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범도 장군의 절규'시 '왜놈' 단어가 혐오? 페이스북 심의 적절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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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코코샤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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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혐오발언 이유로 '왜놈' 표현 담긴 시 삭제
정치적 검열 논란 불거졌지만, 혐오표현 기계적 적용 문제 가능성 높아
작품의 특성과 맥락 고려하지 않는 심의 전부터 논란

[미디어오늘 금준경 기자]

그토록 그리던 내 조국강토가
언제부터 이토록 왜놈의 땅이 되었나
해방조국은 허울 뿐
어딜 가나 왜놈들로 넘쳐나네

이동순 시인의 '홍범도 장군의 절규' 시의 한 대목이다. 페이스북(메타)이 이 시가 '혐오표현'을 포함했다는 이유로 삭제해 논란이 됐다. '왜놈' 단어가 혐오표현이기에 삭제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페이스북은 전부터 예술 작품이나 맥락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서 기계적 잣대로 심의를 해 논란이 됐다.


'홍범도 장군의 절규'시 돌연 삭제

이동순 영남대 명예교수는 지난 1일 자작 시 '홍범도 장군의 절규'를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돌연 게시글이 삭제되고 계정이 '경고' 조치를 받아 논란이 됐다. 이 시는 홍범도 장군의 입장에서 육군사관학교 흉상 이전 시도를 비판하는 내용이다. 이동순 명예교수는 '민족의 장군 홍범도'의 저자이기도 하다.

▲ 홍범도 장군의 사진. 이인섭의 외손자인 세르게이 솔로보치코브(Sergey Slobodchikov)가 2016년 독립기념관에 기증한 것들 가운데 하나. 사진=홍범도기념사업회


이동순 명예교수에 따르면 페이스북은 안내 메시지를 통해 “정체성을 바탕으로 개인 또는 집단을 열등한 대상으로 묘사하면서 공격하는 콘텐츠를 공유하신 것 같다”며 “혐오발언에 관한 커뮤니티 규정을 위반한다”고 설명했다.

해당 시가 삭제되자 페이스북에선 해당 시를 공유하는 움직임이 운동처럼 번졌다. 게시글 삭제를 막기 위해 '왜놈'을 '왜.놈'으로 바꿔 올리는 식이다.


정치적 의도? 페이스북 “제재 대상 혐오발언”

게시글이 삭제되면서 누리꾼들을 중심으로 '페이스북의 정치적 대응'이라는 주장이 이어졌다. 특히 페이스북코리아(현 메타코리아) 부사장인 박대성씨가 국민의힘의 전신인 자유한국당 입당 전력이 있고, 최근까지 국민의힘 당 활동을 하고 있다는 주장과 함께 퍼졌다.

박대성씨가 자유한국당에 입당하고 비례위성정당 공천 신청을 하는 등 관련 경력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현재 페이스북코리아가 아닌 게임 업체 로블록스에서 아시아태평앙 공공정책 부문장을 맡고 있다. 확인 결과 박대성씨는 지난해 8월 로블록스에 영입됐다.

▲ 페이스북 모기업

해당 게시글 삭제 이유를 묻자 페이스북코리아측은 서면 답변을 통해 “해당 게시물은 혐오발언이 포함된 것으로 확인되어, 관련 정책에 따라 삭제 조치됐다”며 “혐오발언은 위협적이거나 배타적인 환경을 조성하고 때로는 오프라인상 폭력도 유발할 수 있기에 페이스북에서 허용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혐오발언의 정의에 관해 페이스북코리아측은 “저희 정책에서 혐오발언이란 인종, 민족, 국적, 종교, 성별, 장애 등 보호받아야 할 사람의 특성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으로 정의된다”며 “여기서 공격이란 폭력적이거나 비인격적 발언, 해로운 고정관념, 열등한 대상으로 묘사, 배제나 분리 주장 등을 말한다”고 했다.

'맥락' 고려 않는 기계적 심의 전부터 논란

페이스북은 해당 내용이 시라는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왜놈' 표현을 일제강점기의 맥락에서 해석하지도 않은 채 기계적으로 심의를 한 것이다.

통상 혐오표현은 '소수자를 대상으로 할 경우'를 전제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혐오표현의 정의로 “소수자에 대한 편견 또는 차별을 확산시키거나 조장하는 행위 또는 어떤 개인, 집단에 대해 그들이 소수자로서의 속성을 가졌다는 이유로 멸시, 모욕, 위협하거나 그들에 대한 차별, 적의, 폭력을 선동하는 표현”으로 규정하고 있다.

반면 페이스북은 소수자 여부는 구분하지 않고 대상을 일반화할 경우 혐오표현으로 본다. 페이스북은 2019년 기자들에게 혐오표현 심의 기준 관련 설명을 했는데 당시에도 '모호한 기준'이 논란이 됐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은 특정 국적을 비하하는 '쪽바리'와 한국 남성 전체를 지칭하는 '한남충'은 제재 대상인 혐오표현이라고 밝힌 반면 '김치녀'는 '특정 행태를 보이는 여성만을 지칭'한다며 제재 대상이 아니라고 밝혔다. 또한 '난 양성애자들이 정말 구역질 나'라는 표현은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표현 성격이 강하지만 페이스북은 '역겨움 또는 불쾌감이 담긴 표현'일뿐 혐오표현이 아니라고 했다. 이 기준은 당시 기자들 사이에서도 '이해가 안 된다',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페이스북이 예술 작품의 맥락도 고려하지 않는 점도 전부터 논란이 됐다. 2018년 페이스북은 출판사 인물과사상사가 명화를 통해 심리를 해설하는 책 '감정의 색깔' 홍보 과정에서 이미지에 포함한 앙리 마티스의 '삶의 기쁨'이 나체를 표현했다는 이유로 광고 불허 결정했다. 해당 작품은 사람의 기쁜 감정을 표현한 그림으로 사람들이 나체로 등장하지만 몸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아 선정적이라고 생각하기 힘들다.


▲ 앙리 마티스의 '삶의 기쁨'. 사진=인물과사상사 제공

페이스북은 “나체를 묘사한 광고는 성적인 내용이 아니더라도 허용되지 않는다. 예술이나 교육 목적으로 나체 이미지를 사용해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이와 관련 당시 인물과사상사는 미디어오늘에 “야수파의 창시자라는 앙리 마티스의 예술 작품에 무지의 소치라고 생각한다. 이미 세계적으로 검증된 작품을 '예술과 외설'의 명확한 기준도 없이 걸려낸 페이스북의 '단순한 알고리즘'의 비극”이라고 비판했다.

페이스북은 2016년 베트남 전쟁 때 미군의 공습을 피해 알몸으로 울부짖으면 달리는 소녀가 나온 보도사진 '네이팜탄 소녀'가 어린이 노출사진이라며 삭제한 후 논란이 되자 복구한 일도 있다. 2011년 페이스북은 프랑스 화가 구스타브 쿠르베의 작품 '세상의 기원'이 나체라는 이유로 삭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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