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약값 대신 팔려간 일본인 노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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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략 1400년대부터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인을 노예로 해외에 팔아넘기는 일을 금지한 1587년 6월 18일까지 무려 50만 명의 일본인들이 노예가 되어 해외 각 지역으로 팔려나갔습니다. 

 

  왜 일본의 봉건 영주들은 같은 민족인 일본인을 낮선 외국인들한테 노예로 팔았을까요? 여기에는 일본 전역이 수많은 지역 영주들끼리의 전쟁으로 몸살을 앓았던 전국시대의 상황이 작용했습니다.  

 

  전국시대 무렵의 일본 지방 영주들은 포르투갈인들이 전해준 새로운 무기인 조총의 위력에 감탄하여 앞다투어 조총을 사들이려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조총은 화약이 없으면 사용할 수가 없는 무기였습니다. 

 

  그런데 포르투갈 상인들이 일본 영주들한테 “일본인 노예를 우리한테 넘겨주면, 그 대가로 우리가 화약을 당신들한테 주겠다.”라고 제안하자 일본의 영주들은 손쉽게 중요한 전략 물자인 화약을 얻을 수 있겠다고 여겨서 포르투갈 상인들을 상대로 일본인 노예들을 가지고 화약이나 혹은 화약의 원료인 질산염과 교환하는 노예무역을 열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일본 각지의 영주들은 자신들과 적대 관계인 다른 영주의 땅으로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가 마구잡이로 백성들을 납치하여 포르투갈 상인들이 주는 화약통들과 맞바꾸어 노예로 팔아넘기는 인신매매를 일상적으로 벌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서부 아프리카의 추장들이 적대 부족한테 쳐들어가 그들을 포로로 잡은 다음, 유럽인 노예 상인들이 주는 화약과 맞바꾸어 팔아버렸던 흑인 노예무역과도 같았습니다.  

 

  노예가 되어 포르투갈 상인들한테 끌려가는 일본인들은 거의 대부분 여자들이었습니다. 당장 전쟁이 끊이지 않는 전국시대의 일본 사회에서 여자들은 노예로 팔아넘겨도 괜찮은 존재로 여겨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일본인 여자들은 포르투갈인들이 식민지로 지배하고 있던 동남아와 인도와 아프리카에 노예로 팔려나갔습니다. 1582년 로마 교황 그레고리오 13세를 만나러 로마에 간 일본인 사절단인 이토 만쇼, 치치와 미겔, 하라마루친, 나카우라 줄리앙은 그들이 머무는 세계 각 지역에서 일본인 여자들이 벌거벗겨진 채로 마치 가축처럼 헐값에 노예로 팔리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화가 나고 불쌍하다고 비참한 심정을 고백하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본인 노예무역에 앞장을 선 자들은 놀랍게도 일본에 기독교를 전파하러 온 포르투갈인 선교사들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인들은 자연히 기독교 선교사들이 노예무역의 앞잡이라며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되었고, 1587년 6월 18일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 전역에 기독교 금지령을 내려 서양의 선교사들을 쫓아내고 일본인들에게 기독교를 믿지 못하도록 탄압했던 것입니다. 

 

  기독교 금지령은 히데요시가 몰락한 이후에 다시 일본을 통일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계속 이어받았고, 그런 이유로 인해서 서양인 선교사들은 결국 일본의 기독교화를 포기하고 물러가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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