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선이 미선이 촛불 집회 참여하게 된...

페이지 정보

작성자 청소녀
작성일

본문

지방에서 올라와 수도권에서 생활하면서 처음으로 촛불 집회에 참여하개 된 비극적인 사건,. 여전히 가슴이 아픈 일이다. 

파주에서 출근길에 한국군 탱크가 정차되어 있던 차량에 올라탔던 일을 목격한 적이 있다, 다행히도 운전자가 조수석 방향으로 몸을 숙여 압사되는 상황을 피한 현장을 보며 가슴을 쓸어내렸던 적이 있다. 그런데 두 여중생은 운이 나빠서인지 아니 인재(구체적인 정황 알지만)로 인해 희생자들의 넋과 사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촛불 현장에서 불을 밝히곤 했다. 그 당시 난 전반적인 상황을 간접적으로  알고 있는 위치에 있었다. AVLB(Amored Vehlcile Launched Bridge)라는 전차에 소리없이 짧은 찰나에 고통스럽게 희생자가 되어 버렸던 여중생들의 진실을 찾기 위한 촛불 집회에  참석하는 것이 그 당시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이 사고를 일으킨 미군 병장의 재판에 배심원으로 참여했던 내 친구이자 스승이었던 이와 재판 진행중에 여러번의 토론을 가졌었다. 나는 유죄(여중생 희생자) 그 친구는 무죄(작전중에 발생했던 사고)라는 논리로 여러 얘기를 나누었지만 그 친구의 주장대로 결과는 무죄였다. 그 당시 사상자를 냈던 AVLB 조정수는 트라우마 인해 조기 전역을 하게 되었고 본국으로 돌아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 인생을 정리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20년이 지난 이 상황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계속 반복되고 있는 것 같다. 누군가 희생자가 나와야  조금도 아닌 쬐금씩 나아지는 상황을 바라볼때 개혁은 정말 힘든 거구나를 매번 실감하게 된다. 첫째도 안전 둘쨰도 안전이라는 세상이 빨리 오기를 희망해본다.

   AVLB

관련자료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