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가장 정확한 세계 최초의 태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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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칼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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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소

(지승곤)

이순신은 삼척동자도 아는데

이순지(李純之)는 처음이다.


민태기박사 책, 조선이 만난 아인슈타인 294쪽 '그렇게 우리는 그 시대를 잊고 있다. 100년 전에 이미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 조선을 휩쓸고 지나갔음에도, 그리고 최신 과학을 소개한 선구자들이 만든 기반이 기적 같은 성장의 바탕이 되었음에도, 마치 우리 선조들이 서양 과학의 흐름에 무지했다는 인식에 사로잡혀 있다. 하지만 우리가 잊고 있을뿐이다. 그들이 남긴 당시의 기록을 보면 오히려 현재의 교양 과학이 더 후퇴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순신은 아는데

이순지(李純之)는 처음이다.


대한의 1318청소년이여!

가장 정확한 세계 최초의 태양력(太陽曆)은 무엇인가?


1444년에 탄생된 칠정력(七政曆)


30대 청년, 조선의 천문학자 이순지(李純之)가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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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몽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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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일

『창몽지상강론(創夢紙上講論)』 


  <제233강: 세계 최초의 태양력을 만든 자?> 

 

  이탈리아의 천문학자 갈릴레이(Galileo Galilei)는 교황청이 옳다고 믿는 천동설 대신 지동설을 부르짖고 그 지동설에 근거하여 태양력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1633년 종교재판에 회부되었다. 갈릴레이는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지동설을 포기하고 엉터리 천동설에 굴복하고 말았다. 그러나 교황청은 그날로부터 400여 년이 지난 후 결국 지동설이 옳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갈릴레이를 복권시켰다. 이는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다. 


이런 기록으로 볼 때 세계 최초의 양력 달력은 1600년대에 서양에서 만들어진 달력이라 할 수 있고 우리 모두도 그렇게 알고 있다. 그래서일까? 


서양보다 150여 년이나 앞서 지동설을 주장한 우리나라 천문학자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이씨조선의 세종대왕 때 이순지(李純之)라는 천문학자가 있었다. 이순지가 저술한 『칠정산외편(七政算外篇)』이라는 책에는 지구가 태양을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365일 5시간 48분 45초라고 적혀있다고 한다. 


이는 현대천문학이 밝혀놓은 365일 5시간 48분 46초와 불과 1초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이는 이순지가 600여년 전인 1400년대에 세계 최초로 정확한 지구공전의 시간을 계산을 했다는 말이 된다


폴란드의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Copernicus)가 태양이 도는 천동설이 아니라 지구가 도는 지동설이 옳다고 주장한 것은 1543년이었지만 당시 공전 시간을 정확히 계산해 내지는 못했다. 천문학적으로 지구가 돈다는 사실을 증명한 사람은 1632년에 지동설을 발표했던 갈릴레이(Galilei)였다. 고대인들은 하늘은 둥글고 지구는 사각형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를 천원지방설(天圓地方說)이라고 한다. 


물론 동양에서도 지구는 둥글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성리학의 대가였던 주자(朱子)의 책을 보면 “지구는 둥글 것”이라고 적혀 있다고 한다. 또 고려시대 학자로서 황진이가 사랑했던 화담(花譚) 서경덕(徐敬德)이 지은 화담집(花潭集)에도 “지구는 둥글 것이고, 또 둥글어야 한다, 바닷가에 가서 해양의 끝을 바라보라. 지구는 둥글 것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모든 주장들은 아무런 과학적 근거가 없는 단순한 추측들이었다. 그런 추측이 아닌 천문학적 계산으로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증명한 사람은 바로 세종시대의 천문학자 이순지(李純之)였다고 한다. 


이순지는 “일식(日蝕)의 원리처럼 태양과 달 사이에 둥근 지구가 들어있고 그래서 지구의 그림자가 달에 생기는 것이 월식(月蝕)이다, 그러므로 지구는 둥글다.”고 단언했다고 한다. 이순지는 『교식추보법(交食推步法)』이라는 책에서 이런 주장을 하면서 모년 모월 모시에 월식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고, 그날 그 시각에 정확히 월식이 생겼다고 한다. 그런 예언을 가능하게 했던 『교식추보법(交食推步法)』은 지금까지 남아 있다고 한다. 


지동설을 확신했던 이순지의 과학적 업적을 높이 평가한 세종은 그를 과학정책의 책임자로 임명했는데 그때 이순지의 나이는 약관 29세였다. 


세종이 이순지에게 내린 첫 번째 임무는 조선의 실정에 맞는 정확한 달력을 만들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순지는 세종에게 “만들 수 없습니다”고 답했다고 한다. 세종이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자 “달력은 서운관(書雲觀: 오늘날의 국립기상천문대)에서 만드는데 여기에는 인재들이 오지 않습니다.” “왜 오지 않는가?” “진급이 느리기 때문입니다.” 이에 세종이 즉시 “서운관의 진급속도를 제일 빠르게 하라.”고 해당 신하에게 명했다. 이순지가 다시 답하기를 “‘그래도 달력을 만들 수 없습니다.” “또 왜?” “서운관은 봉록이 적습니다.” 세종이 다시 명했다. “서운관의 복록을 올려라.” “그래도 인재들이 오지 않습니다.” “왜 또?” “서운관 관장의 힘이 너무 약합니다.” “그러면 서운관 관장을 누구로 할까?” “폐하의 측근을 보내주시옵소서.” 세종이 물었다. “누구를 보내줄까?” “정인지(鄭麟趾)를 보내주시옵소서.” 당시 정인지는 고려사(高麗史)를 쓰고 한글을 만든 세종의 측근 중의 측근이자 영의정이었다. 이에 세종은 영의정 정인지를 서운관(書雲觀) 관장으로 겸임 발령했다고 한다. 


그 결과 이순지는 『칠정산외편(七政算外篇)』이라는 책을 만들고 1444년에 드디어 우리 손으로 달력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때 만든 달력은 당시 가장 정확한 달력이라고 알려진 아라비아의 회회력(回回曆)보다 더 정확한 달력이었다고 한다. 


이순지는 『칠정산외편(七政算外篇)』을 통해 정확한 태양력을 만든 뒤 1,447년(세종 29년) 음력 8월 1일 오후 4시 50분 27초에 일식(日蝕)이 시작되어 그날 오후 6시 55분 53초에 끝날 것이라고 예측했는데 그 예측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고 한다. 세종이 정말 기뻐하며 그 달력의 이름을 “칠정력(七政曆)”이라고 지어주었다. 그렇게 탄생된 칠정력(七政曆)은 가장 정확한 세계 최초의 태양력(太陽曆)이었다고 한다. 


정부의 신년계획에 의하면 올해는 본격적으로 우주시대를 열어갈 것이라고 한다. 이런 계획에 의해 앞으로 우리가 우주시대의 명실상부한 주인공이 된다면 우리 조상이 800여년 전 세계 최초의 태양력을 만든 천문학의 선두주자였음도 자연스럽게 세계만방에 알려질 것이다. 그런 날이 하루빨리 오도록 우주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하는 한해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저는 “희망있는 나라만들기”를 지향하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이 창몽천자강론(創夢千字講論)을 매주 월수금 요일마다 1,000회에 걸쳐 적어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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