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퀘벡 주 총선 최종결과.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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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요즘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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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s: 퀘벡연대, PVQ: 퀘벡 녹색당, PQ: 퀘벡당, PLQ: 퀘벡 자유당, CAQ: 퀘벡미래연합, PCQ: 퀘벡 보수당)


2022년 캐나다 퀘벡 주 총선 최종결과(투표율: 66.50%[-0.40])


퀘벡미래연합(중도우파, 자치주의, 퀘벡민족주의): 40.98%(+3.56), 90석(+16)

퀘벡연대(좌익, 민주사회주의, 퀘벡주권주의): 15.43%(-0.67), 11석(+1)

퀘벡당(중도좌파, 경제민족주의, 퀘벡주권주의): 14.61%(-2.45), 3석(-7)

퀘벡 자유당(중도-중도우파, 캐나다연방주의): 14.37%(-10.45), 21석(-10)

퀘벡 보수당(중도우파-우익, 캐나다연방주의): 12.91%(+11.45), 0석(=)

퀘벡 녹색당(좌익, 녹색정치, 캐나다연방주의): 0.76%(-0.93), 0석(=)

기타 정당/무소속들: 0.94%(-0.51), 0석(=)

 

집권 퀘벡미래연합 압도적 1위 기록하며 의석 3/4 가까이 확보

제1야당 퀘벡 자유당 득표율 폭락에도 공식야당 위치 사수 성공

원외 퀘벡 보수당 득표율 폭등에도 불구하고 원내 진입 실패



전체 의석: 125석

과반 의석: 63석

100% 소선거구 단순다수제



캐나다 프랑스어권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퀘벡주는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프로이센 프리드리히 2세 Vs 오스트리아 마리아 테레지아)의 후속편 격인 7년 전쟁의 일부였던 프랑스-인디언 전쟁에서 프랑스가 영국에게 패하고 캐나다 땅을 넘겨주면서 나중에 미국땅이 된 루이지애나와 다른 길을 걷게 됐습니다.


이후 여러 번의 독립투쟁과 자치운동을 통해 프랑스계로서 남아있던 반영감정과 멀리 떨어진 중앙정부에 대한 불만이 결합하면서 영어권 캐나다 지역과는 또다른 퀘벡이라는 정체성이 탄생하게 됐으며, 이는 단순히 과거 프랑스 식민지로서의 정체성과는 궤를 달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로 인한 2차 대전 시기의 자유 프랑스 반 나치 항쟁에 대한 미적지근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1967년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은 프랑스어권이라는 과거사로 인해 정치적 이해를 벗어난 동질감을 느꼈는지 외교적 관례를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자유 퀘벡을 외치면서 퀘벡의 독립 의지가 폭발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68년에 독립 추구 퀘벡 지역 정당인 퀘벡당이 탄생하였으며 창당 초기엔 별다른 지지를 얻지 못했으나, 당시만해도 연방 단위 선거처럼 퀘벡 정치 주류이던 퀘벡 자유당이 중도우파 경제적 자유주의 성향을 벗어난 진보적 정책을 여럿 채택하고, 연방 정부 역시 프랑스계 주민들에게 여러 당근(인구 대비 의석 확충, 동등 언어 지위, 가톨릭학교 지원)을 건내면서, 그때 만해도 가톨릭 보수주의가 지배적이던 경제/사회/교육의 대대적인 변화로 인한 지역민들의 퀘벡 정체성 재확립이 덩달아 나타나게 됐습니다.


그와 반대로 드골의 발언에 힘을 받은 세력에는 소련과 연계된 초강경파도 있었으며, 퀘벡 부총리 및 영국 외교관 납치 사건을 벌인 끝에 피에르 트뤼도 당시 총리(트뤼도 현 총리의 아버지)의 전시조치법 평시 발동이라는 극약 처방을 통해 강경파가 분쇄되면서, 투표를 통한 안건 통과를 주장하는 온건파만이 남으며 오히려 더욱 기세를 올리게 됐습니다.


그리고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이 치러지던 해에 실시된 주 총선에서 적자와 부채 문제가 부각되면서 분리독립 진보파이던 퀘벡당이 의석 2/3 가까이 얻는 압승을 거두었습니다. 이후 퀘벡도 캐나다 타 지역들처럼 연방 단위의 자유당 지지가 지역 정당 지지와 완전히 분리되는 모습을 띄게 되었습니다.


퀘벡당 주정부는 압도적 여론을 등에 업고 연방 정부에게 독립 주민투표 시행을 지속적으로 요구하였으며, 지지기반인 퀘벡 독립 반대 강경파이던 피에르 트뤼도 자유당 연방 내각이 79년 총선 분패로 잠시 실각하고 보보수당 내각이 단기간 들어서던 혼란기에 연방정부로부터 주민투표 시행 동의를 얻어내는데 성공하면서, 1980년에 마침내 주민투표가 시행되었지만 압도적 격차 속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퀘벡당은 주민 투표 패배에도 이듬해 치러진 주총선에서 아예 2/3을 넘기고 반-독립 연방 자유당 정부에 대한 심판 투표로 진보보수당에게 막대한 의석을 선물하는 압도적 지지기반을 과시하였으나, 85-89년 주총선에선 연달아 패하면서 퀘벡 독립 투표 얘기도 덩달아 수면아래로 가라앉았습니다.


퀘벡 독립 투표가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한 것은 1990년대로, 연방 단위 선거에서도 퀘벡민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퀘벡당원에 의해 1991년 퀘벡블록이 창당되면서, 93년 연방 총선에서 집권 진보보수당의 역대급 궤멸(156->2)로 인한 우파진영의 혼란상 속에 첫 시도부터 10%대 득표 및 의석 20% 가까이를 차지하며 제1야당 자리에 오르는 대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1994년 주총선에서도 퀘벡당이 정권 탈환에 성공하면서, 전방위로 정치적 압박이 가해진 나머지 95년에 주민투표가 시행되게 됐습니다. 그러나 해당 선거에서 독립 반대가 정말이지 간발의 차로 승리하고 98년 주총선을 마지막으로 퀘벡당이 더 이상 단독 과반을 달성하지 못하면서 퀘벡블록의 지속적인 득표에도 불구하고 퀘벡 독립 목소리는 그 기세를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한편, 중도좌파 독립파 퀘벡당과 중도우파 연방파 자유당이라는 양자구도에 신물이 난 중도우파 민족주의 자치성향 퀘벡 자유당원들의 주도로 오로지 퀘벡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우익 성향 배타주의 정당인 퀘벡 민주행동당이 1994년 창당되었습니다.


창당 초엔 주민투표 등으로 인한 퀘벡당의 기세때문에 그리 두각을 보이진 못했으나, 2000년대 후반 들어 독립 운동 분위기가 사그라들고 경제난으로 지역 생활 및 사회경제 이슈가 부각되기 시작하면서 2006년 스티븐 하퍼 보수당 연방정부의 탄생과 같은 우경화 분위기를 타며 2007년 주총선에선 제1야당 자리에 오르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비록 2008년 재총선에선 후에 연방 보수당 핵심 멤버로 활동하는 장 샤레스트 퀘벡 자유당 주총리의 인기와 함께 퀘벡당에게 치이면서 의석을 대거 잃었지만, 2011년엔 보수적 퀘벡당원들을 대거 흡수하며 그들이 보기에 퀘벡 발전의 걸림돌인 독립 이슈에 더 이상 구애받지 않는 중도우파 자치주의 민족정당(이율배반적이란 비판에도 불구하고) 퀘벡미래연합으로의 재탄생을 이룩하였습니다.


퀘벡당과의 비공식적 관계와 상대적 좌파성향에도 불구하고 지역단위에선 생활정치 및 경제이슈에 집중하며 지역 구도에 질려버린 퀘벡블록 보수지지층을 대다수 흡수하는데 성공한 퀘벡미래연합은, 연방 보수당을 지지하는 퀘벡의 보수유권자를 분리독립 비명시와 이민법 강화, 경제적 우파 대중주의 노선을 통해 흡수하는 동시에, 연방주의 퀘벡 자유당에 불만을 품은 연방 자유당 지지 프랑스계 정체성 중도 유권자들까지도 교육 강화 속의 프랑스어 비중 확대 등의 민족주의/자치주의 정책으로 대거 흡수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또한 2015년 출범한 진보성향의 트뤼도 자유당 연방정부에 대한 퀘벡민들의 중앙진보/연방주의-지역보수/자치주의 견제 심리가 옆 동네 온타리오(진보보수당 압도적 과반)처럼 작동하면서 그 크기를 상상이상으로 불려 나가며 2018년엔 마침내 압도적 과반을 이룩하며 정권 획득에 성공했습니다.


이에 위기 의식을 느낀 분리주의 좌파에서도 독립 분위기 저하와 함께 퀘벡블록 지지층도 상당부분 뺏기며 비교적 힘이 빠진 퀘벡당이 아닌 신민주당 계열의 퀘벡 연대 등으로 선택지를 넓혔으나 100% 소선거구제 하에서는 오히려 표분산으로 인한 의석 하락효과만 강화하였습니다.


한편, 트뤼도 연방 정부의 코로나 방역 및 경제 정책 등에 반대하는 강경 보수주의자들의 집결로 피에르 포일리에브르 연방 보수당 대표가 탄생하는 우익대중주의 분위기를 타 강경 우파 성향의 퀘벡 보수당이 잠시 제1야당 자리를 차지하는 듯했으나, 정작 선거에선 지지기반 파편화로 무관에 그치고 하나 있던 퀘벡미래연합 탈당의석마저 뺏기면서 완전한 실패로 돌아가버렸습니다.


그리고 2022년 10월 3일 치러진 퀘벡 주 총선 결과, 프랑수아 르고 주총리가 이끄는 퀘벡미래연합이 이제는 전체 의석의 3/4 가까이 차지하면서 옆 동네 온타리오 진보보수당이 22년 주 총선에서 거둔 2/3 비율을 훨씬 웃도는 성과를 거두게 됐습니다. 이에 반해 타 정당들은 각종 이슈 주도권을 퀘벡미래연합에게 모조리 뺏기면서 표분산으로 지리멸렬하고 말았습니다.


다만 퀘벡미래연합의 우파적 배타주의가 비프랑스-비백인계 이민자들에게 이민법 강화 및 복지 축소 등으로 더욱 크게 다가올 가능성이 높아진 만큼, 퀘벡과 캐나다 제2도시 몬트리올이 토론토, 밴쿠버와 또다른 그들 만의 독특한 프랑스계 바탕 진보적 국제주의 분위기를 계속해서 유지시켜 나갈 수 있을지 우려가 높아지는 상황입니다.



출처 목록 링크

https://gksejrdn7.tistory.com/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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