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시아버지와 며느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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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망원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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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무뚝뚝한 부산 싸나이는 며느리를 보았습니다.

그 당시에 그리 흔하지 않은 시집살이를 하고 있는 며느리가 고맙고 대견했지만 시아부지는 별로 표현을 하지 않고 항상 며느리를 무뚝뚝하게 대했습니다.

"오다 보니 꽈배기 팔던데... 할매가 그냥 주더라."

가족은 네명인데 (시아부지, 시어머니, 아들, 며느리) 까만 봉다리에 5개가 있었고 당연히 며느리 몫은 두개였습니다.

롯데 자이언츠의 골수팬인 시아부지는 사직구장을 자주 가셨고 어쩌다 경기가 있는데 가지 못하게 되면 집에서 꼭 경기를 시청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롯데가 밀리고 있다가 마해영의 홈런이 터지는 걸 TV에서 중계됩니다.

당연히 시아부지는 기뻤지만 옆에서 빨래를 개고 있는 며느리가 있어 체통을 지키시는 중이었는데....

며느리의 행동이 멈춰져 있었습니다.

개고 있던 수건은 손에서 그냥 잡혀 있었고 며느리의 시선은 그간 관심 없듯 무시하던 TV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앗! 아.....아...."

순간 눈물을 흘리는 며느리....

넌지시 시아부지가 물어보았습니다.

"니 야구 좋아하나?"

수줍은 듯 미소를 지으며 며느리는 답합니다.

"은지예. 그냥 한번씩 보기만 합니더. 여자가 무슨 야구를 좋아 하겠심니꺼?"

잠시 생각을 하다가 시아부지는 주말 사직구장 입장권을 한장이 아닌 네장을 사기로 결정합니다.

"이번주 토요일 별일 없으면 가족끼리 야구 보러 가자."

당연히 그날 저녁 시어머니와 시아부지는 야구 관람 문제로 한판 붙었고 아들은 아내에게 시아부지의 돌발 행동에 대해 미안해 하고 있었습니다.

주말...

갑자기 일이 생긴 아들은 퇴근(당시엔 토요일이 오전 근무)을 할 수 없었고 시어머니는 심퉁이나 야구장에 따라 나서지 않았습니다.

결국 야구장엔 시아부지와 며느리 둘이서 가게 되었습니다.

저녁...

시어머니와 아들은 TV를 보고 한동안 말이 없었습니다.

야구중계중인 TV화면에는 어느 중년의 아저씨와 처자가 롯데자이언츠의 역전 홈런에 서로 얼싸안으며 눈물을 흘리며 뛰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당연히 그 둘은 시아부지와 며느리였습니다.

이후 집안 풍경은 바뀌었습니다.

사직구장에 야구경기가 있는 날이면....

그 사나이 존심 센 시아부지는 빨래를 개고 집안 청소를 하고 있고 며느리는 구장에 가서 먹을 음식을 장만하고 있습니다.

며느리 일이 빨리 끝나야 구장에 빨리가서 앞자리에 앉을수 있었기 때문이죠.

시어머니는 신문에 날일이다라고 웃으시고 아들은 아부지에게 아내를 뺏겼다고 농담반 진담반 합니다.

그날도 환갑에 가까운 시아부지와 20대 후반의 며느리는 사직구장에서 봉다리를 쓰고서 부산갈매기를 소리 지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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