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그레나다 총선 최종결과.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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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커피열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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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NP: 신국민당, NDC: 국민민주회의)


2022년 그레나다 총선 최종결과(투표율: 70.29%[-3.32])


국민민주회의(중도좌파, 사회민주주의, 진보주의): 51.81%(+11.28), 9석(+9)

신국민당(중도우파, 경제적 자유주의, 보수주의): 47.79%(-11.12), 6석(-9)

기타 군소 정당/무소속 후보들: 0.40%(-0.16), 0석(=)


야당 국민민주회의 과반 확보하며 9년 만에 정권 교체



전체 의석: 15석

과반 의석: 8석



1974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카리브해의 섬나라 그레나다는 국초부터 독립 전후(61-62, 67-79년 재임)로 수십년간 집권해온 권위주의 친미 독재자 에릭 게어리(그레나다 통합 노동당[GULP] 소속)의 비밀경찰과 군대, 갱단을 이용한 경찰국가식 잔혹한 부패통치로 인해, 76년 총선에서 그레나다 통합 노동당이 명목상으론 9석을 얻으며 승리(모리스 비숍의 인민동맹 약진[의석수 2->6]에도 불구하고 비밀경찰 몽구스 갱단이 동원된 협박을 통한 부정선거로 인해 패배)했음에도 분열이 거세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1979년엔 뉴 주엘이라는 이름의 좌파 계몽주의 운동 하에서 자유, 복지, 교육 강화를 외치던 야권 정치인 모리스 비숍이 주도한 무혈 쿠데타가 피델 카스트로와 쿠바의 지원 속에서 성공하여 인민혁명정부 수상 취임과 함께 의회 해산 및 반-서구민주주의 노선을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해당 쿠데타에 경각심을 느낀 서인도 제도 연합주 소속 일부 주변국(도미니카 연방, 세인트 루시아)들이 정부 불승인 등으로 거리를 두고, 그나마 친했던 가이아나 정부와 멀어지며 자메이카 좌파 정부마저 전복 되면서 고립이 오히려 더 심해졌습니다.


그러자 얼마 안 남은 비빌 구석이던 공산권, 특히 쿠바와 소련에 더욱 밀착하여 공산권 내에서도 논란이 된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마저 옹호하고 군사협정 체결을 통해 공산권 군사고문단과 원조를 대거 들여오며 사실상의 공산권 군사기지화가 됨으로써 초반보다 더한 좌파노선을 걸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쿠바 공산 혁명 이후 라틴 아메리카에서의 사회주의 운동에 편집증 수준으로 초강경 대응하던 미국과 신자유주의 우파 성향의 레이건 대통령은 그동안의 우려가 현실이 되자 그레나다의 좌향좌에 대해 더 이상 좌시하지 않을 것임을 선언하며 신정부를 불승인하고 공산군에 위협을 느껴 동 카리브해 안전 보장 기구를 창설한 바베이도스를 위시한 서인도 제도 연합주 국가들과 함께 원조 중단과 외교적 개입으로 대응했습니다.


위와 같은 외교적 위기 상황 속에서 모리스 비숍 수상의 젊고 카리스마 넘치는 면모 및 반독재 투쟁으로 인한 정당성에서 나오는 개인적 인기와 그나마 정부 내 온건파라는 점 덕분에 이어가던 인민혁명정부는 강경 레닌주의자 버나드 코드 부수상과 허드슨 오스틴 군사령관이 합작해 일으킨 극좌 반란으로 비숍 수상이 가택연금 당하면서 최악의 결말을 맞게 됐습니다.


그레나다의 상황을 예의주시하던 미국은 비숍 수상 축출로 인민혁명정부가 최소한의 정당성도 없어지고 비숍 수상 지지 국민들의 항의 시위로 반란군과의 충돌이 벌어지면서 부분적 개입 명분을 얻게 되자, 처음에는 인접한 바베이도스군에 수상 구출을 의뢰하며 간접 개입에 그치려 했습니다.


그러나 시민봉기에 위협을 느낀 그레나다군비숍 수상과 그의 임산부 아내, 7명의 각료, 시민 수백명을 학살하고 계엄령 선포와 영국 총독 체포로 대응하면서 상황이 악화일로를 걷자, 미국과 자메이카, 동 카리브해 안전보장기구가 함께 총독 석방 및 임시통치, 민주선거 도입 등을 요구하며 거부할 경우 카리브해 평화유지군을 결성하여 침공할 것을 결의했습니다.


이러한 초강경 선언문은 국제사회에서 국제법 위반 여부로 굉장한 논란거리가 되었으며, 비합법 반란 정부 축출은 명분일 뿐 추악한 내정 간섭을 위한 침략 포장이라는 공산권과 중립국가들의 반발 역시 상당했습니다. 심지어 레이건의 오랜 신자유주의 우군인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마저 침공 결정에 당혹감을 표했습니다.


위와 같은 반발들을 뒤로하고 미군과 자메이카, 바베이도스, 그 외 동 카리브해 안전 보장 기구 소속 군대들이 그레나다에 속속 도착했으며, 그레나다 및 쿠바군의 저항을 손쉽게 격파하고 반란정부 축출과 임시정부 수립을 이루어 냈습니다. 이러한 완벽한 군사적 승리는 베트남전에서의 치욕을 어느정도 씻어냈다는 점에서 미군에게 값진 결과였습니다.


한편, 비참한 죽음을 맞은 모리스 비숍 수상은 그 결말에도 불구하고 그레나다 국민들 사이에서 강렬한 이상으로 뇌리에 남았는지, 후에 정치성향을 막론한 존경 및 추모와 국제공항 명명으로 이름값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후 레이건의 그레나다 방문(전체 인구 10% 이상 참가)이 이어지고 평화유지군의 감시 속에서 1984년 연말에 민주적 총선이 이루어진 결과, 식민지 시절 잠시 수상직을 재임(62-67)한 허버트 블레이즈가 이끄는 중도우파 성향의 신국민당이 승리하면서 그레나다는 안정적 민주국가로의 발걸음을 내딛게 됐습니다.


이후 그레나다는 중도우파 신국민당(84-90, 95-08, 13-현재 집권)과 중도좌파 국민민주회의(90-95, 08-13 집권)의 양당제가 정착했으나, 적은 의석에 100% 소선거구제도라는 특징 때문에 특정 정당의 싹쓸이(99년, 08년, 13년 총선 신국민당)가 벌어지는 경우가 빈번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저명한 크리켓 선수 출신이자 수도 세인트조지스 북부를 꽉 잡고 있던 키스 미첼 하원의원블레이즈의 사망으로 인해 89년부터 당대표에 오르면서 그레나다 정치는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습니다.


95년부터 총리직에 오르며 본격적으로 집권하기 시작한 키스 미첼 체제 하에서 신국민당은 재정보수주의 노선 속에 반동성결혼 성향, 여성 우위 내각 출범, 남녀 동수 의회, 공화국 전환 추진, 정부체제 개혁 등의 복합적인 특징을 띄게 됐으며, 학교건립 프로젝트 등을 통해 영국과의 협력을 유지하는 가운데 외국인 투자자 시민권 및 여권 제공 제도(CBI)를 통해 중국 및 러시아인들을 받아들이고 모리스 비숍 국제 공항에 대한 중국 투자를 유치하면서 어느정도 친중성향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농업에 의존하는 라틴 아메리카 및 카리브해 최빈국 중 하나로 간주되던 그레나다는 관광업 및 서비스산업에서의 급속성장을 이루며 중진국으로의 경제 발전이 가능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키스 미첼의 초장기집권과 의석 싹쓸이 속에서 나이든 총리(75세)가 헤게모니 유지에나 집착하고 비판자들에 대한 명예훼손 소송을 남발하는 권위주의 통치, 그리고 중도우파를 표방하면서도 지역 내 좌파 독재정권인 쿠바, 니카라과, 베네수엘라와 중국에 지나치게 밀착하는 태도는 그레나다 국민들 사이에 상당한 염증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한편, 명목상의 구도를 형성하던 국민민주의회는 2013, 2018년 총선에서 2연속 원외 완패를 당하면서 새로운 리더십이 요구됐습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44세의 변호사 출신 딕슨 미첼이 전임의 스트레스로 인한 사임 후 신임 당대표로 선출되면서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총선 승리 시엔 모리스 비숍(집권 당시 35세, 사망 당시 39세) 이래 가장 젊은 총리가 되는 등 고루한 이미지의 키스 미첼에 비해 신선한 면모를 처음부터 가지고 있던 가운데, 딕슨 미첼 스스로도 본인을 이 시대의 모리스 비숍으로 자처하며 개혁적 이미지를 설파하고 있는 중입니다.


또한 선거 공약에 있어서도 키스 미첼 정부의 논란 많은 연금법과 외국인 혜택이 큰 시민권제도, 코로나로 인한 관광 산업 치명타 이후 복구 대책 미비를 비판하는 가운데, 최저임금 도입, 소외되기 쉬운 도서지역에 대한 페리 교통 확충, 교육지원 확충, 문화예술학교 건립, 기름값 전국 표준화 등의 진보적인 공약에 집중하면서 영국, 미국, 캐나다의 투자 유치를 추구하는 등, 그레나다 정치에 새로우면서도 안정적인 물결을 일으키려 했습니다.


이러한 구도 형성에 불안감을 느낀 키스 미첼 총리는 조기 총선을 선언하고 마지막 임기임을 강조함으로써 정권 연장의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그리고 6월 23일 치러진 그레나다 조기 총선 결과, 득표율에서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지만 접전 지역에서 국민민주회의 인사들이 우위를 점하면서 9년 만의 정권교체가 마침내 이루어졌습니다.


그 와중에 좌파 쿠데타키스 미첼 체제 출범 이후 우파 지지층에서 치명적인 손실을 입고 존재감이 쇠한 그레나다 통합 노동당에릭 게어리 재임시절 부총리 아들의 지휘 아래 나름 세를 추스르며 2008년 이후 무려 14년 만에 4곳에 후보를 내보았으나, 오히려 득표율(0.84%->0.11%)만 더 떨어지며 그 존재 의의를 완벽하게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해당 선거에서 좌파계열이 승리함에 따라, 라틴 아메리카를 휩쓸던 2차 핑크 타이드 열풍(멕시코,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페루, 온두라스, 칠레, 콜롬비아)은 창출된 여러 정치인들의 부진(알베르토 페르난데스, 페드로 카스티요, 가브리엘 보리치)에도 불구하고 브라질에서의 화룡정점(룰라 20%p차 압도적 우세)을 앞둔 가운데, 카리브해에서도 그 연장선상에서 나름 성과를 거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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