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끝난, 첫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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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거그려서20년살아남았습니다


<코로나가 끝난, 첫여름이었다> 


“이제 코로나 이전의 시대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정말로 이렇게 오래갈 줄 몰랐습니다. 

코로나가 시작된 후 전문가가 티브이에서 하는 말을 듣고도 

믿지 않았어요. 

예전 사스나 메르스처럼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습니다. 

우리나라는 괜찮겠지 했어요. 

과학은 위대했습니다. 

모든 게 과학자들, 전문가들의 말대로 흘러갔습니다. 

코로나는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 

2년 동안 우리의 일상도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외출을 거의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보라요정님과 저는 2014년부터 매해 시작과 끝을  

제주에 내려가서 보내고 어떤 해는 세번을 내려가기도 했습니다.

제주 한 달 살기까지 했었는데 

코로나 시작과 함께 저희의 제주여행도 멈추었습니다. 

자주 가던 극장체인에 10년 동안 vip였기 때문에 멤버십 등급도 최고 높은 등급이었지만 코로나 시대 이후한 번도 극장에 가지 못했습니다. 

뮤지컬, 콘서트, 즐기던 모든 것이 멈추었습니다. 

매일 카페에 가던 것도, 맛집에 가던 일도 거의 못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마스크를 쓰고 

여러 명이 모여 신나게 떠들던 시간도 멈추었습니다. 

친구들의 모임도,  

가족들 모임도 모든 게 멈추었습니다. 

‘조금 유난 아니야’ 하실 수 있지만 

제가 면역계통의 질환을 가지고 있으니 더 조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 

언젠가 역류성 식도염 증상이 생긴 적이 있었습니다 

(아 걸어 다니는 병원이여! 뭐여!! -_-;;) 

매일같이 커피를 마시는 게 인생의 큰 즐거움인데 

증상이 좋아질 때까지 커피를 끊어야 했습니다. 

아아아 커피 겨우 하루에 한 잔, 많아야 두 잔인데! 

그걸 끊으라니. 

의사 선생님이 그러라고 하니 한동안 커피를 꾹 참고 약을 잘 먹어서  

많이  괜찮아졌습니다 

거의 한 달 이상을 커피를 못 마시다 이제 드디어 마셔도 된다는 얘기를 듣고  

카페를 가는데, 정말 가는 발걸음 자체가 다르더라고요. 

(마치 만화에 나오는 신나는 그 발걸음 동작)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자 커피 볶은 향이 확 들어오는데 

예전에 매일 오던 카페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한 달 만에 후각이 미친 듯이 발달한 게 아닐 테니 그냥 다 놀라웠어요. 

“오랜만에 오셨네요?”

바리스타님의 인사도, 다 아는 매뉴들인데 커피를 주문하는 것조차 신이났습니다.커피를 손에 감싸 쥐고 한모금 한 모금 마시는 데 너무 좋아서 속으로  

‘커피야 줄어들지 마! -0-‘ 

말하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네. 거의 매일 오던 카페였고 

매일 마시던 커피였어요. 

다만 달라진 것은 한 달 동안 오지 못했던 것, 

자의가 아닌 타의로. 

그냥 일상이었는데, 한달만 사라져도.

—— 

저는 긴 시간, 일상이 사라지는 경험이 두 번째입니다. 

아토피 부작용이 가장 심해서 밖에 못 나가던 2년, 

(중간중간 짧게 짧게 일상이 멈추는 경험을 계속했지만  

그래도 가장 크게, 가장 길게 각인되었던 것은 그때여서) 

코로나로 인해 일상이 사라진 2년, 

첫 번째 경험은 순전히 혼자만의 경험이고 

두 번째 경험은 저만이 겪는 일은 아니지만 

두 가지가 비슷한 게 있습니다. 

사람이 고립되는 것. 

사라졌던 것이 돌아오면  

그것을 대하는 감정이 두 배, 세 배가 증폭됩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느끼게 되겠죠. 

저는 20년이 지났지만  

2년 만에 다시 처음으로 탄 지하철의 그 먼지냄새도, 

버스창가로 스며들어오던 그 따스한 햇살의 느낌도 기억납니다. 

명동 길거리에 앉아 한 시간이 넘도록 지나가는 사람들 얼굴만 봐도  

좋았던 기억, 다시 찾아간 극장, 아무렇지도 않은 한강공원, 바다, 사람들 

그 모든 것이 기억나요. 

그때의 기억들이 20년을 그리며 살아내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코로나 이후의 우리의 삶은 이전보다 더 힘들겠지만 

우리가 느끼는 행복의 횟수는 오히려 더 늘어날지 모릅니다. 

예전보다 더 작은 일에도, 

예전보다 더 작은 것에도, 

더 큰 만족을, 더 큰 행복을 느끼게 될지 모릅니다. 

코로나 이후의 바다 

코로나 이후의 커피 

코로나 이후의 사람

코로나 이후의 일상

2년의 시간을 빠르게 잊지만 않으면 

어쩌면 우리는 더 좋아질지 몰라요. 

—— 

한때 트윗에서 모든글의 끝에

‘..여름이었다’를 넣으면 아련아련해진다고 장난처럼 돌던때가 있었습니다.

코로나 우세종이 오미크론으로 바뀐 뒤 

이제 조심스럽게 코로나의 끝을 얘기하는 학자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올여름에는, 

이런 말을 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코로나가 끝난, 첫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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