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의 반지에 흑인 엘프가 나오다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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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버 반덕후JUN님의 게시물을 옮겨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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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엘, 아론디르, 디사 등 흑인 배우들이 연기하는 『반지의 제왕: 힘의 반지』 속 캐릭터들을 보면서 가운데땅 세계관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차별이나 비하의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인종의 캐스팅이 이루어진 드라마에서 묘사되는 가운데땅의 모습이 과연 원작의 세계관에 기반하여 가능한 해석인가를 의아해하는 것입니다.
이 글에서 먼저 가운데땅과 유럽의 관계에 대해 톨킨이 밝힌 생각들을 소개해드리고, 그 후 차례로 가운데땅 세계관 내에서의 인간, 호빗, 난쟁이, 그리고 요정의 피부색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 가운데땅과 유럽 =
톨킨은 자신의 세계관에 관한 입장이 확실했습니다. 바로 ‘자신의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가상의 세계’라는 것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가운데땅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무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맞지만, 그 이야기 속의 시대, 역사, 민족, 언어, 문화 등은 현실과 관계가 없는, 자신이 창조한 가상'이라는 입장입니다.
레전다리움은 '영국을 위한 신화'라는 생각이 널리 퍼져있지만, 그것은 톨킨이 젊은 시절 가상의 세계를 만들기 시작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반지의 제왕을 집필하던 시절에 톨킨이 편집장에게 쓴 편지에서 밝히듯이, ‘영국을 위한 신화’를 구상한 것은 once upon a time, ‘오래 전 한때’의 일이었고 그것은 ‘Absurd’, 가당치도 않은 말이었다고 톨킨 스스로가 느꼈습니다. 즉 우리가 오늘날 알고 있는 가운데땅의 이야기는 ‘영국을 위한 신화’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세계관이 더욱 확장되고 정교해졌고, 영국과의 연결고리를 만들어두었던 작품 속 설정은 사라졌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친숙한 <반지의 제왕>을 비롯한 레전다리움은 더이상 '영국을 위한 신화'가 아니게 된 것입니다.
특히 북유럽과의 관계성에 대해서는 톨킨이 생전에 이미 입장을 확실하게 밝혔습니다. "지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북유럽’이라는 개념은 가운데땅에 적용시킬 수 없다"고 말입니다. 이렇든 톨킨은 실제 역사던 막연한 상상이던 유럽을 비롯한 실제 세계를 가운데땅의 가상의 세계와 연관시키는 것을 사양했습니다.
기존 '중세 유럽'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드라마가 새롭게 선보이는 가운데땅의 이미지가 톨킨의 세계관에 부합하냐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톨킨이 실제 세계와의 연관을 사양했듯이, 우리도 톨킨의 의도에 따라 톨킨이 남긴 텍스트만을 집중하여 근거를 찾아봐야 할 것입니다.
그에 앞서 톨킨이 자신의 작품 속에서 race, 즉 민족을 어떻게 정의하는지를 설명드리겠습니다. 우리에게 race는 피부색에 따라 분류되는 인종을 주로 뜻하지만, 톨킨은 race를 지리와 언어로 분류하였습니다. 베오르 가문의 인간이나 샤이어의 호빗처럼 그 구성원이 모두 같은 피부색을 지니고 있지 않아도, 같은 지역에 살고 같은 언어를 사용하면, 같은 race, 즉 같은 민족에 속한다는 것입니다.
= 인간 =
누메노르인들은 에다인의 후손으로, 에다인은 3개의 가문으로 구성이 되어 있었는데, 하도르 가문, 베오르 가문, 할레스 가문입니다. 하도르 가문의 구성원은 모두 하얀 피부였고, 베오르 가문의 구성원은 (하도르 가문보다는 덜하지만) 하얀 피부를 가진 이부터 swarthy, 거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이까지 다양했습니다. 할레스 가문은 직접적인 언급이 없지만, 같은 혈통의 선조를 공유하는 훗날의 던랜드인을 보아 역시 어두운 피부를 가지고 있다고 추측됩니다.
여기에서 swarthy라는 단어를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톨킨은 어두운 색의 피부를 묘사할 때 이 단어를 자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Swarthy의 어원은 '검은색'을 뜻하는 'swart'이지만, 수백년 전부터 swarthy라는 단어는 백인들보다 어두운 피부를 가진 다양한 피부색을 묘사하는데 사용되어왔습니다. 남유럽의 지중해 인종, 이슬람 제국의 아랍인, 중세 유럽 시절 이베리아 반도에 세워졌던 무어 왕국의 흑인들처럼 말이지요. 따라서 swarthy라는 표현이 얼만큼 어두운 피부색을 가르키는지는 책을 읽는 독자의 상상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제 3시대의 던랜드인은 하얀 피부를 가진 로한인을 '흰둥이'라는 멸시적인 호칭으로 부르며 증오했습니다. 즉, 던랜드인 자신들은 하얀 피부와 확실하게 구분되는 어두운 피부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던랜드인과 같은 선조를 둔 할레스 가문도, 북쪽으로 이주한 던랜드인의 후손인 브리의 인간들도 그런 어두운 피부를 지니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피터 잭슨의 영화 속에서 던랜드인은 백인으로 등장합니다. 왜 그럴까요? 어두운 피부, 즉 유색인종이 악당과 손을 잡고 백인들의 마을을 공격하여 민간인들을 죽인다? 당시에도 논란이 되었을 것입니다. 러닝타임 문제로 던랜드의 역사를 자세히 설명할 수도 없는 상황이고, 이런 논란을 차단코자 백인 캐스팅이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영화에서도 정치적인 문제로 톨킨의 원작 속 설정을 바꾼 바가 있는 것입니다.
= 호빗 =
호빗의 조상은 털발 혈통과, 풍채 혈통, 하얀금발 혈통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풍채 혈통을 기준으로 삼고, 하얀금발 혈통은 피부가 더 하얬으며, 털발 혈통은 피부가 더 갈색이었습니다. 세 혈통이 피부색으로 확실하게 구분이 될만큼 유의미한 차이가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게다가 털발 혈통의 갈색 피부는 상대적인 묘사뿐만 아니라, 확실하게 brown 혹은 nut-brown이라고 종종 묘사가 됩니다. <반지의 제왕>이 출판되었을 때는 영국이 인도에 발을 들인지 거의 300년이 지난 시기였는데, '갈색 피부'라는 묘사가 독자들에게 어떤 이미지로 받아들여졌을지는 글을 쓴 톨킨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털발 혈통의 후손이 바로 샘입니다. 샘은 원작 소설 내에서도 프로도의 하얀 피부와 대비되는 갈색 피부가 묘사됩니다. '정원사니까 야외활동 때문에 햇빛에 탄 것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소설 내에서는 그런 설명이나 묘사는 없습니다. 비단 샘뿐만 아니라 호빗들 중에는 털발 혈통의 후손이 제일 많았고, 그 다음이 풍채 혈통, 그리고 하얀금발 혈통의 후손이 제일 적었습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샘도, 샤이어의 모든 호빗들도 하얀금발 혈통의 프로도와 차이가 없는 하얀 피부의 백인들이 연기합니다. 제가 션 어스틴이나 다른 호빗 배역분들에게 불만을 표하는 것이 아니라 (저는 션 어스틴이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라가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과는 별개로 영화에서 이미 톨킨의 원작 속 피부색 설정을 바꾼바가 있다는 말입니다.
= 난쟁이 =
난쟁이는 톨킨이 (나중에는 이스라엘 유대인의 아키타입이 추가되었자먼) 북유럽 신화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이 확실시 됩니다. 그렇다면 비록 원작 소설 속에서 난쟁이의 피부에 대한 묘사는 일언반구도 없더라도, 북유럽의 이미지대로 하얀 피부가 당연하지 않을까 생각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정작 북유럽 신화 속의 난쟁이들은 '잉크보다도 더 검은 피부'를 지녔다고 묘사됩니다. 그러니 북유럽 신화의 설정을 따르자면, 가운데땅의 난쟁이들도 모두 검은색 피부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맨 처음에 말했듯이, 톨킨은 북유럽을 포함한 우리 현실의 세계를 가운데땅에 투영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소설 속 텍스트만을 고려하면, 가운데땅 난쟁이의 피부는 '불명'입니다.
영화에서는 이런 불명한 피부색의 난쟁이들을 모두 백인 배우들로 캐스팅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원작에 묘사되지 않았으니 독자나 제작자의 상상과 해석에 달린 부분이니까요. 하지만 반대로 드라마의 다양한 피부색 역시 '틀린' 상상이나 해석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 요정 =
요정은 톨킨이 가운데땅의 모든 민족 중에서 가장 철저하게 현실과 연관되는 것을 거부한 종족입니다. "나의 책에 등장하는 요정들은 명칭이 영단어로 '엘프'이기는 하지만, 그들의 본질과 역사는 유럽 전승의 '엘프'나 '페어리'와는 거의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런 만큼 요정이야말로 톨킨의 텍스트만을 살펴봐야 합니다.
톨킨이 남긴 글 가운데 모든 요정을 하얀 피부를 가진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가장 결정적인 증거는 <반지의 제왕>에 실린 부록 F의 '엘다르는 하얀 피부를 지녔다'라는 구절입니다. 그런데 훗날 크리스토퍼 톨킨이 밝히길, 해당 구절은 편집 중에 발생한 오류로, 부록 F에서 말하는 '엘다르'는 '놀도르'를 뜻한다고 합니다.
즉, 우리는 요정들 가운데 바냐르와 놀도르는 (공교롭게도 둘 다 발리노르로 건너간 요정들이네요) 확실하게 하얀 피부를 지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가운데땅의 머나먼 동쪽에서 최초로 깨어난 144명의 요정들 중 42명을 제외한 나머지 102명의 요정들과 그 후손들의 피부색은 '불명'입니다.
영화에서는 이런 불명한 피부색의 신다르, 실반 요정들까지도 모두 백인 배우들로 캐스팅했습니다. 그리고 난쟁이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이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또한 같은 이유로 드라마의 아론디르 역시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 각색의 잣대 =
이렇게 톨킨은 자신의 가운데땅이 현실의 유럽에 얽매이는 것을 사양했고, 그런 가운데땅을 이루는 많은 민족들은 다양한 피부색을 가지고 있었고, 또 그만큼 많은 민족들이 어떤 피부색을 지녔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알 수 없는 부분은 독자들의 상상력으로 채울 수 있습니다.
'백인 작가가 쓴 영문권 소설이니 묘사가 없는 부분도 당연히 하얀 피부가 디폴트가 아니겠는가'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추측의 영역이고, 오히려 그렇다면 왜 특정 민족들을 굳이 하얀 피부를 가졌다 라고 특별히 묘사를 해야 했을까 라는 반문을 제시할 수도 있습니다.
영화를 비롯한 기존 미디어 작품들은 피부색이 불명인 민족들뿐만 아니라 어두운 피부를 지녔다고 확실히 명시된 인물들과 민족들 뿐까지 대부분 백인으로 묘사를 해왔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상상과 해석과 각색을 (톨킨이 세운 원작 속의 설정과 맞지 않는 부분까지도)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드라마에서 선보이는 다양한 인종의 캐스팅의 상상과 해석과 각색을 똑같은 잣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는 것일까요?
물론 자신이 지금껏 그려온 혹은 익숙해져온 가운데땅의 모습과 달라서 충분히 위화감을 느끼거나 적응이 힘들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괜찮습니다. 제가 이 글을 통해 전하고 싶은 말은 드라마의 다인종 캐스팅이 가운데땅의 '틀린 해석'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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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 제왕의 숨겨진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https://www.youtube.com/c/Jun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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