다녔구요.


그치만 이렇게 디테일한 내용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시간을 끌고와 저는 30살이 되었습니다.


아빠에게 이 부분에 대해 사과하라고 했으나 사과하면 뭐가 달라지냐 니 하고 싶은대로 해라 내가 잘못한 거 있으면 알아서 감방가든 하겠다는 말과 니가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냐는 식의 태도에 모든 조치를 다 취하겠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지금 경찰서에서 알아본 바로는 공소시효가 애매해서 처벌이 어려울 것 같으니 조금더 알아보자는 말을 듣고 왔습니다. 제가 늦었다라는 생각에 조금 멈칫했습니다.

허나 법적으로는 민사도 있고 저는 아쉽지 않습니다.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될 인물이 잘 먹고 잘살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아빠는 현재 소방 감리를 하고 있습니다. 1965년생입니가. 현재 고양시에 거주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차종은 폭스바겐 티구안일 것입니다. 현재 심장질환도 있습니다. 외모는 과거에는 신창원을 닮았습니다. 저희가 맞는 걸 알면서도 도와주지 않았던 재혼한 여성 분도 아빠와 같이 같은회사에서 감리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법의 심판을 받게 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한다해도 뭐든 하겠습니다. 제가 죽을 수는 없으니까요.


두서없이 장황한 긴 글 시간내서 읽어주신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모든 내용에 한치에 거짓도 없음을 맹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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