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의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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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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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어가 네이티브 수준인 이 한국 유튜버의 영상에 대해서는 설명이 필요하다.
'KEJADIAN DI GWANGJU TAHUN 1980... APA YANG TERJADI DI SANA!?'라는 제목이 달렸는데 '1980년 광주에서 있었던 일. 그곳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는가?'라는 뜻이다.
인도네시아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고 현지 학교에 다닌 이 유튜버는 주로 한국 대중문화를 소개하는 영상을 올린다.
능숙한 인도네시아어로 방송하기 때문에 주된 구독자층은 당연히 인도네시아 청년들이다. 현재 구독자 수가 499만 명인데 인플루언서라고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한국 사회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종종 한국 역사에 대해서도 다룬다. 첨부한 영상은 2021년 7월에 올려진 것으로 80년 광주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설명한다.
내가 주목한 것은 이 영상의 조회수다. 오늘(5/18) 현재 1,002,666회다. 영상이 올려진 시점은 작년 5월이 아니라 7월이다. 5월은 광주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달이니 그때 올리는 것이 타이밍상 맞았겠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7월에 올라왔다.
80년 5월 광주를 2021년 7월에 인도네시아 청년들에게 설명하는 영상의 조회수가 어떻게 100만 회를 넘겼을까?
더 놀라운 것은 이 영상에 인도네시아 청년들이 단 댓글의 숫자다. 무려 3천 개가 넘는다.
도대체 인도네시아 청년들은 별로 접점이 없어 보이는 80년 5월 광주에 대해서 왜 이렇게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그 이유를 짐작하게 하는 댓글을 몇 개 소개한다. (*실제로 영상에 달린 댓글을 번역, 괄호 안은 글쓴이 이름)
- "예전에 한국을 방문해서 5.18 민주화운동 전시회에 갔었다. 관련 설명을 읽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지난주에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98년 5월(May 98)' 사건에 대해 에세이를 썼다. 한국의 80년 5.18 광주와 인도네시아의 98년 5월을 연결했다. 당시 나는 학생이었는데 거리로 나갔다. 사람들은 학생들이 나서봐야 바뀌는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그래도 나갔다.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소개한 영상을 보니 내가 인도네시아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다시 든다. 우리가 항상 거리에 나갈 필요는 없다. 하지만 선한 노력은 최소한 우리 주변에 작지만 분명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Latifa Ramadhani)
- "제이홉이 랩으로 "모두 062-518을 눌러"라고 했는데 062는 광주 지역번호, 518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의미한다. 가사의 의미를 알아보다가 한국 현대사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한국이 역사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극복해온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이 왜 선진국인지 알 것 같다. 왜냐하면 비극적인 역사를 기억하는 영화를 만들 수 있으니까 말이다." (Ana Minz)
-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영상을 보고 영화 택시운전사, 변호인, 1987을 다 찾아서 봤다. 한국은 선진국이고 인도네시아는 개도국이라 경제적으로는 격차가 크지만 같은 역사적인 경험이 있어서 동질감을 느낀다." (Aulia)
- "이 영상을 보고 댓글에서 추천한 영화 택시운전사를 봤다. 영화를 보면서 울음을 그칠 수 없었다. 광주 시민들의 강한 결의에 경의를 표한다. 광주 시민들 덕분에 지금의 한국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광주 시민들에게 감사해야 마땅하다." (Aini)
- "나는 문학을 전공하고 있다. 학위 논문으로 작가 한강의 <소년이 간다 Human Acts>를 분석하는 학위 논문을 썼다. 이 소설을 읽고 한국도 인도네시아의 98년 5월 사건처럼 민주화를 위한 암흑의 시기가 있었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광주에 대해서 보다 깊이 알고 싶다면 <소년이 온다>의 인도네시아 번역본을 읽어보기를 바란다. 인도네시아어 제목은 <밤의 눈 Mata Malam>이다." (Nofi)
댓글 수준이 놀랍지 않은가? 생각나는대로 대충 주워섬긴 것이 아니라 진지한 의견이 대부분이다.
인상적인 것은 마지막 댓글이다. 이제 우리에게는 박제화된 80년 5월 광주인데 적도 남단에 위치한 인도네시아의 어느 문학도는 작가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고 학위 논문을 썼다.
이 댓글이 언급한 '인도네시아의 98년 5월 사건'은 부연 설명이 필요하다.
우리에게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있다면 인도네시아에는 'May 98' 운동이 있었다. 1997년 IMF 외환위기는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인도네시아 경제에도 큰 타격을 가했다. 당시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31년째 독재를 해오던 수하르토였다.
경제가 폭망한 가운데 1998년 3월, 7번째 대통령으로 또 연임했다. 인도네시아 대학생들이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며 그해 5월부터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수도 자카르타에서 시위가 격화되자 수하르토 정권의 주구들이 발포 명령을 내렸고, 수십 명의 청년, 학생이 사망했다.(5/12) 그로 인해 시위는 더욱 불길처럼 번져나갔고 수하르토는 5월 21일에 하야할 수밖에 없었다.
5.18 광주는 큰 희생을 치렀지만 진정한 의미의 민선 정부가 등장까지 10여 년의 세월이 더 필요했다. 반면 인도네시아의 'May 98'은 바로 대통령 하야를 이끌어 냈으니 성공적이었다. 이런 역사적 경험이 인도네시아 청년 세대에게 각인되어 있기 때문에 5.18 광주에 관심을 두고 공감을 표현하는 것이다.
한국과 인도네시아 청년들의 사회, 역사적 관심을 연결하는 데에는 한국의 대중문화가 큰 역할을 했다.
2013년 발표된 아이돌 그룹 스피드(SPEED)의 뮤직비디오 '슬픈 약속'(That's my fault)에는 5.18 광주에서 공수부대원이 학생들을 구타하는 장면이 삽입되어 있다.
방탄소년단의 2015년 앨범에 수록된 곡 '마 시티 Ma City'의 파급력은 상당하다. 광주 출신 제이홉은 '나 전라남도 광주 베이비', '모두 다 눌러라 062-518'이라고 랩을 하는데 아미들은 비밀코드 같은 062-518의 의미를 스스로 알아냈다.
작년에 방영된 '오월의 청춘' (Youth of May)은 1980년 5월, 역사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운명처럼 서로에게 빠져버린 희태와 명희의 아련한 봄 같은 사랑 이야기를 담은 레트로 휴먼 멜로 드라마다. 영어와 인니어 자막으로 드라마를 시청한 인도네시아 청년들이 한국에서 80년 5월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자연스럽게 파악한다.
한국 대중문화, 즉 K-콘텐츠, 그중에서도 사회, 역사적 주제를 담은 콘텐츠의 파급력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경우, 어떤 형태로든 저항의 역사를 갖고 있다. 그 저항의 역사가 구체적인 사회 변화의 계기가 되었다면 매우 자랑스러워한다. 자기들의 사회, 역사적 사건과 연결되는 한국의 사회,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관심을 표하는 것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어째서 그들의 공감대를 이끌어 낼까? 바로 자신들의 역사적 경험과 연결고리가 있어서다. 우리 사회에서는 거의 박제화된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동남아시아에서는 현재진행형의 역사로 받아들여진다. 그들의 사회적 의제, 방향과 맞닿는 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80년 5월 광주가 남긴 역사적 유산은 우리나라의 경계를 벗어나 저멀리 동남아시아에서도 열매를 맺고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광주에 있는 '5.18 시계탑' 하단의 안내문에는 80년 5월의 참상을 처음 보도한 독일공영방송 NDR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의 말이 기록되어 있다.
"시계탑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은 반드시 계속 전승되어야 합니다. 시계탑은 자유의 기념물이자 한국의 민주주의의 시작을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힌츠페터 기자의 말처럼 후세에게 80년 5월 광주를 계속 전승하는 것은 온전히 우리 세대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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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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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마핱 12.16 비밀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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