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형의 알라딘 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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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람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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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 형의 알라딘 신발  >

 

알라딘 신발이라는 게 있었습니다.

아니 그렇게 부르던 신발이 있었어요.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좀 논다는(?) 친구들이 신던,

가죽으로 된 신발인데

알라딘 만화에 나오는 신발처럼

앞코가 구부러져있고 뾰족한 신발입니다.


그리고

우리집에도 알라딘 신발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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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현관앞에 벗어놓은 큰 형의 운동화를 보았는데

뭔가 이상해보였습니다.

운동화의 앞 코가

살짝 구부러져 있는 거예요.


‘원래 저랬었나?’


그냥 구겨진 것일수도 있고..

아무튼 그날 본 형의 운동화는

앞코가 살짝 올라가 있었어요.

한참이 지나고 나서

형의 운동화는 눈에 띌 정도로

정말 앞 코가 위로 확 구부러져 올라가 있었습니다.

저번보다 훨씬 심하게 말입니다.

얼마나 구부러져 올라갔는지

학교에서 애들이

‘알라딘 신발’이라고 부르는 것 만큼,

아니 그것보다 더 심하게 

구부러져 올라가 있었어요.

이상하다 생각했지만

그 이유를 몰랐습니다.

그저 이상하다고만,

오래 신어서 그런가보다 했습니다.

어쨌든 이상하긴 했으니

제 기억에 저장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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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전에 보니까 형 신발이 구부러져 있던데

그거 왜 그런거야?”


“그거?…”


시간이 더 지나고

형의 신발이 그렇게 된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큰 형은 그때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습니다.

주유소 건물 바닥에는 기름 탱크가 있는데

찌는듯한 여름의 뜨거운 햇볕으로 달궈져서

지면위까지 올라온 열기가

저렇게 신발을 구부러뜨리는 거였죠.

이유를 알고나니 뭔가 말하기 힘든

뜨거운 것이 가슴을 살짝 누르는 것 같았습니다.


어렸을 적 집안의 경제사정은 늘 어려웠고

형님들은 많은 것을 희생했습니다.

큰 형님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벌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외국까지 나가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말레이시아의 오지에서

큰 공사를 하는 일이었는데

또래도 없고 형이 제일 젊은 사람이었다고..

그곳에서 몇 년간 일하며 번 돈을 집으로 보내준 덕분에

먹고 살 수 있었습니다.

그때가 아마도 제 기억속에서

집안의 경제사정이 작게나마 처음으로

기지개를 펴보았던 시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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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집은 삼형제고 제가 막내입니다.

꼭 막내라서 그런 것은 아니고

예전부터 워낙 골골대니

언제나 저는 열외였습니다.

몸을 쓰는 일도

마음을 쓰는 일도

저는 항상 형님들에게 빚을 지며 살았던 것 같아요.

아버지가 돌아가셨을때도

저는 병원도, 장례식장도 가지 못했습니다.

그때가 제 평생에 가장 안좋았던 시기라

어디 한발자욱도 나갈수 없었거든요.

몸이 아픈것도 아픈것이지만

뭔가 사람의 도리를 못한다는 것,

자식으로서, 가족의 일원으로서

구실을 못한다는 게 더 아프고 힘들었습니다.


“형들이 있으니까 너는 걱정하지 말고 집에 그냥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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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종종 힘든일이 있을때

그때봤던 큰 형의 운동화가 생각납니다.

앞뒤가 말려올라간 운동화.


‘나는….

아는 사람 하나 없고 또래도 없는

밀림의 오지에서 일하며

버는 돈의 거의 전부를 집에 보내줄 수 있었을까?

나는 그럴수 있을까?’


내가 받은 수많은 것들,

셀수 없는 혜택들, 열외의 기억들….


‘내 운동화는 한번도 말려올라갈만큼

뜨거운 곳에서 고생한 적이 없네’


생각이 거기 닿고 나면

제가 겪고 있는 힘든 일은

어느새 다시 서랍속에 넣어둘만큼 작아집니다.


서랍을 닫고

다시 그림을 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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