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이름, 젓가락 무식판독기 논쟁때마다 드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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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건 비난을 위한 글이 아니라 왜 이런것에 꼰대, 무식 논쟁이 매번 벌어지는지에 대한 건조한 감상임을 밝힌다.
'한자이름을 쓸 수 있느냐, 젓가락질을 제대로 하느냐'로 사람을 판단하는건 꼰대질이다, 그게 살아가는데 무슨 상관이냐 하는 뉘앙스의 댓글이 생각보다 많던데 솔직히 놀랐다.
이는 인식의 문제일수도 있지만 보다 본질적으로는 도시화와 계층의 문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한자로 된 자기 이름을 쓸 줄 모르는게 무슨 상관이냐, 젓가락질 못하면 밥 못먹냐 분노하는 사람들의 대체적인 의식을 살펴보면
생존에 도움이 되느냐 되지 않느냐에 따른 가치판단을 한다.
쉽게 말해 살아남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에 관심가지는 걸 불필요하다 여기는건데
인생의 우선순위가 생존인 계층과 자아실현인 계층의 가치충돌에서 비롯된다는 얘기다.
전형적인 매슬로의 욕구단계설의한 계층 대립이다.
당장 입에 풀칠하기 바쁜 사람과 생존에 대한 강박을 벗어나 자기의 존재 이유를 찾는 사람과의 대립.
어떤 위치에서 살고 있는가, 어떤 상승욕구를 타고났는가의 계층적 분리고 이 둘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
20세기 이전의 사회라면 이 둘은 영원히 분리되어 이해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도 없었겠지만
오늘날은 이 두계층이 좁디좁은 도시에 모여 서로를 지켜볼 수 있는 시대에서 살고 있다.
인터넷의 발달과 저렴한 대중 문화의 보급으로 이 문화적, 계층적 용광로는 지난 어느 세대보다 뜨겁고 이런 가치관에 대한 논의가 발발하는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인간이 생존에 대한 욕구를 극복했을때 대체적으로 '내 존재 의의'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자아 실현을 하기 위해서는 세계에 대한 이해가 필수불가결이다.
예를 들면 내 세계의 언어를 이해하는 것,
내 세계의 정치, 문화, 경제 체계를 이해하는 것,
궁극적으로 내가 체계화한 세계를 주변 사람과 공유하고 협업하여 발전시키는 것 등이다.
참고로 한국어는 한자가 80%인 언어다.
상위욕구를 지향하는 사람에게는 한자로 된 내 이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는 것은 자기집 주소를 외우는 것과 같다.
식사 예절 또한 마찬가지이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이뤄지는 대부분의 중요한 결정은 식사나 티타임 같은 커뮤니케이션의 윤활류 속에 이뤄진다.
양식, 중식, 일식별 기본적인 식사 예절정도는 서로 대화하기 위한 기본적인 소양이 되는 것이다.
젓가락질 바르게 하는 정도는 성인이 바지에 똥을 지리지 않는 정도의 아주 기초적인 부분에 가깝다.
한마디로 자아실현의 상위 욕구를 지닌 사람들에게 '그런 것들이 사는데 무슨 도움이 되냐'라는 소리는
자기 집 주소도 모르고 바지에 똥을 지려도 사는데 문제 없다는 인간의 투정 정도로 이해되는 것이다.
선진국들이 정의하는 중산층 내지 지성인의 기준에는 세계를 인식하려는 노력과 자아성찰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우리가 자기집 주소도 모르고 바지에 똥지리는 인간을 혐오하듯이 상위욕구를 가진 인간은 생존이 최우선 순위인 인간을 경멸한다.
벼락부자가 된 졸부들이 사회적 매너를 익히는데 학원까지 다니며 지랄을 떠는 것은 괜한 이유가 아니다.
선악과 별개로 있는 사람들의 그룹에 낄 수 없기 때문이다.
지갑이 가난한건 큰 문제가 안되지만 생각이 가난하면 입장 불가다.
현실적으로 인간으로 사는 이상 타인의 평가는 거절한다고 거절할 수 있는게 아니다.
당신이 누군가를 내게 이익이 되는 인간, 되지 않는 인간으로 분별하고 무의식적으로 점수를 매기듯 누군가는 우리를 그렇게 평가한다.
혐오당하는 사람들은 이에 대한 방어기제로 '꼰대'라는 카드를 드는 것 같은데
사실 엄밀히 따지면 가르치려 드는 것도 아니고 그냥 인간 외 취급하며 상대를 안하는 것이니 혐오당하는 사람들의 분노가 방향을 잃고 메아리만 치는 꼴이다.
인터넷을 끊고 자기 계층만 바라보고 산다면 이런 불필요한 분노는 사라지겠지만 그럴리는 없으니 선택은 두가지다.
혐오를 인정하며 편하게 살던가 기본을 갖추고 자기 세계를 넓히려는 노력을 하던가.
이도 저도 아니면 정신 승리나 하며 고통받을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