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학비리의 최고봉 레전드인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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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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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엽의 선인재단으로 아마 여기를 능가할 만한 사학비리를 저지른 데가 있으면 한국 교육은 망한 것이라고 봐도 됩니다.

이 앞에서는 서남대학교같은 곳은 귀여운 수준이죠.

지금도 인천 사람들이라면 늦어도 90년대 중반 태생이면 이런 레전드급 이야기를 전부는 아니라도 어느정도는 다 안다 해도 무방합니다.


1. 선인재단 소속 학원이 모여있던 도화동은 원래 화교들이 모여살고 있던 차이나타운이자 묘지촌인데 강제로 쫒아냈습니다. 그리고 그 마을과 무덤 위에 학교들을 세웠죠.

2. 학교 건물을 겉은 그럴싸하지만 속은 초저가로 지어서 화장실이나 급식실 하나 없었습니다. 거기에 건물 마감이 부실해서 시멘트 분진과 먼지가 올라와서 수많은 학생들이 폐병과 방광염에 걸렸습니다. 

3. 학교 선생들은 뇌물이나 낙하산으로 들여왔습니다. 학생주임이자 수학교사던 선생이 학생이 물어보는 수학의 정석 예제 문제 하나를 한시간 내내 끙끙 풀다가 수업 종 울리자 나가버린 전설도 있죠.

4. 백인엽이 군인 출신이다보니 학교에도 군기가 엄격하고 폭력과 구타가 일상입니다. 선인고등학교만 해도 교사가 군복 입고 교문에서 학생을 맞이하고 선생님에게 하는 인사가 거수경례하면서 선! 인! 하고 외쳤었죠.

5. 학교 운영이 이 모양이라서 학생들도 인천 지역 최악의 질을 자랑했는데, 인문계고 실업계고 남고고 여고고 할 것 없이 막장학생만 몰려들었고 당연히 학교폭력도 심각했습니다.

6. 특히 도봉산이라고 불리는 3대 공고(향도, 운봉, 운산)는 한국의 스즈란, 소말리아, 해골 3개급이던 개막장으로 그 악명은 지금도 화자되고 있을 지경입니다.

7. 특히 운봉공고의 경우 일진들이 주변 학교 삥뜯고 인천대학교까지 처들어가서 현피를 떴다는 전설 아닌 전설도 있습니다. 결과는 예비군까지 갔던 인천대학교의 전략전술에 말린 운봉고 패배. 왜 현피 떴는지는 클리앙에 쳐 보세요.

8. 이 재단에서 제정신인 선생님들은 전교조에 가입해서 이사장과 교장 교감과 맞서 싸우다보니, 교사의 전교조 가입비율이 이례적으로 높았다고 합니다. 

9. 선화여중의 경우 1980년대 중반 전두환 정권 시절에 도덕 과목 문제로 '위대하신 우리 선인학원의 설립자와 이사장님은 누구인가?'라고 문제를 물어봤습니다. 북한이냐.

10. 14개나 되는 소속 학교가 운동장을 공유해서 체육수업과 각종 행사 등은 각 학교간 조정과 협상으로 헬게이트였다고 합니다. 당연히 학생들은 맘놓고 뛰놀 수도 없었다고 합니다.

11. 무려 인천전문대 학생들도 교복을 착용하고 아침 정시 등교 및 두발 단속을 받았다고 합니다. 

12. 학교 건물 건설과 제초작업, 환경미화 작업에 학생들을 동원했습니다. 학교 다니려고 나왔지 노가다 뛰러 나왔나...

13. 속칭 도봉산은 13층 건물인데 엘리베이터 하나 없어서 학생이고 선생이고 모두 13층까지 올라가야 했습니다.

14. 1993학년도 학력고사 당시 선인고등학교 3학년 전체 600명 중(문이과 모두 합쳐) 100명이 원광대학교에 몰빵 지원을 했는데, 그 중에서 11명만 붙고 나머지들은 다 탈락해서 망신을 당했습니다.

15. 인천대학교 학생들은 운동권과 관계없이 순수하게 대학 시설의 부실함과 사학비리에 분노해서 자발적으로 시위에 나섰다고 합니다. 그것도 1985년에 말이죠. 보통 그 당시 시위는 운동권의 주도가 많은데 드문 일.

16. 이승만과 박정희를 물고 빨고, 백선엽을 원수로 추대하다고 하던 그 꼴통인 주간조선조차도 선인재단 비리를 실드 못 치고 오히려 까는 지경입니다.

17. 백인엽은 주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이 나라는 대통령만 바꾸면 정의사회를 구현하겠다면서 언재나 나를 잡아간다."며 푸념한 바가 있습니다. 보수고 진보고 할 것 없이 못 참을 정도란 거죠.

18. 결국 인천시와 정부가 1994년 선인재단의 학교들을 국유화시키고 되살려 보려고 노력하면서 겨우 살아납니다. 인천대와 선인고는 특히 국립화되면서 단번에 수준이 올라가버렸죠.

19. 백인엽은 이승만 정권 때 각종 착복과 비리, 똥군기, 즉결처분을 일삼아 부하였던 박정희(!)에게 하극상도 당한 바 있습니다. 

20. 박정희에게 찍히고도 살아남은 건 바로 형 백선엽 덕이라나… 형 아니었으면 곽영주처럼 목이 달아났을 겁니다. 


참고로 저 백인엽이란 사람도 여러가지로 전무후무한 인물로, 이승만~박정희 시절에 그야말로 안하무인 무소불위로 군림했죠.

그래서 이런 상식밖의 행동이 가능했어요.

불쌍한 건 인천 사람들인게, 저 인간 때문에 인천은 양아치 돌대가리 이미지가 박혔고 인천이 유독 규모나 역사에 비해 명문학교의 수가 적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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